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앤조이 신철민
최근 조용기 목사의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최고위 과정 강연과 관련해서 두 가지 이슈가 있습니다. 첫째, 조용기 목사는 신학적 신념과 관련해서 일관성을 보였는가? 둘째, 기독교인은 불교를 포함한 타 고등종교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첫 번째 이슈와 관련해서 조용기 목사는 일관성이 부족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용기 목사는 문제가 된 강연 후 여의도순복음교회 주일예배시간에 자신이 종교다원주의자가 아니라고 해명했다고 합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국제신학연구원도 조용기 목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고 다만 불교를 대화의 상대자로 인정하는 차원에서 불교 나름대로의 구원과 진리체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지  불교의 구원이 기독교의 구원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동의한 적은 결코 없다고 옹호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조용기 목사의 해명이나 국제신학연구원의 옹호는 궁색해 보입니다. 조용기 목사는 17세 때 폐병3기로 선고받았을 때 "죽고 사는 것은 상상의 산물일 뿐이니 초월하라"는 아버님의 불교적 가르침보다는 병든 자를 고쳐주시는 예수님을 통해 마음의 평안과 병고침을 받았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진리가 나무아미타불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친 원효대사의 외침과 일치한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종교는 불교나 기독교나 마호메트교나 평등합니다"라고 서슴없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질의응답 시간에 "종교는 평등합니다"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고 이어 "불교가 주장하는 것을 비판할 수 없습니다"고 못박아 말했습니다. 한편, 자신의 동생이 불교를 통해서 구원받으리라는 확신을 가진 것과 자신이 기독교를 통해 구원받는 것을 동시에 인정해야한다고 하면서 "내 것만 절대 진리라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를 두고 국제신학연구원 측은 단지 불교신자들과 대화하는 상황에서 불교를 대화의 상대자로 존중한 것뿐이지 결코 종교다원주의라는 사상적 배경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해석입니다. 진정 조용기 목사가 종교다원주의자가 아니라면 아무리 대화를 풀어가기 위한 발언이라도 나중에 번복해야 할 말을 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종교다원주의자가 아니라면 대화의 마지막에 가서는 불교가 약속하는 구원은 진정한 의미에서 구원이 아니며 기독교가 제시하는 구원만이 진정한 구원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기독교 구원만이 절대진리라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조용기 목사가 진정으로 종교다원주의자가 아니라면 불교신자들 앞에서 지나치게 외교적으로 발언한 것에 대하여 사과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뢰받는 정직한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이슈와 관련해서는 우선 불교가 먼저 한국에 뿌리를 내렸고 기독교가 훨씬 더 공격적으로 전도하는 경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를 잘 용인해줌으로 말미암아 종교간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가 계속되어서 평화로운 나라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러나 그와는 별도로 '무엇이 참 진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서로간 진지하고 솔직한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비록 당장 결론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깊은 대화는 서로와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데올로기적인 종교다원주의, 즉 절대적 진리는 없다거나 모든 진리는 평등하다는 주장은 전통과 계시를 부정한 채 순수이성으로만 진리를 탐구하려 했던 계몽시대의 프로젝트가 좌절된 결과로 부상한 것입니다.

이는 참 진리에 대한 모색을 포기하는 불행한 태도입니다. 결국 계몽주의와 다원주의는 동전의 양면인 셈입니다. A. 맥킨타이어가 『누구의 정의? 누구의 합리성?』이라는 책에서 잘 제시한 것처럼 전통에 기반을 둔 합리적 토론을 통해 참 진리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는 확신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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