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앞선 세대 선배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렸다. 타는 목마름으로 '독재타도'를 외쳤다. 오늘 우리는 그들이 흘린 피의 혜택을 보고 살고 있다. 민주주의가 얼마나 간절했던가. 그리고 독재는 얼마나 증오의 대상이었던가.

나는 보수적인 기질의 정치인들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운운할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편이지만, 확실히 우리 시대의 확고부동한 정치적 가치로서 민주주의는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 정체(政體)로서의 민주주의가 교회에서는 그다지 실효성이 없어 보이는 것 같다. 어지간히 규모가 있는 교회치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가 없는 곳이 없다. 이들의 강력한 지도는 제 아무리 큰 맘모스형 교회라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속도와 힘을 숭배하는 세태 속에서 만인대제사장으로 부름받은 성도들 역시 보다 큰 인간적 권위에 종속하고 싶어하는 병리적 행태에 익숙해져 있다. 지금 그들은 민주적 지도력의 주체가 되기보다 사도-마조히즘의 희생자들이 되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

함께가는공동체교회는 당회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장로가 없기 때문이다. 아직 규모가 크지 않은 탓이다. 그래서 교회법에 따른 당회를 구성할 권한이 없다. 후일 장로가 생겨날 것이다. 그러면 당회가 구성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당회가 구성된다고 해도 그것이 교회의 운영과 향방에 그다지 심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는 수직적 지도력보다는 수평적 지도력을 보다 교회다운 정체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교회는 '교회공동체회의'와 '교회운영위원회'를 통해 모든 의사가 결정된다.

지난 주일에 운영위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같이 식사를 했다. 그리고 여름캠프의 방향과 일정에 대해 논의했다. 회의 속에서 얼추 윤곽이 드러났다. 그러나 지금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여름캠프의 내용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목사 역시 운영위원의 한 사람으로 열띤 토론을 거치는 일이다. 캠프의 방향과 일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캠프의 내용이 이러한 민주적 지도력과 의사소통 과정으로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목사가 되기 전 여러 교회에서 전도사로 섬긴 적이 있다. 당회 중심의 교회 운영의 이점이 무엇인지 모르는 건 아니다. 그것이 가지고 있는 좋은 점에 대해서도 분명히 수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 시대는 평신도 지도력을 진작하고 교회가 독재자의 것이 아님을 제도적으로 천명해야 할 뚜렷한 사명을 안고 있다. 그것이 교회 부패의 온상이요, 구조적 원인이라면 더욱 그러하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나는 이 길이 1인 중심, 당회 중심의 지도력을 혁파하는 길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믿는다.

초기 교회의 디엔에이(DNA)가 교회의 미래를 결정한다. 교회의 꼴을 어떻게 지을 것인지 초기에 가졌던 확고하고 흔들릴 수 없는 비전이 후일 교회의 실제 모습이다. 왕정에서 민주로, 독재에서 민주로 이행해 가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오늘날 제도적 교회의 합당한 반응은 무엇인가?

아직은 결론이 힘겹고, 느리며, 실행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바른 교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가는공동체교회는 늘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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