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가까운 담임목사의 독단적인 교회 운영에 상처를 받은 8명의 장로를 비롯해 중직들 200여 명이 교회를 떠나는 아픔을 겪었던 상도감리교회(서울 동작구 상도동 373-3·이종대 목사). 최근 들어 교회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일부 교인들이 지난 상처를 딛고 일어나 교회개혁의 첫 삽을 떴다. 800명 가량 되는 교인 중 200명 정도가 동참 의사를 밝힌 '교회사랑선교회'는 6월 6일 창립총회를 열었다,

이날 2명의 시무장로를 포함해 교회 중직들이 대거 동참, 출발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특히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났던 장로, 권사, 집사들이 상당수 이날 모임에 참석해 교인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고,  이들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기쁨과 감격에 찬 인사로 화답했다. 

이들은 이종대 담임목사의 독단적인 교회 운영을 더 이상 묵과하지 않고 건강한 내용이 담긴 정책들을 만들고 집행해 새로운 교회로 거듭날 것을 다짐했다. 선교와 구제, 기도와 교육 등 교회가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할 수 있도록 감시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개혁의 중심체가 되겠다는 것이다. 98년 김남채 집사를 비롯해 극소수의 교인들이 개혁을 외치다 왕따당하고 쫓겨났던 상황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교회사랑선교회는 갑작스러운 개혁보다는 순리에 따른 개혁을 지향하기로 했다. 이들은 교회의 구역위원회와 속회, 인사위원회 등에 개혁적인 생각을 가진 교회 중직들을 포진시켜 점차적으로 교회를 변화해나가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 제도개혁과 함께 매월 1회 세미나를 개최, 의식개혁도 병행해 나가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와 함께 새벽기도와 정오기도회 등을 열어, 자칫 개혁운동을 하다가 소홀할 수 있는 영성생활도 강화하기로 했다.

몇 명의 썩어진 밀알이 개혁의 씨앗으로 부활

▲ 교회의 개혁을 위해 뜨겁게 기도하는 교인들. ⓒ뉴스앤조이 이승규
상도감리교회는 1998년 교회 부지를 매입했다. 그러나 잔금을 치르지 않고, 그 돈으로 엉뚱하게 교육관을 신축했다. 이로 인해 교회의 공신력이 실추됐고 지역주민들로부터 눈총을 받았다. 교인들은 상처를 받았고, 생각이 다른 교인들끼리 다툼이 일어났다. 그러면서 많은 교인들이 자의 반 타의 반 교회를 떠났다.

당시 건축위원회 서기였던 김남채 집사를 비롯해 몇몇 교인들이 이 목사가 독단적으로 교회를 운영한다고 항의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돌아온 건 교인들의 냉소 어린 비난과 출교뿐이었다. 김 집사는 인터넷사이트 '교회바보(교회바로보기·www.ohmychurch.net)'를 개설하고 외로운 투쟁에 들어갔지만 개혁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들의 외로운 개혁작업이 힘을 받은 것은 2003년 말. 교인들이 떠난 이후에도 이 목사의 독단적인 교회 운영이 계속되자 시무장로인 박환창 장로와 송조영 장로가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외부에서 개혁운동을 계속하던 교인들과 손을 잡았다.

이들은 2004년 3월 7일 1차 모임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이 목사 측근들의 방해로 무산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몇 차례 준비모임을 가진 교인들은 교회사랑선교회를 창립하게 됐다. 

"교인들이 이렇게 변하다니...', 돌아온 교인들 '감개무량'

▲ 상도감리교회의 개혁을 부르짖다 떠난 교인들은 이날 기존의 교인들과 반가운 만남을 가졌다. ⓒ뉴스앤조이 이승규
이날 창립총회에는 개혁을 외치다 떠났던 교인들이 많이 참석했다. 기존의 교인들과 반가운 해후를 한 이들은 그러나 상도감리교회로 다시 돌아올지 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이들의 복귀 여부를 고민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종대 담임목사. 떠났던 교인들은 이 목사가 담임목사로 있는 한 상도감리교회의 개혁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30여 년간 상도감리교회를 다니다 지난 2000년 출교된 김연자 권사 역시 생각은 같다. 김 권사는 이 목사의 부조리를 지적하다 남편과 함께 출교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김 권사는 "이 목사가 있는 한 상도감리교회에 다시 나올 수는 없다"고 말해 이 목사에게 받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김 권사는 그러나 "2000년 당시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않던 교인들이 이렇게 변했다니, 감개무량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목사의 문제점 23개항을 만들어 교인들에게 유포하다 출교 당한 이해복 장로. 이 장로는 2000년 교회를 떠났다가 2003년 8월 다시 상도감리교회로 돌아왔다. 그는 "계란으로 바위를 계속 치다보니 결국 깨질 조짐이 보인다"며 교회사랑선교회 창립을 축하했다. 이 장로는 "교인들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 이만큼 왔다"며 "이제부터 개혁작업이 시작이다"고 말했다.

이날 선교회 서기로 선출된 장관호 집사 역시 2002년 상도감리교회를 떠났다. 2004년 다시 돌아 온 장 집사는 "이종대 목사의 생각을 바꿔서 함께 가길 원했지만 이 목사의 생각은 바뀌기 쉽지 않을 것 같다"며 "결국 이종대 목사가 사임을 해야 상도감리교회의 온전한 개혁이 이루어질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이 받은 상처가 쉽게 아물지는 미지수다. 서로 믿고 의지했던 교인들에게 욕설과 폭력을 당한 기억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해복 장로는 "교회사랑선교회 창립총회에 와서 보니 당시 멱살잡고 싸우던 사람들이 꽤 있다"며 "화해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김연자 권사 역시 "당시 성가대 봉사를 하고 있던 나를 끌어내리고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던 기억들이 남아 있다"며 "당시 교회를 떠나 얼마나 방황을 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초대회장 박환창 장로, "교인들 스스로 개혁에 앞장서자"

▲ 교회사랑선교회 초대회장으로 선출된 박환창 장로. ⓒ뉴스앤조이 이승규

"그동안 섬김의 목회, 사랑의 목회를 해 주길 기도하고 기다렸지만 이젠 한계에 부딪혔다."  교회사랑선교회 초대회장으로 선출된 박환창 장로는 건축위원장을 지내고 이종대 목사를 최 측근에서 보필하던 장로다. 그러나 교인들 위에 군림하고 상도감리교회를 개인화하려는 이 목사의 전횡을 더 이상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어 교회사랑선교회에 참여하게 됐다.

선교회가 이날 창립총회에서 주요 사업계획을 선교와 구제 등으로 밝히고 있지만, 실질적인 취지는 상도감리교회의 개혁이다.

그러나 그는 너무 갑작스러운 개혁보다 순리에 맞는 개혁을 선호하는 편이다. 교회사랑선교회 회원들을 구역위원회와 기획위원회 등에 참여시켜 교회를 바로세우기 위한 작업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이종대 목사의 거취와 관련, 박 장로는 "개혁을 한다는 사람들이 법을 더 잘 지켜야 한다"며 물리력으로 이 목사의 거취를 결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비췄다. 박 장로는 "이종대 목사가 교회를 이렇게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감리교 교리와 장정대로만 했어도 이런 사태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장로는 "이종대 목사에게 아직도 기회는 있다"면서도 "지금까지의 방법으로 교회를 운영한다면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고 경고했다. 박 장로는 교인들에게도 "이제 이 목사를 의식하지 말고 교인들 스스로가 교회를 개혁하는 데 앞장서자"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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