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달걀을 이웃과 나누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담을 쌓는 것이 아니라 길을 닦는 교회가 되리라 다짐해 봅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4월 달력은 유독 많은 기념일을 담고 있다. 우선 우리 교회에게 중요한 날, 교회당 이전한 날이 4월 3일이다. 이 날에 감사예배를 드렸다. 또 이날은 제주민중항쟁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5일은 식목일이다. 지금 지구가 당하고 있는 생태위기의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다른 어떤 날보다 식목일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11일은 부활주일이고, 18일은 우리 교회와 친분이 있는 낙골교회 창립기념주일이다. 4·19도 있고, 20일은 장애인의 날이기도 하다. 마치 일년의 행사를 한 달에 모두 몰아 넣은 것 같다.

그렇지만 4월의 여러 기념일 중에 나에게 특별히 각인된 날이 있다. 그것은 이전감사예배도 아니고, 장애인의 날이나 장애인 주간도 아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예수님과 함께 가는 것이 교회의 모토이고 보면, 장애인주일이 성대할 것 같은데, 우리 교회에서는 별난 것 없이 그냥 지나갔다. 한 날을 정해서 장애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것이 볼썽사나운 것이라 공감했기 때문이리라. 언제나 함께 살 능력이 없고 대안이 없으면 목소리만 크고 소란스러운 법이다. 준비 안 된 설교를 소리지르고 목청 돋우는 목사님들과 같다. 조용히 지나간 장애인 주일이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성찰하게 만든다.

나는 다른 어떤 날보다 부활주일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왜냐면 이날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우리가 이전해 온 지역과 접촉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옮겨온 서울시 금천구 독산3동 904-16번지 반경 50미터를 돌며, 부활절 계란을 이웃과 나눈 것이다. 다른 교회에게도 그다지 낯선 풍경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교회에 이런 일이 의미 있는 이유는 이 지역으로 옮겨온 뒤 처음으로 동네 아저씨 아줌마 할아버지 할머니, 형 누나 동생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교회가 지역에서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리며, 함께 가는 일에 터를 닦은 최초의 일이기 때문이다.

시간에 맞게 계란을 찌느라 부엌을 부산히 드나드는 선생님들. 급조한 노란색 습자지를 찢어서 계란 담을 바구니를 예쁘게 장식하는 아이들. 그렇게 간단한 몇 번의 작업을 마치고 거리로 나섰다. 교회당 앞 정육점 할아버지, 맞은편 과일가게 아저씨, 아래층 부동산 아저씨, 위층에 세 들어 사는 아저씨 아줌마, 슈퍼마켓 아줌마, 미용실 아줌마, 학교 앞 분식집 아저씨 아줌마, 지나가는 중학생 형들, 부산스럽게 어디론가 향하는 아저씨 아줌마들, 놀이터에 놀던 친구들…. 모두에게 예쁘게 포장한 계란 든 바구니를 선물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어요! 쑥스럽게 한 마디 건네는 아이들에게 환한 웃음으로 대꾸하는 이웃들의 모습이 정겨웠다.

교회 나오셔야죠? 계란 하나 건네며 던진 한 마디에, "예, 그래야죠" 환하게 웃으시며 대답하시는 정육점 할아버지 모습에서 옛 시골 마을 어디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잠시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우리는 지역에 본래부터 사시던 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좋은 교회는 성이나 담을 쌓은 교회가 아니라 열심히 길을 닦는 교회라고 확신한다. 이웃들과 함께 호흡하며 이웃들과 함께 걷는 것이 참 교회의 사명이 아니겠는가! 장애인과 비장애인만이 함께 가는 것 뿐 아니라, 이제는 지역에 튼튼하게 뿌리내린 교회로 이웃들과도 함께 가는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함께가는공동체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빌며,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우리 모든 식구들을 함께가는공동체교회로 부르신 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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