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빈이가 밝게 웃는다. ⓒ박철
사람은 어쩔수 없이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추한 것을 싫어한다. 눈은 고운 것을 보면 한 번 더 보고 귀는 감미로운 음악이 들리면 기울인다. 코는 향기를 탐하고 입은 맛있는 음식을 탐한다. 향기로운 것, 감미로운 것, 그리고 맛있는 것, 고운 것 등은 몸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에 속한다. 이처럼 사람의 몸도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눈이나 귀나 코나 입이나 몸뚱이가 아름다운 것을 탐하는 것은 마음이 그렇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름다우면 선한 것이고 마음이 악하면 추한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란 선악(善惡)을 아울러 간직하므로 사랑할 줄 알면서 미워할 줄 알고 벗을 사귈 줄 알면서 거짓말을 한다. 아름답고 선한 모습이 마음에 있는가 하면 더럽고 추한 모습도 숨기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인가? 사랑함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 어진 사람이다. 마음이 고와야 사랑할 줄 아는 까닭이다. 얼굴이 예쁘다고 미인은 아니다. 마음이 예뻐야 미인인 까닭이다. 행복한 삶만 탐내고 불행한 삶을 싫어하는 것은 삶을 온전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상대가 자기를 알아주기 전에 먼저 상대를 알아주는 사람이다. 상대가 자신의 정당한 청을 거절할 때도 자신은 상대의 정당한 청이라면 거절하지 않는 사람이다. 상대가 자기를 미워해도 상대를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상대가 자기를 악하게 대하여 생명의 위험을 느껴도 아름다운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는 사람이다.

상대가 자기 뜻에 지배되듯 따르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자신이 지배받듯 따르려 하는 사람이다. 상대를 자신의 뜻대로 붙잡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픔을 이기고 상대의 마음을 생각하며 상대를 고이 보내 주는 사람이다. 상대를 자신의 뜻대로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뜻에 따라 순종하고 정복당해 주는 사람이다. 상대에게 무엇이나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할 수만 있다면 모두 주는 사람이다.

▲ 넝쿨이와 은빈이. 넝쿨이 머리는 내가 처음으로 깎아 본 것이다. ⓒ박철

상대에게 불필요한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내가 상대에게 상처를 입는 것을 마음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상대를 배신하여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상대에게 배신당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다.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린 상대를 위해 시린 가슴 부여잡고 눈물로 축복해 주는 사람이다. 자신을 배신하고 떠나버린 상대를 못 잊어 홀로 우는 사람이다.

▲ 신누리. 최고의 사진 모델이다. ⓒ박철

떠났던 상대가 다시 자기를 찾아 돌아와 줄 땐 지난날의 잘못을 다 용서해 줄 수 있는 사람이며 반가워 뛰어나가 영접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언제나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더 생각하고 살려는 마음이며 상대를 위해 모든 것들 희생과 봉사로, 심지어는 자신이 생명의 위험에 처해도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이다.

삶은 항상 행복과 불행이 아울러 꼬여 있으므로 어진 마음은 삶이 행복하든 불행하든 사랑한다.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데 지나쳐도 탈이고 삶의 불행을 저주해도 탈이다. 세상이 잔인한 상처를 입는 까닭이다. 부정부패는 삶의 행복을 지나치게 욕심 부리다 짓는 어리석음이고 강도 살인은 삶의 불행을 저주하다 짓는 어리석음이다. 삶을 사랑할 줄 몰라서 부정부패도 있는 것이고 살인강도도 있는 것이다.

높은 자리에 있을 때 건강을 자랑하던 사람이 죄를 짓고 감옥에 가면 당장 병이 생긴다. 고혈압도 생기고 당뇨병도 생겼다면서 병보석을 신청한다. 영화를 누릴 때는 건강하더니 감옥에 들어가선 병이 깊다고 하는 고관들은 어질지 못한 인간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다. 어질지 못한 사람은 중하면 중하다고 안달을 떨고 좋으면 좋다고 호들갑을 떤다. 방정맞은 인간들은 어디서나 방정을 떨 뿐이다.

"첩이 간드러지게 웃으면 본처는 속병을 앓게 된다"는 말이 있다. 간사한 마음은 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리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들들 볶아 피를 말리고 고소해 한다. 무엇이든 분풀이를 하려 드는 간사한 마음은 무엇을 사랑할 줄 모른다.

