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고, 또 울고 울었다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영화가 잘못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든가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께 가해지는 잔인한 채찍질에 눈물이 나올 법도 하련만. 예수님이 당하신 그 엄청난 학대와 채찍질에 심정적으로나마 조금이라도 동참한다면 어찌 눈물이 나오지 않으리오. 예수님이 맞으신 그 살인적인 매가 바로 나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면 어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 아닐까?

▲'그리스도의 수난'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영화의 한 장면.

쉽게 말해지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상징적, 영적인 해석이 오히려 십자가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영화는 실제적인 고통의 무게, 다시 말하면 인간의 죄짐의 무게가 그만큼 컸다는 것을 가르쳐준다는 점에서는 큰 공헌을 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죄 때문에 그토록 무지막지한 고통의 매를 맞는 예수님을 생각하면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면 어찌된 일인가? 나는 왜 눈물을 흘리지 못했는가?

눈물을 흘리신 분들은 예수님의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리라. 예수님의 아픔이 얼마나 컸을까? 나의 큰 죄 때문에 매를 맞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으리오! 그런데 나는 전혀 의식적으로 의도하지도 않았는데도 영화를 보면서 가해자의 입장에 있었다. 첫째로, 나는 예수의 사형을 건의한 산헤드린공회의 제사장이었다. 하나님을 위해 부름 받은 자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예수님을 정죄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는 사역의 방해꾼이었던 것이다. 나의 사역에 있어서도 때로는 예수님의 방법이 걸림돌처럼 답답할 때가 있어 눈 딱 감고 제사장처럼 하나님을 위한(?) 방법을 쓰기도 했으니 말이다. 나는 또 빌라도였다. 예수와 군중을 모두 만족케 하려는 아량 있는 정치가인 척 했지만 가장 비겁한 사람이었으니 기독교 역사는 사도신경을 통해 그를 십자가 사건의 주범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대중적 인지도가 사역의 성공의 잣대로 여겨지는 지금의 기독교문화에서 빌라도는 지혜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예수를 부인하거나 직접 가해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수난 당하는 예수그리스도.

나는 어김없는 군중의 한사람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빵부스러기를 얻어먹고 병 고침을 받았던 자들. 그러나 상황이 불리해지자 돌아서서 “예수를 못 박게 하소서”로 태도가 돌변한 군중들. 그 속의 나를 발견했다. 예수를 ‘못 박게 하소서’라고는 감히 말하고 싶지 않았다. 손까지 들어가며 군중들의 함성에 동참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망가던 베드로가 잡히자 예수를 저주까지 하는 모습을 보았으니 나의 손을 끌고 재판정으로 끌고 갈 매서운 눈초리를 보고 무서워 나는 손을 반만 올린 채, 입은 반만 연 채, 목소리는 반만 머금은 채 “예수를 못 박게...” 기어들어가는 소리를 후다닥 내다가는 속으로 “하지 마소서” 기도(?)하는 정말로 비겁한 나를 발견하였다.

이런 구역질나는 나의 여러 모습을 보고 울 수가 있을까? 영화가 후반으로 가면서 나는 급기야 고개를 파묻고 말았다. 영화가 빨리 끝났으면 바랐다. 영화는 차라리 고문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건이 지금 일어난다면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니 자신이 없어진다. 장애인사역을 하면서 나를 예수님에 대비시켜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많이 생각했다. 영화를 본 후 이제 그런 생각은 아예 없어졌다. 나는 장애인들을 위해 채찍은 맞지 않았다. 많은 모멸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예수님처럼 모욕을 당하진 않았다. 사역에 수많은 오해를 받고 마음이 몹시 아파했지만 예수님은 변명 한마디 하시지 않으셨다.

▲김홍덕 목사. ⓒ뉴스앤조이
두 번 다시 영화를 보고 싶지 않다. 다시 한 번 비겁한 나를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당당한 나를 보고 싶다. 예수님처럼 초월한 나를 보고 싶다. 비록 예수님처럼 철저히 깨지고 터지는 한이 있어도 말이다. 두 번 다시 이 영화를 보지 않으리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입장에서 맞고 터지고 깨지더라도 입 다물고 골고다로 가는 당당함으로 나의 사역을 안고 갈 수 있을 때까지 두 번 다시 이 영화를 보지 않으리라!

LA에 있는 조이장애선교센터 대표 김홍덕 목사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무력증 때문에 10년 가까이 고난을 겪고 있으며, 딸 조은이도 다운증후군을 가진 장애아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절망에 빠지지 않고 장애선교신학 분야에서 세계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고 장애신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애덤 킹! 희망을 던져라]라는 책의 저자로 국내에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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