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시대로 접어든 한국사회

▲4·15 총선을 계기로 한국정치는 정책으로 평가받는 '상식의 시대'로 접어든 느낌이다. 사진은 민주노동당 단병호 당선자. (사진제공 진보정치)

4·15 총선을 통해서 한국정치는 이제 상식의 시대로 접어든 느낌이다. 아직 만족스런 수준은 아니지만 아무런 차별성이 없었던 과거 향우회 수준의 정당은 하나 둘 퇴장해가고 이젠 모든 정당들이 정책을 가지고 평가를 받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초보단계이기는 하지만 개혁적 실용주의, 중도보수, 중도좌파 등의 용어로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을 내세우려는 움직임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이념구분을 논하기 전에 한가지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한국사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정간법 개정과 엄격한 공정거래법 시행 등을 통한 언론개혁, 그리고 이라크전쟁 반대와 같은 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 더 나아가서 도덕의 문제라는 점이다.

이런 쟁점들은 흥미롭게도 우파가 소중히 여기는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한다. 따라서 자신의 논리에 충실한 일관성 있는 우파라면 이러한 개혁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이 같은 사안에 공개적으로 반대한다는 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수구적이고 비도덕적인지를 만천하에 공개 선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념의 가장 중요한 경계선은 경제정책

이념구분에 있어서 좌파와 우파의 가장 중요한 경계선은 경제정책이다. 경제정책을 다른 말로 하면 국가가 시장의 어떤 부분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우파는 국가의 시장개입을 반대한다. 한마디로 '불개입의 개입'이다.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이 국가보다 더 우월하기 때문에 국가 개입을 통해 시장 문제를 보완하려면 오히려 개입하지 않았을 때보다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고 말한다.

반면에 좌파는 시장을 불신한다. 시장이 실업을 양산하고 불평등을 확대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불완전하여 주기적 불황을 초래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좌파는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여 시장에서 패배한 사람들을 위한 재분배를 실시하고, 시장의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국가의 적극적 개입 - 예를 들어 주요 기간 산업의 국유화 - 을 주문한다.

'호랑이들 위한 자유' 옹호하는 우파…비효율성 검증된 좌파의 정책

필자는 이념 대립에 있어서 우파의 문제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실업, 빈부 격차, 주기적 불황 등을 잘 인정하려들지 않는다. 설사 인정한다해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실업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그들의 언어로 말하자면 노동자가 노동한 것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업문제를 해소되려면 임금을 내려야한다.

현재 임금으로도 먹고살기 어려운데 이 얼마나 천인공노(?)할 말인가. 우파가 이렇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우파 = 기득권 옹호'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는 항상 따라붙을 것이다. 우파는 자신들이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유가 '호랑이들만의 자유'라는 것과 그들이 완벽에 가깝다고 하는 시장이 '악마의 맷돌'과 같은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좌파는 우파와 달리 현실을 인정한다. 아니 인정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끌어안고 분노한다. 이런 면에 있어서 좌파는 대개의 경우 우파보다 도덕적이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 또한 지대하다.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기존 좌파이념에 호의적인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사회에 적용하려는 정책은 이미 역사 속에서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결론 내려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좌파는 광범위한 재분배를 통해 소득이 낮은 계층의 구매력을 높이면 수요가 높아져 투자가 증가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재분배를 통한 투자증가가 발생하기 이전에, 구매력이전정책으로 인한 투자기피현상이 먼저 발생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재분배를 통한 구매력이전정책과 투자증대 전략이 상충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원치 않는 실업이라는 결과를 초래한다. 2차대전 이후 서구 복지국가의 경험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수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영국 블레어 총리의 '제3의 길' '생산적 복지'와 같은 주장은 바로 이런 재분배사회에서 탈출하겠다는 주장의 완곡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부에는 피와 땀이 서려있다"

문제는 현재의 좌파가 보통 사람이 갖는 다음과 같은 평범한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좌파는 먼저 '많이 번 사람일수록 세금을 많이 내야한다면 과연 누가 열심히 일하겠는가?'라는 평범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 너무 궁색하다. 이런 질문은 경제학을 모르는 사람의 어리석은 질문이 아니다. 좌파의 정책은 적은 노력으로 많은 결과를 기대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심성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또한 좌파는 재분배에 반대하는 부유한 자들의 항변에 답변할 논리 또한 궁색하거나 호소력이 떨어진다. 몇 일 전 필자는 이와 관련해서 라디오에서 의미 있는 토론을 들었다. 그 토론은 민주노동당의 부유세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민주노동당의 부유세를 반대하는 토론자는 다음과 같이 항변했다.

