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야마 서기장. 테러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주 변신(?)을 한다. (사진제공 외국인노동자의료공제회)
지난해 일본 가나가와시티 노동조합 무라야마 서기장을 만났을 때, 이전과는 다른 모습에 언뜻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늘 뒤로 단정하게 빗어 넘겨 묶던 머리는 풀어 내렸고, 그새 자란 콧수염에 안경도 벗은 채였다.

얼굴만 봐선 예전보다 더욱 더 활동가다운(?) 모습인 듯하나 실제 옷차림은 반대로 더욱 단정해졌다. 깔끔한 셔츠에 넥타이까지 맨 그의 색다른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동안 더 멋있어졌다고 한마디씩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늦은 밤 그의 사무실에서 우리는 그가 그렇게 외모를 바꿀 수밖에 없었던 기가 막힌 사연을 듣게 되었다.

무라야마 서기장은 한국의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에도 꽤 알려진 인물로 '이주노동자와 연대하는 전국네트워크'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그는 가나가와시티 노조 서기장으로 지역 내 일본 노동자는 물론 한국인 이주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지원 활동이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권리를 주장하다보니 고용주와 정부에 밉보이기 십상인지라 때론 그들과 부딪히며 적대적인 감정으로 치달을 때도 있다. 그것이 심해지면 지원활동가들에 대한 물리적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무라야마 서기장이 그 희생자가 된 셈이었다.

2년 전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밤늦게 집에 돌아가는 그에게 느닷없이 몽둥이 세례가 퍼부어졌다. 범죄조직의 심한 구타였다. 무라야마 서기장은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그 일 후로는 자신의 차림새를 가끔씩 바꾸고 있다고 했다. 몽둥이 찜질뿐 아니라 여전히 크고 작은 폭력과 위협에 시달리는 그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최소한의 자기방어라고 할까.

그는 자신이 안전하다고 믿지는 않지만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려는 기색은 전혀 없어 보인다. 일본사회가 보수화하고 외국인혐오주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상황에서 "나쁜 일본인보다 착한 외국인이 더 많은 게 낫다"는 것이 자신의 신념이기 때문이다.

이유 있는 변신, 무라야마 서기장

▲8년 동안 법정 투쟁을 벌인 아이린 페르난데스. (사진제공 외국인노동자의료공제회)
아이린 페르난데스는 말레이시아 여성단체 '테나가니타(여성의 힘이라는 뜻)' 소장으로 여성노동자들의 권리 보호와 말레이시아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온 사람이다.

그녀는 지난 1995년 외국인보호소에서 풀려난 300명의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필리핀 이주노동자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외국인보호소 내의 구타, 성폭력, 진료거부 등 인권 침해 실상을 폭로했다. 이 보고서를 통해 보호소 내에서 영양실조, 각기병 등 치료 가능한 질병임에도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해 죽어간 사례도 드러났다.

이 보고서는 즉각적으로 말레이시아는 물론 국제적인 인권단체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으나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듬해인 1996년 그녀를 '허위사실 유포죄'로 기소, 장장 8년에 이르는 재판 끝에 지난해 10월 1년형을 선고했다.

이 재판은 말레이시아 역사상 가장 긴 재판으로 기록됐으며, 말레이시아 정부가 외국인보호소 내의 인권 침해를 개선하려는 노력보다 이를 폭로한 이주노동자 인권활동가를 처벌하고 구속하는데 그토록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아이린은 현재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이나 여권 압수와 활동 제약에 따른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도 개선보다 입 막기에 급급한 말레이시아 정부

▲이정호 신부가 이주노동자에게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사진

지난해 방글라데시대사관 앞에서 이주노동자 연행 장면을 목격하고 이에 항의하다 경찰과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해 길에서 실신까지 하고,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남양주외국인노동자 샬롬의집' 대표 이정호 신부는 그 당시의 일을 회상하면 아직도 속에서 치미는 분노를 삭이지 못한다고 말한다.

"백주대로에서 경찰과 출입국 직원들이 짜고 가스총을 쏘고 스프레이를 뿌리며 닥치는 대로 짓밟고 두들겨 패고…. 참으로 아비규환의 현장을 지난 1월 7일 이태원에서 목격했습니다. 방글라데시 노동자를 강제출국 시키면서 그를 테러리스트로 분류해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방글라데시대사관의 묵인을 항의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시위가 있었고, 그것을 마치고 귀가하는 노동자들을 급습한 것입니다."

"저는 오늘의 사태를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한 교단의 성직자가 대낮에 대로에서 얻어맞고 내팽개쳐지고 욕지거리를 듣고 하는 상황은 이미 예고된, 아니 아무런 일도 아닌 상황입니다. 이미 이 사회는 잘못된 비리와 구조 속에 이런 정도의 죄악은 충분히 용인하고 묵인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항의하고 대책을 요구해도 전혀 반응이 없는 파렴치한 공권력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월 7일 출입국관리소에 항의하러 갔을 때 소장과의 면담을 제지하는 사람들과 몸싸움이 있었습니다. 이 때 출입국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의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응. 누구누구니. 아빠야. 좀 늦을 것 같아. 미친 사람들이 몰려와서….' 또 과장이란 사람이 '그래 XX들아 마음대로 해 XX놈들, XX 같은 새끼들 마음대로 해.' 하면서 우리들에게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박천응 목사. ⓒ뉴스앤조이 최소란
약자 돕는 성직자들에게 쏟아지는 폭력과 멸시

이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주노동자들의 장기 농성이 이어지고 있는 종교시설에 출입국 직원들이 들이닥쳐 센터 대표인 성직자를 모욕하고 폭행한 사건이 다시 발생했다. 지난 3월 9일 장기농성중인 인도네시아인 2명을 연행하기 위해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에 난입한 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반원 10여 명이 종교시설이라며 항의하는 박천응 목사를 "공무집행을 방해한다"며 센터 밖으로 30여 미터 끌어내 온갖 욕설과 협박을 한 것이다.

박 목사는 센터 밖으로 끌려나가며 옷과 신발이 찢겨지고 손목인대를 다치는 등 신체적인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이 와중에 "성직자를 이렇게 대해도 되느냐"는 항의가 나오자 단속반원들은 "네가 목사면 나는 하나님이다"며 신앙에 대한 모욕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대낮에,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당한 폭행과 폭언, 그것이 단순한 폭행으로만 그친다면 어쩌면 시간이 지나면 그 상처는 아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특별히 이주노동자를 돌보는 성직자에게 퍼부어진 폭력과 모욕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며 우리 사회의 양심을 대변해온 그들의 노고를 한순간에 짓밟아버리는 지울 수 없는 폭력이다. 그동안 수 차례 "지원단체들 때문에 번번이 불법체류자들을 일소하지 못했다"고 말한 당국의 표적단속 대상이 이주노동자가 아닌 이주노동자를 보호해온 성직자들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나 말레이시아, 또 국내든 어디든 이주노동자들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나 이들에 대한 인간적인 대우와 제도적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 높아갈 것이다. 그럴 때마다 이주노동자 인권지킴이들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또는 공무집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이들을 구속하거나 폭력과 모욕주기에만 급급할 것인가, 아니면 보다 현명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부디 후자가 해답으로 선택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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