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국가대표 막내 시절. 두번 째 줄 오른쪽이 최광희 선수다. 
(사진출처 최광희 선수 홈페이지)

생년월일 : 1974년 4월 7일<음>
취미 : 컴퓨터, 독서

1991. 12.7 ~ 14 제 2회 세계 유스 여자 배구 선수권대회 참가(포르투갈) 우승
1993. 1.13 ~ 22 제 7회 세계 청소년 여자 배구선수권대회 참가(브라질) 3위
1993. 2 한일합섬 입사
1995~96 그랑프리 세계 여자배구 대회 출전
1995 월드컵 여자 배구선수권 대회 출전
1996 애틀란타 올림픽 출전
1996 아시아 여자 배구선수권 대회 출전 2위
1996 슈퍼 첼린지컵 여자배구 대회 출전
1998 한국 비치발리볼 대회 출전(부산) 우승
1998. 2 한일합섬 배구팀 공식 해체
1998. 11 담배인삼공사 입사
2000 그랑프리 세계 여자배구 대회 출전
2000 시드니올림픽 출전
2002 부산 아시안게임 출전
2003 그랑프리 세계 여자배구 대회 출전 (이태리)

위는 현 국가대표 여자 배구팀 주장을 맡고 있는 최광희 선수(KT&G 배구단)의 프로필이다. 지난 I.M.F. 한파 때 팀 해체로 1년간 배구를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노력과 7전 8기의 정신으로 현재 여자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최 선수의 프로필은 화려하기만 하다.

기자가 '신앙은 절대 타협이 아니다' 기사의 주인공 김철용 감독(여자 배구 국가대표 감독)에게 믿음 좋은 배구인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김 감독은 주저 없이 최광희 선수를 추천했다.

또 많은 배구계 지도자 및 선수들 역시 김철용 감독과 마찬가지로 최 선수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좋았다. 기자는 3월 31일 'KT&G 2004 V-투어' 결승 4차전이 열리던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최광희 선수의 배구 인생 

모태신앙인 최 선수는 권사님이었던 어머니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교회에 다녔다. 초등학교 5학년 선생님의 권유로 배구를 처음 시작했고 당시 창단팀이던 수일여중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배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고등학교 입학이 힘들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다행히 한일여자 실업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기에 어머니는 제가 고등학교에 못 들어갈 줄 알았다고 훗날 저에게 얘기하시더군요.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한일 여자 실업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월급까지 받으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게다가 모 그룹인 한일 그룹이 여자 배구단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 배구 용품이나 신발 등은 아예 사 본 적이 없었고 졸업 후에는 한일합섬 배구단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한일합섬 배구단에 들어간 지 2년 째 되던 1995년,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았고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제 자리(레프트)에 장윤희, 정선혜, 구민정 등 워낙 쟁쟁한 선수가 많아 저는 벤치를 지키는 경우가 많았죠.

그러나 코트에서 뛰지 못해도 태극마크를 달고 나라를 대표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엄청난 기쁨이자 보람이었습니다."


▲ 2003년 열린 세계여자배구 월드컵 대회. 왼 쪽이 최광희 선수다. (사진출처 최광희 선수 홈페이지)

I.M.F.로 인한 팀 해체, 과연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1997년 12월 I.M.F. 사태의 충격과 불똥은 최광희 선수가 뛰던 한일합섬 배구단에도 여지없이 찾아왔다. 1998년 2월 한일합섬 배구단이 공식 해체되면서 그녀는 세상에 태어난 이래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선수들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배구를 그만두거나 다른 팀으로 이적해야 했습니다. 저는 그나마 국가대표라도 했기 때문에 다른 팀에서 영입제의가 있었지만 동료나 후배들은 갈 팀이 없어서 배구를 그만두는 것을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한 선수는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인 12월 팀에 입단했는데 이듬해 2월 팀이 해체되었으니 그 선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에게 언제나 맛있는 식사를 제공해 주신 식당 아주머니들과 우리가 열심히 연습하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 주신 수위아저씨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마음이 아프더군요.

