저는 개인적으로 목사로서 꿈꾸어 온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 이름은 '까치네교회'입니다. 한국교회 이름을 조사해 보면 가장 많이 쓰는 것이 교회가 위치해 있는 지명입니다. 이곳 아산에만도 아산이나 온양이라는 지명에 교회 이름을 붙인 교회들이 많습니다. 동사무소나 시청은 지명으로 해야겠지만 교회도 꼭 지명을 붙일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을 해 봅니다.

세상 사람들이 편안히 찾을 수 있었으면

또 교회 이름에 '제일'이니 '중앙'이니 하는 말을 붙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중앙이나 제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섬김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웃을 섬기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분식집 이름과 같은 '까치네교회'가 좋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교회. 사랑하는 성도들이 까치네 집에서 오순도순 사랑하며 예배드리고, 둥지밖 벗들과 서로 어울리며, 하늘 아래서 도란도란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까치네 집에서 까치들이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하듯이 철따라 시인을 초청해 시를 듣고, 노래하는 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이웃들에게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주고 싶습니다. 교회는 예술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춤과 노래, 시와 그림 이 모든 것이 함께 교회 안에 성도들에게 어우러져야 합니다.

또 교회 안에 조그만 빵 공장도 하나 만들어 빵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나누어주고도 싶습니다. 교회의 생명은 나눔이기 때문입니다. 옛 사람들은 마을 공동체에서 어려운 일이나 즐거운 일이나 서로 나누며 살았습니다. 나눔이 곧 삶이었습니다. 교회 또한 나눔이 교회이어야 합니다.

교회도 규모와 살림이 아주 작고 검소해야

한 해 동안 까치둥지에서 살던 까치는 미련 없이 그 둥지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듯이 교회도 그 규모와 살림이 아주 작고 검소해야 합니다. 언제든지 버리고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커지고 재산이 많아지면 신앙은 분명 변질되고 물질에 갇혀버려 교회 본래의 모습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늘 나그네들이 모임 공동체입니다. 나그네는 집에 관심하지 않고 다만 자기가 하는 길에 관심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까치네교회는 서당과 같은 곳이었으면 합니다. 서당은 동네 아이들이 모여 글도 배우고 우주의 이치도 배우고 놀기도 하면서 인생을 배우는 곳입니다. 교회는 단순히 성경만 배우는 곳이 아니라 신학도 문학도 예술도 배우고 논하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가끔은 형제 종교인 천주교회의 성직자를 초대해 이야기도 듣고, 또 이웃 종교인 불교의 스님도 초청해 한 말씀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까치네교회는 한국적 교회를 지향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는 한국 사람이요 그래서 한국인의 교회가 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예배와 찬송은 물론이요 교회 건축까지 한국적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내용과 형식, 이 모든 면에서 한국적인 것으로 담아내고 싶습니다. 더 연구를 해 보아야 하겠지만, 이 땅에 한국적 교회의 한 모형을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기도회 중에 한번 꿈을 꾸었는데, 아파트 숲 한 가운데 저의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그 교회는 흑과 나무로 지은 초가집이고 작은 연못도 있고 돼지우리와 염소도 있고 그리고 재래식 뒷간도 있습니다. 교회 건물은 전기나 기름으로 손쉽게 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로 군불을 지펴 예배드리기 전에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납니다. 사람들이 예배당 굴뚝에 연기가 나면 저 교회 곧 예배드리겠구나 생각이 저절로 나도록 말입니다. 교회 앞마당에서는 권사님 집사님 선생님이 떡 매로 쳐 인절미를 만들고 저와 성도님들이 얼씨구 춤을 추고, 이 모습을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창문을 열고 바라보며 부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낡은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새 짚으로 갈 때는 마을 잔치를 열어 주민들과 흥겨운 놀이를 하는 그런 꿈이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찬송가 소리, 성경 읽는 소리, 시 읽고 노래 부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제가 꿈꾸었던 교회의 모습은 마치 오늘 봉독한 사도행전(2:43-47)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모습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한 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저의 꿈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계신 성도님들의 꿈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각 사람에게 꿈을 꾸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는 자는 하느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저는 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남은 생을 살 것입니다. 우리 벧엘교회의 꿈은 무엇입니까? 아니 성도님들의 꿈은 무엇입니까? 언제 제게 말씀 한번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홀 씨 2004년 6월호에도 실려 있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