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내가 다니던 교회의 주보에는 예배순서 마지막에 '세상을 향한 행진'이라고 적혀 있었다. 순서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 세상을 향해서 행진하는 어떤 절차 같은 것은 없었다. 나는 목사님의 축도가 끝나고 나서 마지막 기도를 드리고 나서 바깥을 향해 나가는 그 순간부터 행진이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목사님의 말씀 선포와 그 말씀을 대하는 성도들의 교감,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또 한 주간을 바르게 살아가려는 마음을 다진 다음에 믿는 사람들이 해야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 교회의 바깥. 즉 세상을 향해서 행진해 나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게 당시 나의 그 주보에 쓰인 순서에 대한 이해였다.

신앙인의 삶은 세상을 향해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 것

교회 안에서만 신과 대면하고 그것으로 끝나는 신앙이 아니라면, 교회 안에서 선포된 말씀과 내면에서 교감한 신과의 만남을 간직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세상을 향해서 힘차게 달려가는 것, 그리고 세상을 향해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신앙인의 삶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주보에 쓰여 있는 '세상을 향한 행진'이란 순서는, 단순한 '폐회'보다는 훨씬 더 올바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세상을 향한 행진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일들은 교회 안에서 들은 내용들과 상치되는 것이었다. 교회 어귀의 전철역에서 만나는 걸인부터 시작해서, 전철 안의 자리를 두고 벌이는 신경전, 정도가 넘는 듯한 소음으로 나를 귀찮게 만드는 철없는 청춘들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온갖 사소한 것들이 갓 교회에서 깨끗이 씻고 나온 내 파릇한 마음을 아프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사실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월요일 출근을 하면 세상은 전쟁터에 다름이 아니었다. 다행히 나의 직업은 다른 이와 직접적인 경쟁을 벌이거나, 혹은 다른 이와 제로섬게임을 벌여야 하는 성질의 직업은 아니어서, 세상을 살아가기가 한결 수월하긴 했다. 그러나 나의 안락한 직장 안에서도 나의 신경을 자극하는 일들이 좀처럼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내 마음 한구석에는 진정한 행진을 위해서는 직장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목소리가 있었다. 신문을 펼치면 세상은 더욱 어지러웠다. 정치권은 날마다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었고, 국제 면은 강자의 약자에 대한 억압들에 관한 기사들로 가득히 채워져 있었다. 경제면에는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나 혼자, 더 나은 경제적 지위를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들이 지혜라는 이름으로 지면을 가득히 채우고 있었다. 나는 홀로 내 좁은 직장에 갇혀 있었고, 세상을 행한 행진은 내 마음을 스스로 이기는 정도를 넘을 수가 없었다.

가끔 나는 세상을 향해 힘찬 걸음으로 걸어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나와 아주 잘 아는 사람들도 있다. 평소 만날 때 아무런 표정도 읽을 수 없었던 그들의 내면에는, 어떤 생각들이 스며 있었던 것일까. 나는 왜 그가 오랜 시간동안 지니고 있었던 그런 생각의 흐름들을 눈치채지도 못했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내가 글로만 좋은 이야기를 쓰고, 그걸로 마음에 위안을 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 자신이 세상을 향해 행진해 나가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신은 고통받는 사람과 함께 고통받고 있다

나 자신이 그렇게 미련하고 나약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앙이란 세상을 향한 행진이라고 생각한다. 신과의 만남, 신과의 교류, 깊은 대화, 그리고 그 다음에 무엇이 있는가. 마치 젊은 시절 연인과 함께 젊음을 희롱하다가 헤어져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사랑타령 외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이 진정한 신앙이고 진정한 사랑일까. 그렇다면 신앙이란 아무런 선한 것이 되지 못한다.

물론 신과 만나고 사랑하고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신은 결코 그렇게 개인화된 신은 아니다. 신은 오늘도 세상에서 고통받는 사람과 함께 고통받고 있고, 그들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신은 실존하는 것이며, 오늘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다.

나는 신을 죽은 존재로 만들기 싫다. 내 친구들을 통해서, 그리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에 대한 도전이 이어지듯이, 나를 통해서도 세상에 신의 목소리가 전해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간절한 바람일 뿐이다. 그것이 바로 나의 한계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때 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교회 문을 벗어나는 그 순간에는 내 속에 신이 충만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 자신이 용기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바로 이 순간에도 신의 통곡소리가 하늘과 땅을 울리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노을은 저렇게도 슬프게만 보이는 것인지 모른다. '세상을 향한 행진.' 나는 오늘도 노을을 바라보며 습관처럼 그렇게 되 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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