또한 그 당시 제가 어깨와 발목 부상이 있었는데 팀이 해체되자 언제, 어떻게, 어디서 부상 치료를 받아야 할 지, 치료비용은 어떻게 충당할 지, 정말로 앞이 깜깜하더군요. 게다가 '몸이 좋지 않은 저를 다른 팀에서 데려가지 않으면 어떡하나?'라는 고민으로 밤잠을 못 이룬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결국,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고민 끝에 저는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재활 치료를 받았고 어머니와 함께 새벽 기도회와 부흥회를 다니며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러면서 배구 선수로서 코트에 나설 준비도 소홀히 하지 않았죠. 결국 하나님께서 저의 몸과 마음을 완전히 치유하신 후에 KT&G 배구단에서 영입제의가 들어오더군요. KT&G 배구단은 야간 대학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는 조건까지 제시했습니다.

만약 I.M.F.가 터지지 않고 그대로 선수 생활을 했다면 저는 98년이나 99년에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그만 두었어야 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I.M.F.를 통해 저의 몸과 마음을 추스르게 하셨고 코트에서 당신의 사람으로 사용하기 위해 저를 1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야간대학을 다닐 수 있는 은혜도 허락해 저에게 지도자의 비전을 보여주셨고 김철용 감독님과 같은 믿음의 선배도 주변에 허락하시어 앞으로 제가 닮아가고 배워가야 할 지도자상도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국가대표팀에서도 벤치를 지켰는데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를 2003년, 주장으로 세우셔서 지난 여름 일본에서 그랑프리 배구대회에서 어린 선수들과 함께 브라질과 러시아를 차례로 연파하고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도록 우리를 사용하셨습니다.

결국 저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항상 위기라고 생각했을 때 하나님께서 또 다른 기회의 땅으로 저를 인도하시면서 당신만을 신실하게 의지할 수 있도록 하게 하신 것 같습니다."  
               
비전과 앞으로의 계획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머니께서는 제가 고등학교 입학도 못할 줄 아셨고 I.M.F.로 인해 팀이 해체되었을 때 저는 배구를 그만두게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KT&G 배구단으로 인도했고 대학원까지 다닐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셔서 선생님에 대한 소망도 주셨고 국가대표팀 주장도 맡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대학원 졸업 때까지 몸 관리를 잘해서 선수 생활을 계속 하고 싶고 은퇴 후에는 학교 체육 선생님이나 배구 지도자로서 학생들이나 선수들을 섬기고 싶습니다.

결국 제가 먼저 신앙과 인격 그리고 실력을 갖추어 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선수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으며 제가 가진 배구 기술을 가지고 신앙과 실력을 모두 갖춘 선수들을 양성하는 게 저의 작은 소망입니다.

또한 아직 국내 스포츠계에 여성 지도자가 거의 없는 상황인데 에스더처럼 지혜와 신앙의 용단을 갖춘 여성 지도자가 되어 주님의 뜻대로 팀을 이끌고 운영하는 배구 메신저가 되는 것이 저의 비전입니다."


▲ 최광희 선수의 경기 장면. (사진출처 최광희 선수 홈페이지)

<최광희 선수의 기도제목 >

1. 주위 환경이나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여장부가 될 수 있게.
2. 솔로몬의 지혜와 천사의 마음을 겸비한 믿음의 반려자를 만날 수 있게.
3. 올림픽 예선 통과와 메달 획득을 통해 주님께 영광 돌릴 수 있도록.
4. 에스더처럼 신앙의 지혜와 용단이 있는 여성 지도자가 되어 신앙과 인격 그리고 실력을 갖춘 선수들을 길러내는 지도자가 되게.
5. 선수들에게 감동을 주며 예수님의 향기를 전하는 복음의 메신저가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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