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전략적 요충지인 라파. ⓒ2002 MIFTAH ALL RIGHTS RESERVED
무너진 건물들이 가득하고, 그 폭탄이 만들어낸 빈터에서 탄피를 주워서 가지고 놀면서 아이들이 자라나는 곳, 팔레스타인.

그곳의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성장하고 있을까? 그들은 하늘에서 날아와 정확하게 맞추는 미사일을 가진 이스라엘에 대한 두려움을 배울까? 아니면 그들의 삶의 조건을 빼앗아가는 이들과 그들의 배후에 있는 또 다른 강대국에 대한 복수의 마음을 배우면서 자라날 것인가.

아마도 팔레스타인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폭탄 만드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 가에 대해서도 배울 것이다. 설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그것을 가르쳐주진 않을지라도, 그들은 그런 지식을 자연스레 습득할 것이다.

마치 어린 시절 어떻게 하면 못된 장난질을 치고도 잡히지 않을 것인가를 머리 맞대고 의논하며 자랐듯이 그들 역시 그런 생각을 하며 자랄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한발 한발 미래의 전사로서의 자질을 갖추며 자라날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말썽 많은 사람, 어디에서나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 되는 연습을 하면서 자랐다. 누가 그렇게 가르쳐 준 것은 아니다. 당시 내게 교육을 시켰던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그렇게 교육시킨 사회체제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선전과 홍보의 중요성에 눈을 뜬 것은 바로 어린 시절의 교육체계로부터다.

담임선생님은 우리에게 김일성은 나쁜 사람이라고 가르쳤고, 6·25 포스터를 그려오라고 시켰었다. 뿐만 아니라 '6·25노래'인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이란 노래도 가르쳐주었다. 우리의 어선이 북한으로 넘어갈 때이면 무조건 납북되었다고 가르치며 학생들을 교정에 세워놓고 궐기대회란 것을 가르치곤 했다.

학교 미술시간에 배운 대로 지우개에 칼로 조각을 해서 '북한 놈은 나쁜 놈이다'고 찍어 인쇄하기도 했다. 밤이면 나는 그 종이를 들고 다니며 딱 풀로 온 동네 전봇대에 그 조악한 인쇄물로 도배를 하다시피 했다. 어쩌면 우리 동네 동장님은 누군지도 모르는 밤 고양이 아이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이라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나는 저녁이면 밤 고양이처럼 몰래 집을 빠져나가서 동네 뒷산에서 '아-아- 잊으랴…'를 목이 쉴 때까지 온 동네에 쩌렁쩌렁 울리게 크게 부르곤 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제법 준비된 소년 선전 대원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내가 사는 한국이 세상의 중심이기라도 한 듯이 생각했다. 마치 이스라엘이 어떻게 아랍을 제압할 것인가를 생각하듯이, 한국이란 나라가 경제전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경쟁자들이 쓴 책들을 열심히 읽어보곤 했다.

그럼에도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모른다. 어떤 것이 정말로 바른 길인지, 도대체 이 어려운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에 대해서. 그런 것들에 대해 나는 너무나 무지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이곳 과테말라는 너무나 많은 가난과, 그 가난이 낳은 너무 많은 폭력들이 난무하고 있는데 그 이유를 나는 잘 모르겠다. 

많은 가난과 그 가난이 낳은 너무 많은 폭력들이 난무하고 있는데 대체 그 많은 폭력들이 왜 잠재워지지 않는 것인지. 또 그토록 많은 폭력 중 얼마만큼이 허락받은 것인지. 또 도대체 얼마만큼의 폭력이 권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지. 패배의식에 젖어 외신은커녕 국내정치 기사조차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 것인지.

나는 우연히 이 슬프고도 가슴 아픈 나라에 흘러들어 왔다. 나를 이곳에 오도록 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그저 순전한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삶의 권태를 이기지 못한 한 낭만적인 방랑자의 아무 가치 없는 걸음일까.

이곳에 머무른 지 벌써 2년. 나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관찰하고 구경하고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신자유주의와 이 나라의 뿌리 깊은 봉건가문들이 나라를 어떻게 망쳐가고 있는지, 이 나라의 젊은이들은 어떻게 병들어 가고 있는지, 아 나라 사람들의 뼈 속 깊은 곳까지 스며든 패배의식은 도대체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지.

왜 이들의 혁명은 실패하고 만 것인지. 나는 아직 그 원인을 모른 채 방관하듯 바라보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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