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하느님께서 살아 계신 성전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봄비를 맞으며 만물은 겨울을 벗고 봄으로 새 옷을 갈아입고 있습니다. 봄이 오니 얼음이 녹고 봄기운이 돌고 뭇 생명들이 땅 속에 꿈틀거립니다. 아낙들은 벌써 봄나물을 캐러 들로 산으로 나갑니다.

겨울바람에 힘없이 쓰러지던 나무 가지에 새순이 돋아나고 검은 흙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걸 보면서 '아, 하느님은 이렇게 살아 계시구나, 지금도 살아 계셔서 아주 작은 생명까지 돌보고 계시구나' 하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죽은 것 같던 대지가 다시 살아나고 꿈틀거리는 것을 보면 대지야말로 생명의 하느님께서 살아 계신 거룩한 성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오늘 봄비 내리고 새순이 돋아나 대지가 꿈틀꿈틀 되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살아 계신 하느님의 모습을 성서에 기록된 어떤 사건보다도, 어떤 교리나 신학적 이론보다도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 대지를 살리고 계시며, 이 대지는 다시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품고 살아가는 성전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모신 성전인 이 대지를 통해 얻어진 공기, 햇볕, 물, 바람, 철 따라 내어준 과일과 곡식을 먹고 마시며 삽니다. 대지가 하느님의 성전이 아니고서야 우리가 어찌 대지를 통해 이토록 큰 은혜를 누리며, 우리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밭에서 나는 감자, 고구마와 옥수수, 산에서 나는 열매, 그리고 가축들, 이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대지를 통해 우리를 먹이시는 것들입니다.

나 자신이 하느님을 모신 성전

그리고 저는 또 하나 사랑하는 성도들을 통해서 제가 믿는 하느님의 살아 계심을 분명히 느낍니다. 여러분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왔으며, 하느님은 여기 살아있는 여러분을 통해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기 살아 숨쉬고 봄기운을 받아 다시 살아나는 여러분의 살아있는 몸과 영혼 이외에 또 무엇으로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단 말입니까? 위대한 신학자의 이론 이전에, 문자로 기록된 성서 이전에, 저와 같은 목사의 입으로 선포된 말씀 이전에 하느님의 기운을 받아 창조된 사람, 아담과 이브가 있었고, 또 하느님이 만드신 해와 달, 나무와 꽃, 하늘을 나는 새와 들짐승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으로도 분명히 살아 계신 하느님의 존재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기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저희 교회는 공동번역성서를 사용합니다.)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 자신이 하느님을 모신 거룩한 성전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느님을 모시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자기 자신을 잘 살피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하느님을 모신 성전이라는 바울 사도의 말은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몹쓸 죄인도 아니요 그저 목사나 성도, 남자나 여자, 사장이나 월급쟁이, 정치인이나 군인도 아닙니다. 나는 다만 하느님을 모신 성전입니다. 그래서 나는 성전의 삶을 살아야 하고 하느님을 모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전의 삶이란 내 뜻과 내 생각과 내 염려로 살아가는 것이 오로지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바로 하느님을 모신 성전입니다. 주일학교 아이들, 여러분의 아들과 딸들, 여러분이 늘 만나는 이웃 사람들, 북한의 아이들, 이 모든 사람들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기에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 그저 하찮게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을 모시고 섬기듯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 옆에 있는 사람을 하느님을 모시듯 대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이란 한낱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쓸모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이는 내 형제 자매에게서 볼 수 없다면 우리는 절대로 하느님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성도는 하느님의 성전

