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애 권사님. 집을 수리하고 기념으로. ⓒ박철
김경애 권사님이 하루 종일 밭일을 하다가 장화에 흙이 달라붙어 수돗가에서 장화를 물로 씻으려고 허리를 굽히는 순간 허리가 '삐거덕' 하면서 다치셨습니다. 김경애 권사님 말씀으로는 옴짝달싹 할 수도 없고, 엉금엉금 기어서 간신히 방에까지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그 이튿날 허리를 다치셔서 꼼짝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몇 분 교우와 함께 달려갔습니다. 김 권사님은 일어나 앉지도 못하시고 괴로워하셨습니다.

몹시 아파하시는 모습을 보고도 내가 어떻게 해드릴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하느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습니다. 아무래도 큰 병원에 가셔서 정확한 검진을 받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마침 인천에 사는 둘째 딸과 연락이 닿아 어머니를 모시러 오기로 했습니다.

김경애 권사님은 올해 연세가 67세입니다. 오래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시고 자식들을 홀로 키워 다 출가시키고 김 권사님 혼자 고향집을 지키고 계십니다. 평소에도 몸이 성치 않아 감기라도 걸리면 절절 매는 분이 집에 딸려 있는 텃밭에 매달려 사십니다. 어찌 보면 노동이 취미이신 분입니다. 언제나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달다 쓰다 말도 없으시고 그저 자식들 잘 되기만을 바라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기도회에 나오십니다. 얼굴은 푸석푸석 붓기가 있어 병색이 완연해도 늘 웃으십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자 서순종 장로님이 한 마디 하십니다.

"권사님, 걱정 마시기여. 목사님이 기도해 주셨으니 금방 낫겠시다. 지난번에 제가 담석증으로 119에 실려갈 때 목사님이 내 옆구리에 손을 대고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기도해주셨는데 온 몸이 따뜻해지면서 괜찮아졌어요. 병원에서는 수술을 해야 된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아무 탈이 없시다. 그러지 걱정 마시겨."

둘째 딸이 어머니를 인천에 있는 병원으로 모시고 가 검진을 받기로 했습니다. 병원심방을 가려고 해도 토요일과 주일이 겹쳐 갈 수 없어 안타까웠는데, 검사 결과 척추에는 큰 이상이 없다는 전화를 받고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병원에서 몸이 정상으로 회복될 때까지 치료를 받고 내려오셨으면 했는데, 사흘 만에 다시 집으로 오셨습니다.

그래도 처음보다 많은 차도가 있어 앉아 계실 수도 있고, 힘들지만 어느 정도 운신할 정도가 되셨습니다. 병원에서 뭐가 그리 급해 빨리 퇴원하셨냐고 여쭸더니 고추 심을 때가 되었는데 그것이 걱정되어 이내 오셨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도 고추타령을 했던 모양입니다.

"의사 선생님이랑 간호사 선생님이 치료를 하는데, 고추 심는 게 걱정이 되어 빨리 퇴원하고 가서 고추 심어야 된다고 자꾸 '고추 고추' 했더니 막 웃더라고요. 갑갑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 고추를 하나 하나 정성껏 심는다. ⓒ박철
김경애 권사님이 집에 오셔서 바로 밭에 나가보았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누가 비닐로 멀칭(mulching)한 밭에 고추 심을 구멍을 다 뚫어 놓았더라는 것입니다. 알고 보았더니 우리 교회 송인학 장로님 내외분이 김 권사님을 집을 지나시다 밭두덕에 비닐을 다 씌워놓긴 했는데 고추를 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두 분이 나무 꼬챙이로 밭이랑을 다 뚫어 놓았던 것입니다.

김경애 권사님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송 장로님 내외분이 김 권사님 자녀분들과 함께 고추를 다 심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수요저녁기도회를 마치고 교우들과 김 권사님 집을 방문했는데 그 이야기를 하십니다.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김경애 권사님 부탁을 받은 것도 아니고, 요즘 같이 농사 준비로 눈코 뜰 새없이 바쁜 때에 김 권사님의 딱한 형편을 생각하고 밭두덕을 전부 꼬챙이로 뚫어 놓은 송인학 장로님 내외분 마음 씀씀이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심방예배를 인도하면서 목사로서 송 장로님의 선행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목사가 교인의 형편을 더 찬찬히 살피고 도울 수도 있었는데, 두 손을 놓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오늘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묵상을 하면서 내가 뉘우쳐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경애 권사님이 아직 몸이 온전치 못하셔서 늘 앉으시던 자리가 비어 있어 쓸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 고추를 다 심고 말뚝을 세워 줄을 띄어 고추를 묶어 주어야 한다. ⓒ박철
농사일에 지쳐 있으면서도 고단한 육신을 이끌고 새벽기도회에 나오셔서 하느님께 기도를 바치고 계시는 교우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들을 잘 섬겨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하느님, 못난 종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말로만 사랑을 외칠 것이 아니라, 이 몸으로 저들을 섬기고 사랑하게 하소서."

기도실에서 나오자 상수리나무 가지 사이로 붉은 태양이 막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