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나가는 교회에는 절반 이상의 교인들이 연세가 지긋하신 노인들입니다. 아흔을 넘으신 분부터 예순을 갓 넘기신 분들까지 그 연령 폭 또한 넓습니다. 예배 시간에 가끔 대표기도를 드리는데 꼭 이 분들을 생각하여 기도를 할 때면 눈물부터 맺힙니다. 어르신들이 살아오신 세월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몇 마디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기에 우선 눈물부터 흐르는 듯합니다.

어르신들은 결코 예배시간에 지각하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처럼 바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 그 분들의 삶이 그러하셨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많이 앞으로 나가거나 세련되지 못했지만 지나온 행적만큼은 깔끔하고 단정하였습니다. 큰 일을 벌이기보다 작은 일도 제대로 끝맺음하였습니다.

예배에 참석하고, 시간을 지키는 일들은 어르신들에게 무엇보다 소중하였습니다. 우선순위라는 말을 어르신들은 쓰지 않으셨지만 그들의 삶은 지켜야 할 것과 다져야 할 것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지혜로웠습니다. 어르신들의 기도를 들으면 오랜 삶의 흔적이 묻어납니다. 오래 기도한 제목들이어서 닳고닳았지만 그만큼 땀과 눈물이 스며 있습니다.

때로 어르신들의 생각은 수십 년 어린 저희들의 생각과 부딪칩니다. 어르신들은 각도 반듯하게 논리적으로 저희들의 말을 반박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어르신들의 생각은 쉽게 그런 논리로 설득되지 않습니다. 스펀지처럼 스며들지만 곧 제 모습을 찾습니다. 오랜 세월을 삶으로 쌓아온 것들입니다.

얼마 전 어느 정치인이 이런 어르신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언동을 하여 혼쭐났습니다. 아마 그에게도 저처럼 젊은이들이 갖는 어쩔 수 없는 모자람이 있었겠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젊은이로서 저는 교회의 어르신들을 뵈면서 교회의 영광을 발견합니다. 어르신들이 신앙으로 살아 온 세월은 결국 그 분들의 승리인 동시에 교회의 승리입니다.

어르신들이 주름살 많은 얼굴로 예배하는 교회는 이미 그 모습만으로도 깊은 은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그들을 붙잡으신 하나님께서 우리 젊은이들도 신실하게 붙잡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교회의 과거이며 동시에 미래입니다. 어르신들을 보는 바른 눈을 갖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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