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교회에서 목사를 제일 아끼는 분들은 연세 높은 어르신(특히 권사님, 집사님)들일 것이다. 나도 이 분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 가끔은 내가 실수를 해 젊은 성도들에게 지탄을 받으면 막무가내로 나서서 목사를 두둔한다. 내심으로 기분은 좋지만 '이건 아닌데' 할 때가 있다.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을 고이 간직하다가 꾸겨진 쌈짓돈 꺼내 듯 남몰래 주신다. 몇 번 사양하지만 뿌리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심방을 하게 되면 목사의 교통비를 챙겨 주시는 몇몇 어르신들이 우리 교회에도 있다. 이런 물질이 대부분 담임목사에게 많이 가게 되고 부목사나 전도사에게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의 표시로 아주 적게 가는 것 같다. 어디서 배운 것일까? 아마도 옛날의 교회가 어렵다 보니 목회자 생활비 제대로 주지 못해 쌀과 반찬거리 등을 성도들이 가져오는 것에서 시작했을지 모르겠다.

나의 아버지가 목회하던 농촌 현장이 그러했다. 받는 목회비는 우리 집 대식구의 생활에 턱도 없이 모자라고, 더구나 교육비는 생각할 수도 없어 어머님의 마음고생은 컸다. 그래도 성도들의 따뜻한 사랑으로 식탁은 그런대로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새벽기도 나가려 사택 문을 열면 호박, 오이, 깻잎, 감자 등등이 놓여 있어 어머님의 눈시울을 적시곤 했다. 아버님은 늘 "목사는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성도들에게 요구나 불평을 하지 말 것"을 가르쳐 주었다. 지금도 그런 형편의 교회들이 많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나의 목회현장은 다르다. 다른 목회자들에 비해 넉넉히 생활비를 받고 있다. 그런데도 성도들이 가끔 교통비를 주시거나 장례식이나 결혼식을 집례하면 봉투를 주신다. 솔직히 그동안 나는 형편이 나은 분들이 주시는 것은 받았는데, 그러다 보니 어려운 분들도 주려 하는 것이다. 어려운 분들의 성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가난하다고 목사가 무시하는 꼴이 되어버린다.

지난 주간도 심방 갔다가 그 집에 다른 교회 다니던 어머니 권사님이 책 사보라고 돈을 주셔서 몇 번 뿌리치다가 지고 말았다. 아내와 의논을 여러 번 했는데 누구에게든지 안 받는 것이 제일이라는 결론밖에 서질 않는다. 내가 존경하는 어느 목사님께 상담했더니 그 분은 받아서 구제하는 일에 열심히 쓰신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잘 안 된다. 자꾸 돈에 욕심이 생기고 가끔은 바라기까지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돈 때문에 양심이 무뎌지는 것을 느낀다.

▲ 방인성 목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요즘 깨끗한 양심 찾기가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공무원 사회는 많이 깨끗해졌음을 실감한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 찾기 운동은 꿈쩍도 않는 것 같다. 지금 교회 안의 봉투를 비롯한 헌금 등의 물질문제는 심각하다. 교회 안에도 돈으로 평가하고 돈으로 해결하려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도시교회와 농촌교회, 대형교회와 개척교회 간의 빈부 차이도 엄청나다. 서로서로 돕기보다 무시와 질타가 난무하다.

언제부터인가 성도들은 축복을 더 받으려고 돈 놓고 돈 먹기 하는 식으로 각종 헌금의 짐에 눌려 눈치 보게 되었다. 목사 잘 모시면 복 받는다는 것이 공식이 되어 버렸다. 헌금 드리는 자세가 나눔을(구제와 선교) 위해서라기보다는 복 받기 위해서였기에 한 번 바친 헌금은 어떻게 쓰이는지 관심 밖이다. 그러니 교회 안의 물질문제에 부패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교회 지도자들부터 헌금문제부터 다시 배우고 교육해야 할 것 같다. 성도들이여! 목사 양심 무뎌지면 여러분 고생입니다. 여러분은 "양심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목사에게 던져 주시고 자신 스스로에게도 해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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