"난 억울하다. 난 남들보다 열심히 공장을 경영하고 키워서 고용창출도 하고 종업원 월급도 줄뿐 아니라 국부창출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왜 나의 부를 나눠 갖자고 하는가? 나의 부에는 나의 피와 땀이 배어있다."

이런 항변에 대해 민주노동당에서 나온 사람은 설득력 있는 답변을 하지 못했다. 이것은 민주노동당 측 토론자가 뭘 몰라서가 아니라, 그 주장을 극복할 만한 논리가 사실상 부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 부유한 자에게 "너의 능력과 재능을 다 너의 것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재분배 정책은 정당하다"고 하거나, "너는 네가 가져간 이윤이 너의 노력의 대가라고 할지 모르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모두 노동자의 (잉여)노동을 착취한 것이다. 네가 아무리 착한 공장사장이라 할지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것을 피해갈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과학이다!"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런 주장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감할지, 필자는 솔직히 회의적이다.

좌와 우를 통합하는 토지공유사상

▲토지공유제는 좌파와 우파를 진정으로 통합하는 획기적인 사상이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흔히 우파는 성장을 좌파는 분배를 중시한다고 말한다. 우파의 논리는 파이가 커져야 나눠줄 것도 커지는데, 커지기 전에 분배하면 파이를 키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한번도 성장을 통한 분배의 시점이 언제인지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예나 지금이나 지금은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나눌 때가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그래서 좌파는 이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우파의 논리를 뒤집어서 성장을 통한 분배보다는 분배를 통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분배를 통한 성장이 어떻게 가능한지, 또 왜 그것이 정당한지에 대해 분명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앞의 글에서도 밝혔지만 희년사상의 핵심인 토지공유사상은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추구한다. 이 사상은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먼저라고 하지 않는다. 어떤 과정을 통해서 부자가 됐는지 상관없이 광범위한 재분배를 실시하려는 좌파의 사상과는 달리, 대표적인 불로소득인 토지가치를 공동체인 국가가 환수하자고 주장한다. 왜냐면 토지가치는 토지소유자의 노력이 아니고 공동체의 노력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노력해서 번 임금소득이나 사업소득은 감세 내지 면세하자고 주장한다.

토지가치를 더 많이 환수하면 할수록 유휴토지나 저(低)사용되는 토지는 없어지기 때문에 투자가 활성화되어 일자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개인의 노력에 대한 대가를 그의 것이라고 인정하면 할수록 근로의욕도 더 커지기 때문에 자본생산성과 노동생산성은 증가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저소득층의 구매력이 증가되어 유발투자가 증가한다.

시중에 토지투기를 노리고 하이에나처럼 웅크리고 있는 부동(不動)자금 - 한국에서 이 규모는 300조가 넘는다고 한다 - 을 시장으로 끌어내어 생산적인 곳에 투자하게 만든다. 왜냐면 토지투기를 할 유인이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희년사상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와 같은 막연한 이념적 절충이 아니라, 좌파와 우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드러내고 좌파가 원하는 사회를 우파가 선호하는 자유시장경제체제를 통해서 이룩하게 해주는,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이념통합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한국사회를 개혁하려고 하는 좌파의 가장 큰 관심사는 경제정책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경제개혁 없는 다른 부문의 개혁은 그 한계가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좌파가 내거는 정책은 왜 그렇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논리가 궁색할 뿐만 아니라, 검토한 바와 같이 그 정책의 실효성도 지극히 의문스럽다.

한국의 좌파와 사회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어떤 정책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실현시킬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제대로 된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무엇을 어떻게 실행해야할지, 그리고 그것을 왜 실행해야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필자는 이것이 진정한 개혁의 첫걸음이고, 이제 한국사회는 이것들을 주제로 놓고 토론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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