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유학을 하거나 연수를 받고 온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미국사람들은 예의가 참 바르고 좋은 사람들이라고들 말한다.

문제는 부시가 아니다

그런데 그 착하고 좋은 미국사람들이 민주적 선거를 통해서 뽑은 미국의 대통령은 왜 그리도 세상에 겁이라고는 없는 사람처럼 자만에 가득 차 있는 것일까? 그것이 단지 그 사람의 개인적인 삶의 괘도와 그것이 낳은 상흔이 만들어 낸 개인적인 결과물인 것일까? 아니다.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부시라는 사람이 가진 개인적인 성정이 그의 정책들을 더욱 잔인하고 안하무인격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결코 부시라는 개인의 성격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아니다.

최근 이라크의 감옥에서 자행된 천인공노할 일들이 차례차례로 공개되면서 부시 미국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락했지만, 그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의 지지도는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 미국에서도 이라크 전을 반대하는 데모가 있었고, 미국인들의 여론조사에서 이라크 침공을 반대한다는 결과가 상당히 높이 나오기는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여론이었을 뿐이다.

참담했었던 9·11 테러가 있었을 때 미국은 침울했었고, 국가전체가 참담한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그 암담하고 침울한 분위기는 곧바로 바깥에서 그 화살을 돌리고 시작했고, 악의 축을 응징하는 것에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인들 중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대다수가 그 정책에 동의했었다. 9· 11 테러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고 그 사망자들 중에는 비행기를 몰고 무역센터로 돌진했던 테러리스트들도 있었다. 그들은 왜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버렸을까? 이스라엘에서, 이라크에서, 그리고 체첸에서….

그리고 다른 많은 자살테러공격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항상 그 테러로 인해 사망한 희생자들만을 생각한다. 그들과 함께 폭사했던 폭탄을 메고 달려갔던 사람들의 찢어지는 육신과 그렇게 하기까지 그들이 겪어야만 했을 찢어지게 아픈 마음을 생각하는 신문기사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들은 왜 그렇게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까운 목숨을 남을 죽이는 일에 바쳐야만 했던 것일까.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일까.

연금수혜자, 주머니가 두둑하면 '그만'

나는 생각한다. 흔히들 말하는 미국행정부의 권력주위에 포진한 매파들의 집단일까? 군산복합체와 석유자본의 엄청난 압력과 로비력 때문일까. 부시라는 약간 정신 나간 것 같은 잘못된 지도자 개인의 판단 때문일까? 아마도 그 모든 것이 오늘날의 세상을 지금과 같이 만드는 데 작용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것이 그 모든 것들의 이유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의 착하고 선량한 사람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또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때로는 반전데모에 자신들의 귀중한 시간을 기꺼이 바치기도 하는 사람들. 나는 바로 그들이 오늘날의 세계를 이렇게 만들어가는 주범이라고 생각한다.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서 찬찬히 관찰해보는 그들의 삶은 결코 그다지 풍요롭지는 않다. 그저 우리들의 삶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거나, 때로는 강남의 거리에 비해서 전혀 번화해 보이지도 않는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그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실직에 시달리고 있고, 그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바로 그들의 고통이, 그들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희망이, 그리고 그들이 그들의 삶의 수준을 유지하려는 욕구가 바로 오늘날의 세상을 이렇게 만든 원인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비난받아야 할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다. 오늘의 세상을 약육강식의 피비린내 나는 세상으로 만든 것은. 바로 그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들이다.

총칼을 들이대는 전쟁만이 잔인한 것인가. 신자유주의의 파고가 닥칠 때마다 한 국가의 경제가 초토화된다. 바로 얼마 전에 우리가 그것을 경험했었다. 그것이 국제투기자분의 잘못이라고? 아니다. 선량한 미국 연금생활자들의 잘못이다. 그들의 노후연금을 운용하는 국제 펀드들이 바로 우리나라 경제를 무너뜨린 주범이었다. 악질적인 핫머니는 단지 그들을 부추기고 그들의 움직임을 선도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미국의 연금수혜자들은 그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것에 만족해 우리나라의 아픔에 아무런 눈길을 돌리지 않았었다.

미국인과 우리의 모습은 다른가?

이라크도 마찬가지다. 9· 11 이 일어난 원인에 대해서 그들은 깊이 생각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안정적인 생활과 안락한 삶일 뿐이다. 그들의 안락한 하루를 위해서는 재정적자를 채권발행으로 보전해야 하고, 무역수지적자를 외국의 달러화 보유고를 높이는 것으로 보전해야 한다. 또 미국의 장래를 위해서는 석유를 확보해야 한다. 미래의 적 중국으로부터 미국인의 안락함을 유지하기 위해선 싹이 자라기 전에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 이라크전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중국포위 전략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인의 대표자는 그들 국민의 삶의 수준을 유지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미국은 세계 도처에서 경제적으로 그리고 근사적으로 더욱 공격적으로 되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국민들의 표를 얻고 권력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해집단들의 요구와 로비는 그 기본적인 방향위에 좀더 추진력을 가하고 방향을 약간 바꾸는 역할을 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도 이라크에 파병을 한다고 한다. 우리도 외국에 수출기지를 만든다. 국제적인 경제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한다. 그래서 우리의 경제는 어려운 중에도 겨우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혹시 우리의 모습이 미국인들의 모습의 아류는 아닌 것일까.

우리가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조정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단지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 뿐이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도 '소제국주의'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의 선량한 사람들이 타인들의 가슴에 못을 박듯이 우리도, 혹 우리도 누군가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은 아닐까.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