듬직한 사람은 중하면 중한대로 무던히 견디고 편한대로 지낸다. 어질기 때문이다. 어진 마음의 사랑은 재속의 불처럼 드러내지 않아 그저 사랑할 줄 알고 행할 뿐 그것을 앞세워 이용하지 않는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사람은 공치사를 입에 달고 신세를 갚아 달라고 은근히 찜을 넣는다. 영리하고 맹랑한 사람은 사랑함을 팔아 명예를 사려고 이용하는 짓을 버리지 못한다. 오로지 사랑함을 행하는 사람만이 남을 좋아할 수도 있고 미워할 수도 있다.(唯仁者 能好人 能惡人)

겨울철에 자동차 운전을 하다 보면 차 유리에 성에가 많이 끼어 불편하다.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으니 운전하는 데도 위험하다. 충분히 자동차를 예열을 해서 성에를 제거한 다음 출발하는 것이 좋다. 이처럼 인간의 행복과 불행도 다 자기로부터 출발한다.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고 자기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깊이를 알지 못한다.

자기를 객관화 할 줄 아는 사람은 자기 내면에 더욱 성실할 수밖에 없다. 바울 사도는 "내가 자족하는 삶의 비밀을 터득했노라"고 했다. 신앙의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보게 되었다는 말이다. 깊은 각성(覺醒), 깨달음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높은 건물 작은 병실에 두 사람의 환자가 있었다. 한 사람은 창가 쪽 침대에, 한 사람은 벽 쪽 침대에 누워있었다. 창가 쪽 침대의 환자는 벽 쪽 침대의 환자에게 창밖에 보이는 것들을 그림 그리듯 자세히 설명해주곤 했다. 밀폐된 공간 같은 병실에서 바깥 세계의 공기처럼 그 이야기는 신선했다.

"지금 빨간 꽃들이 핀 길로 유모차를 밀고 젊은 엄마가 지나가고 있지요. 그 옆에는 하얀 모자를 쓴 서너 살쯤 된 귀여운 아이가 풍선을 들고 따라가고 있어요. 아이가 든 풍선은 노란 색이고 아이는 하늘색 셔츠에 하얀 바지를 입은 아주 귀여운 사내아이예요. 저런 넘어져버렸네…."

벽 쪽의 환자는 창가 쪽 환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름다운 잔디와 꽃들과 날아다니는 새들 그리고 다정한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창 쪽에 누워있던 환자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고 있었다. 벽 쪽 환자는 순간 그가 위험한 순간을 맞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간호사를 부르는 벨을 누르려다가, 갑자기 "저 환자가 죽어나가면 내가 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창 쪽에 누워있던 환자가 주검으로 실려 나가던 날, 그의 자리는 창 쪽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그가 내다본 바깥세상에는 꽃도, 새도, 풍선을 든 아이도 없었다. 높은 회색 담이 가로놓여 있었을 뿐이었다.

인간의 이기심이 빚어낸 비극적인 이야기다.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사랑을 죽여 가는 일이 지금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연출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고통을 감수하며 또 다른 병든 자를 위해 아름다움을 지어냈던 창가 쪽 환자의 역을 맡아 살아가는 선한 사람들이 지금도 있기에 우리는 세상을 아름답다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계절은 망종(芒種)을 지나 여름 들머리에 들어섰다. 마음의 창(窓)을 활짝 열고 온 우주를 품자. 욕심을 버리자. 고약한 말을 쓰지 말자. 내 것이라는 감옥에 갇히지 말자. 넉넉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자. 마음의 그릇을 넓히자.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자.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자.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

바라보면 지상에는 나무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없다
늘 하늘빛에 젖어서 허공에 팔을 들고
촛불인 듯 지상을 밝혀준다.
땅속 깊이 발을 묻고 하늘 구석을 쓸고 있다
머리엔 바람을 이고
별을 이고 악기가 되어 온다
내가 저 나무를 바라보듯
나무도 나를 바라보고 아름다워 할까
나이 먹을수록 가슴에
깊은 영혼의 강물이 빛나
머리 숙여 질까
나무처럼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나무처럼 외로운 사람으로 살고 싶다
혼자 있어도 놀이 찾아와 빛내주고
새들이 품속을 드나들며 집을 짓고
영원의 길을 놓는다
바람이 와서 별이 와서
함께 밤을 지샌다
(이성선 詩. 아름다운 사람)

(이 글은 새가정 2004년 2월호에 실린 내용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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