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어두웠던 시기가 아합의 때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책들을 읽어 보면 오므리와 그 아들 아합으로 이어진 시기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외교적으로도 안정이 되고 무역도 살아나면서 경제적으로 번성했던 풍요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오므리 왕조에 의해 열려진 정치적인 안정과 경제적인 번영은 이방 문화의 유입으로 말미암아 야훼 신앙의 상실, 바알과 아스다롯의 거짓 선지자들의 발흥, 백성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잊게 하는 영적인 위기를 일으킵니다.

영적인 위기, 혼합주의

이는 정치적인 안정이나 물질적인 번영의 외면적인 축복이 반드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해 성실하게 하는 영적인 부요함과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입니다. 열왕기상· 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아합의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이고 도덕적인 실상은 몇 가지로 요약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방 종교의 유입으로 인한 야훼 신앙의 약화와 혼합주의 등장입니다. 둘은 거짓 선지자들의 발흥입니다. 수적으로만 본다면 바알 종교의 선지자들 야훼 하나님의 선지자보다 훨씬 강한 세력이 되었습니다. 셋은 백성들의 미혹입니다. 그들은 야훼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혼란에 빠져 버렸습니다. 넷은 영적인 배척입니다. 그들은 엘리야 당대의 모든 하나님의 종들을 죽여 버리는 악행을 행하였을 뿐 아니라 이제는 마지막 남은 엘리야마저 해하려 했습니다. 다섯은 공의의 상실입니다. 나봇의 포도원 강탈과 살해는 아합과 이세벨 권력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내리신 재앙과 기근으로 고통이 극심한 시기였습니다. 엘리야의 기도에 의해 열대의 기후를 가진 이스라엘에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아니하였고 그로인한 기근으로 큰 고통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이럴 때에 한 위로가 있는데 그것은 악의 근원이 된 권력과 그의 비호를 받던 거짓 종교가들, 그리고 백성들의 영적인 무지에 대항하여 소수이지만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병거와 마병으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던 이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엘리야 , 엘리사에 의해 세워진 선지 학교의 생도들, 무명의 7천여 명의 남은 자 들과 은밀히 하나님의 선지자를 돕던 궁내 대신 오바댜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왕하의 말씀은 그중에 하나였던 엘리사와 그의 후계자였던 게하시의 일입니다. 엘리사가 아람 군대장관 나아만의 나병을 고쳐줍니다. 이에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되고 엘리사에게 감사의 표로 사례를 하고자 하지만 엘리사는 거절합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이때 엘리사의 뒤를 이어 선지자 수업을 받던 게하시가 그만 시험에 빠집니다. 그는 은밀히 나아만을 쫓아가 엘리사가 선지자 생도 중의 한 사람에게 줄 재물을 요구했노라며 거짓말을 하고 은 두 달란트와 옷 두벌을 받아 감춥니다.

이런 게하시의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마음에 하나님의 감동이 주어집니다.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게하시는 문둥병에 걸릴 뿐 아니라 엘리사의 뒤를 이을 선지자로서의 위치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만약 게하시가 엘리사가 엘리야를 흠모하고 쫒았던 것 같이 그렇게 행하였다면 이스라엘의 선지자의 역사는 엘리야 엘리사 게하시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선지자의 반열에서 떨어져 나가고 맙니다.

긴박한 시대인식, 치열한 마음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게하시의 탐욕과 실패뿐 아니라 엘리사의 당대에 대한 긴박한 시대 인식과 그의 하나님의 선지자로서의 치열한 마음가짐입니다. 그의 이런 비장한 시대 인식이 "지금이 어찌 금을 받으며 은을 받으며 우리가 무엇을 취할 때냐"라는 말 속에 진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기독교와 현대 문명」이라는 역사책을 쓴 크리스토퍼 도슨이라는 금세기의 저명한 가톨릭 역사학자는 그 책에서 교회들의 성장과 몰락에 관한 중요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초대 교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교회사를 7단계로 나눕니다. 그리고 그 7단계의 교회사는 매 단계마다 세 개의 사이클을 반복하며 흥왕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하고 다시금 일어서기도 하는 일을 되풀이 했다고 말합니다. 매 교회사의 첫 번째 사이클은 활발한 영적 활동이 있는 시기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새로운 역사적 상황을 맞이하여 그에게 맡겨진 사도직 수행을 위해 전념하는 시기를 말하는데 이때에 교회는 헌신과 수고와 충성이 있고 또 사도적인 희생과 모범이 되는 제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날마다 성전에 모여 기도하고 유무상통하며 칭찬 받고 또 유대인 이방인 헤롯과 빌라도에게 우겨쌈을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담대히 이겨나가던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이나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핍박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졌니라 하며 나를 본받으라"하던 바울의 모습 같은 것을 말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선교 초기 아주 헌신적인 주의 종들과 성도들의 감동적인 일화들이 많지 않습니까? 저도 지난주 지방 여행으로 갔던 애양원에서 받은 은혜와 감동이 참 컸습니다. 선교사들과 손양원 목사의 희생과 믿음은 참으로 귀한 것이었습니다.

교회 성장과 몰락, 그리고 혼란

두 번째 사이클은 업적의 시기입니다. 이는 소수요 핍박을 받던 교회가 이제는 세상을 정복하며 새로운 기독교 문화와 생활양식 예술과 사상 형태를 창조하는 시기를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기독교가 전래되면서 초기에는 박해를 받았지만 곧 이어 교육, 의료, 출판, 방송, 구제 그리고 사회 정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참 귀한 일을 많이 합니다.

