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신도회 교우들이 조별 토론을 벌이는 모습.
해인교회가 지향하는 몇 가지 목표가 있다. 그 첫째는 말씀을 실천하는 교회다. 말씀을 실천하는 것은 모든 교회의 소망이다. 그러나 그 초점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일반적으로 교회는 말씀을 배우는 것에 초점을 둔다. 제자훈련 등의 프로그램은 대부분 그 목표가 제자로서 말씀을 실천하며 이웃사랑이나 사회봉사 등을 통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보다 또 다른 제자를 양육하는 자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둔다. 결론은 조직확대이며 교회성장이다. 세속성은 여기에 근거한다.

나는 고등학교 때 CCC에서 훈련받았다. Ten Step 교재를 통해 훈련받고, 지도자교육을 통해 순장까지 되었지만, 성경공부를 하는 동안 단 한번도 사회봉사나 고아원을 방문한 적은 없었다. 순장으로서 순(旬)의 성경공부와 양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순원들을 관리할 뿐이었다. 대학 때에도 CCC를 다녔지만 고등학교 때와 별반 다른 것을 느낄 수가 없었고 좀 더 다른 욕구가 있어 IVF에 가입했다. 그곳에서 CCC의 순과 같은 셀(Cell)에서 비슷한 유형의 성경공부를 했다. 특별활동으로 '사회참여와 기독교'라는 주제로 성경공부와 강연회 등을 했다. 복음주의적 사회참여라는 주제가 흥미를 끌었지만 역시 실천 없는 관념적인 논의 수준에 머물렀다.

당시 대학은 전두환 군사정권 아래 있었지만 1984년부터 학원자율화를 맞아 학원소요가 연일 계속되던 시기였다. 금기였던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사진과 역사적 진실이 학원 곳곳에서 논의되었고, 전두환 군사정권에 대한 퇴진 시위로 대학은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러나 CCC나 IVF는 이에 대한 토론조차 꺼렸다. 그리고 그런 진실에 대해 성경공부 시간에 질문을 하거나 토론을 제안하면, 마치 잘못된 사상에 오염된 것처럼 여기거나 올바르지 못한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여겨져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말씀공부가 현실과 역사와 동떨어진 채 공부하기를 강요하는 꼴이었다. 극히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자기 생활에 대해서만 성경적인 이해를 구할 뿐이었다.

더군다나 성경공부 교재는 주제별 성경공부 유형 일색이었다. 이와 같은 방식은 신앙을 하나님, 성령, 교회, 전도 등과 같은 주제 아래 가두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울부짖음에 응답하신, 역사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은 찾을 수가 없었다. 전능하신 하나님, 자비하신 하나님은 역사 현장에서 울부짖는 버림받은 이들을 외면하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찾는 이들을 만나 주실 뿐이었다. 가난한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 창녀와 세리를 측은히 바라보시며 치유의 능력으로 저들을 세워주시던 예수님은 찾아 볼 수 없었다.
▲ MBTI를 마친 후 같은 유형의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성경을 공부하는 모습.

고통에 응답하는 하나님 사라진 성경공부

나는 말씀 그대로 실천하는 교회는 "그 때, 그 자리의 예수님을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난한 자, 억눌린 자에게 자유와 희망의 소식을 선포하는 교회로서, 교회 자체를 위한 확대재생산보다는 이웃들과 함께 하며 지역에서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 가는, 그런 교회를 함께 만들어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았다. 교우들 모두가 목회자의 뜻을 이해하고 따르는 것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교우들은 "성경공부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어떤 교재를 사용할 것인가, 교우들이 얼마나 참여 가능한가"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고, 거의 팽팽하게 반반으로 나뉘었다. 초신자에 가까운 이들은 성서를 읽는 과정 자체가 힘들었다. 이들에게는 오히려 주제별 성경공부가 유용했다. 제직회원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역사적 배경과 함께 성서의 행간을 읽어가며 성서의 역사와 문화, 지리 공부를 곁들였다. 사람들은 이렇게 성경공부를 해 보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성경공부는 교우들 간의 서로 다른 성향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주제별 성경공부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보수적인 신앙 색깔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성경공부 시간이 좀 더 은혜롭고 뜨겁게 기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랬다. 반면에 성경의 역사와 문화, 지리를 겸해서 공부하는 이들은 목회자의 인도방식조차도 싫어하는 경향이 짙고, 토론을 중심으로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 조별로 모여 성경을 공부하는 청년 교우들.

처음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성경공부 방식만을 고집하던 교우들도 색다른 경험을 하면서 다른 방법에도 장점이 있기는 있구나 하는 느낌을 얻는 것 같았다. 성경공부는 교회 안에 항상 있었던 보수적 성향의 교우들과 지적이고 진보적인 경향의 교우들이 서로를 열어 보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말씀 아래 설 때 건강해지는 교회

그 다음에는 수련회를 앞두고 「가정사역을 위한 성경공부」를 통해 가정폭력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이들과 가정이 해체된 노숙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성경공부를 준비했다. 단지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한 준비훈련이었다. 예기치 못한 수확이 이 성경공부를 통해 얻어졌다. 자신의 가정을 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쉽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가정사역을 위한 성경공부가 삼 년 째 되던 해에 비로소 교우들 안에 작은 파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교우들이 사명을 얻기 시작했고, 다니던 직장을 접고 교회가 세운 내일을 여는 집에서 일하기로 마음 먹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교회개혁은 말씀공부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옳다. 종교개혁은 성경번역을 통해 민중에게 성경을 돌려 준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중교회는 성경을 새롭게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했고, 진정 그리스도인을 변화시키는 것은 말씀의 힘이다.

교회는 무엇보다 도그마로부터, 성경교재로부터, 목회자의 욕심으로부터 말씀을 자유롭게 해야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아래 설 때 비로소 건강해진다. 그야말로 성경공부는 인간의 계획을 넘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룬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영혼과 정신을 갈라 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 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을 드러냅니다"(히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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