우리는 성전인 나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 부단히 신앙적 훈련과 수행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내가 조금만 한눈을 팔면 나는 하느님을 모신 성전이 아니라 마귀를 데리고 사는 마귀의 집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며 말씀으로 나 자신을 늘 새롭게 하여 언제든지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도록 나 자신을 닦고 닦아야 할 것입니다.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도 하느님의 성전을 구성하고 있는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영은 거룩하고 육은 악하다고 하지만, 주님은 이 세상에 육신(肉身)으로 오셨고, 주님의 육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성전이라 함은 우리의 영과 육이 온전한 것을 일컫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교회를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성전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 모인 성도들이 온전한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으로 바로 서지 못하고 무너져 있다면, 교회가 아무리 크고 잘 지어졌다고 해도 그 교회는 한낱 돼지우리만도 못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 모인 성도들의 영과 육이 힘겹고 고달프고 쓰러질 수밖에 없는데도 눈에 보이는 성전을 크고 화려하고 웅장하게 짓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모욕하는 짓일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건물은 40평이 채 되지 않는 12년 된 낡은 철제 조립식입니다. 그래서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습니다. 이제는 교회 건물을 다시 지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우리는 지금까지 교회 건축을 위해 기도를 해 왔습니다. 실제로 성도들의 건축헌금이 드려졌고, 저 또한 지난 1년 동안 어렵게 제 책 「꽃망울이 터지니 하늘이 열리네」(뉴스앤조이)를 팔아 1,000만 원이나 되는 꽤 큰돈을 건축헌금으로 드렸습니다.

교회를 팔아서라도

그러나 저는 꽤 오래 전부터, 아니 우리 교회 김순기 집사님께서 몸이 불편하여 직장을 그만두신 뒤부터, 그렇게 열심히 새벽기도회를 빠트리지 않고 나오다가 나오지 못하시게 되었을 때부터 하느님을 모신 김순기 집사라는 성전이 저렇게 무너져 가고 있는데, 눈에 보이는 이 성전을 멋지게 다시 지은 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과연 하느님이 기뻐 받으실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김순기 집사님은 12년 동안 형광등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그만두셨는데, 형광등 공장이라는 곳이 수은에 완전히 노출된 곳이라 그것으로 인해 모든 관절이 닳았고, 특히 양쪽 고관절 부위가 완전히 닳아서 걷기도 힘든 형편입니다. 직장을 그만둘 때 회사는 부도가 나서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나왔고, 또 빚이 있어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받을 형편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초가삼간에서 예배를 드리고, 아니 천막을 짓고 허허벌판에서 예배를 드린다 해도,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함께 하느님의 성전으로 살아가는 성도 하나가 무너져 가고 있다면, 그것은 교회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식구 중에 아픈 이가 있다면 그냥 두진 않을 것입니다. 그를 치료하기 위해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좋은 약, 좋은 병원을 찾아다닐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한 몸이요 한 식구인 김순기 집사님이라는 성전을 다시 세우기 위해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교회라도 팔아서 집사님을 치료해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인 우리의 삶이 아닐까요.

저와 여기에 계신 우리 벧엘교회 성도님들은 다시 김순기 집사님께서 건강한 몸으로 회복되어 영과 육이 온전한 주님의 성전으로 다시 세워지길 바라실 것입니다. 그 커다란 목소리로 새벽마다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십니다. 직장에 나아가 일하는 날에도 그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새벽 제단에 나아와 그렇게 눈물로 하느님께 기도 드리던 음성을 다시 듣기를 원합니다.

저와 제 아내는 지난 며칠 동안 저희가 드린 건축헌금 1,000만 원 중에 그 얼마라도 진정한 성전인 우리 김순기 집사님의 몸과 마음을 되살려 우리 하느님을 온전히 모실 수 있도록 병원 치료를 하는데 다시 드릴 수 있도록 기도해 왔습니다. 저는 기도하는 중에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라 확신하게 되었고, 사랑하는 벧엘교회 성도님께서도 모두 기쁜 마음으로 받아 주실 줄로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온전히 세워지는 교회

▲채희동 목사.
우리는 세상의 다른 교회들을 본받지 맙시다. 교회 건물 으리으리하게 짓고 그것으로 성전으로 세워졌노라 말하는 그런 교회들을 따라 가지 맙시다.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하느님의 작은 성전들이 온전하게 세워짐으로써 진정한 성전이라는 것을 깨달아 압시다.

이렇게 교인들은 많지 않지만 서로 사랑으로 모인 이 벧엘 공동체야말로 참으로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비록 12년 된 낡은 조립식 건물이지만 비가 와도 새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아직 흔들림이 없는 튼튼한 건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눈으로 보이는 교회 건물을 새로 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전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 그리고 옆에 있는 벧엘교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성전으로서 바르게 세워지도록 함께 기도하고 헌신하시길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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