이때는 교회의 번성의 시기요 승리의 시기요 영광의 시기입니다. 세 번째는 퇴보의 시기입니다. 이는 교회가 내외의 새로운 적들에 의해 공격을 받고 두 번째 국면에서 이룩한 업적들을 상실하거나 침해당하는 시기입니다.

외부의 적이라 함은 기독교에 적대적인 사상들이나 문화들의 발흥을 말하고 교회들이 이런 적대적인 세력들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함으로 위축되는 것을 말합니다.

또 내부의 적이라 함은 교회 내부의 변질과 타락을 말하는데 이는 교회들이 에베소 교회처럼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약화되고 또 고린도 교회처럼 도덕적 해이에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경우 파당아나 성적인 문란이나 우상의 제물로 인한 시험 같은 내부적인 혼란이 크지 않았습니까?

교회는 이런 시험을 통해 약화되고 퇴보하는 위기를 당하게 되고 몰락의 길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역사적 정황이 주어지게 되면 이런 성장과 몰락의 새로운 국면으로 다시금 일어서고 발전하고 쇠퇴하는 일들을 반복했다는 것입니다.

빛 잃은 기독교 기관,  몇몇 교회는 '수치' 

이런 도슨의 교회사의 사이클 이론에 비추어 본다면 오늘 우리들은 어떤 단계에 서 있습니까? 저는 우리들이 첫 번째와 두 번째와 세 번째의 모습을 공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에는 지금도 참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교인들과 목회자들을 가지고 있고 또 부흥하는 수많은 교회들과 교육이나 의료 사회 복지나 정의 활동에서 활발한 활동과 인정을 받고 있는 좋은 기관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대표적인 것이 월드비전 같이 공신력을 얻고 있는 선교 구호 단체이고 한동대학교나 거창고등학교 같은 아직도 명성을 잃지 않고 있는 학교들일 것이고 재정적으로도 튼튼할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 활발한 문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성서공회 같은 기관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과거의 영광을 잃고 죽은 기관이 되어 버렸거나 그렇게 되어 가고 있는 기독교 기관들도 부지기수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소위 3빅이라고 불리는 <기독교방송>, <기독교교회협의회>, <기독교서회> 같은 기관들입니다.

한때 한국 사회에 남은 마지막 남은 양심이라고 불렸던 기독교 방송은 이제 오히려 내부적인 갈등조차 해결하지 못해 사회의 비난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때 일반 지식인들에게도 영향을 끼치는 훌륭한 신학 총서들을 발행했던 기독서회도 지금은 빚더미에 앉아 제 목숨조차 연명하기 어려운 그런 곳이 되었다고 합니다.

70년대 한국 기독교교회협의회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새로운 현실 인식과 지도력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떨어져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오늘의 교회들은 성역의 신비스런 베일마저 스스로 벗겨 버리고 수치를 당하는 일들을 벌리고 있습니다.

몇 해 사이 한국의 대표적인 대형 교회들이 도덕적 실패의 수치의 거품을 온 세상에 내 품었습니다. 금란교회, 소망교회, 경향교회, 중앙성결교회 등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교회의 목회자들이 성 스캔들로 매스컴의 비판을 받고 이름만 대면 불신자들도 다 아는 대형교회들과 감독들이 세습으로 세상의 지탄을 받았습니다.

북핵 문제나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 한국 교회를 대표한다는 일부 교회 지도자들이 나타낸 행태는 참으로 퇴행적인 수구 보수 논리였고 식자들과 세상 매스컴으로부터 아예 광신자들의 취급을 당하는 그런 대접을 받았습니다.

오죽하면 그런 사람들에 의해 발기된 기독당이 크리스천만도 20%가 넘는 나라에서 2%의 지지도 받지 못했겠습니까? 저는 우리 교회뿐 아니라 우리 지방적으로도 사정이 별로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들부터 정신을 차려야

제가 이곳에서 목회를 하면서 뼈저리게 깨닫는 것이 제대로 된 사람 하나 얻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 교회 나와도 참 이기적이고 편의적이라는 것입니다. 지방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말 우리들의 마음에 영적인 동일성을 느끼며 일치하는 것과 동역자들에 대한 존중심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표면적으로만 붙어 있어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모습이 우리들의 실상이 아닌가 합니다.

저의 목회 여건은 비교적 좋은 편입니다. 그런데도 참 힘들구나 하는 순간이 많습니다. 제가 그렇다면 제 형편보다 못한 이들은 어떠하겠습니까? 저는 우리 교회의 모습 뿐 아니라 한국 교회의 모습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IMF 이후 벌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며 위기를 느끼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정신을 차려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날 한국 사회의 현상을 한 사회학자가 4가지로 표현했습니다. 하나는 민중 생존권의 급격한 약화(비정규직노동자,농민,저소득층,청년실업,여성) 둘은 민주적 가치의 약화입니다(인권·평화·평등 같은 보편적인 인간 가치들이 신자유주의의 경제적인 가치들과 경제적인 다급성 속에서 소외되는 것을 말합니다) 셋은 급격한 2:8 사회 (빈부 격차의 심화)입니다. 이것은 세계적, 국내적으로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넷은 대외 경제 종속입니다(외국 금융자본의존의 사회의 결과) 이것이 국가 주권의 대외 종속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이 어찌 금을 받으며 은을 받을 때냐 하며 태만한 게하시를 책망하고 거만한 아람의 지도자에게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음을 알게 하던 엘리사처럼, 지금은 목회자들이 정신을 차려야 할 때이고 또 오늘의 새로운 역사적 정황 속에서 치열하게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때입니다.

효덕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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