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신철민 |
현재 언론에 드러나 것으로만 보면 교회노조는 교계에서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노조 설립 정당성 여부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이나 직관적인 접근보다는 교계의 깊이 있는 토론과 대화가 필요합니다.
토론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한국교회는 노조설립자체가 주는 도전을 정면으로 응대해야 합니다. 대부분 교회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드리고 있는 담임목사와 부교역자 간의 심각한 대우격차, 부교역자에 대한 부당한 인사 그리고 교회의 유급직원과 다양한 기독교교육기관이나 단체의 사역자들에 대한 열악한 대우 등 산적한 문제들을 비껴가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문제는 벌써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약자였기 때문에 묵살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단순히 교회 안에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지 않느냐는 식으로 노조설립을 비판하며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태도야말로 경계해야 할 점입니다.
한국교회가 이미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자정능력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는 모습을 바라 볼 때 한없는 슬픔을 느낍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잔뜩 괴로우시게 하고 나서는 '어떻게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였냐'고, 하나님을 완악한 말로 대적하고서는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냐'고 시치미를 잡아뗐습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헛된 제사를 더 이상 드리지 못하도록 누군가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문이 닫혔으면 하는 교회가 한국 땅에 얼마나 많을 지 우리는 반성의 시각으로 우리 자신을 심각하게 바라 봐야 할 때입니다. 부패하고 병든 한국교계현실을 직시한다면 우리는 좀더 객관적으로 그리고 정직하게 교회노조설립 정당성 여부에 대하여 논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노조설립을 원칙적으로 반대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교회가 일반 기업과 다르다는 논리는 궁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물론 많은 면에서 다릅니다. 그러나 사람을 고용하고, 이름이야 어떻게 붙이든지, 그에 상응하는 임금 혹은 급료를 지불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습니다. 기업에서는 사용자가 분명하지만 예수님이 머리되시고 교회정치의 주권이 교인에게 있는 교회에서는 불분명하다는 것도 그리 설득력이 없습니다. 교인의 주권을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교회가 몇 되지 않을뿐더러 그렇다고 해도 담임목사는 교인의 위임을 받아 교회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충분히 사용자의 입장에 설 수 있습니다.
▲박득훈 목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
하나님은 교회 안에 하나님의 정의가 먼저 실현되길 원하고 계십니다. 정의란 한편으론 의무수행을 요구하고 다른 한편으론 이에 상응하는 권리주장을 보장해주는 것입니다. 교회 노동자들은 자신을 부당하게 대우하는 교회 사용자들에 대하여 정의의 이름으로 권리를 요구할 수 있고 또 해야 합니다. 불의에 항의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기꺼이 받아드리는 것이 진정한 겸손이요 온유입니다. 교회노조설립으로 교회개혁운동이 한 걸음 더 전진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