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의회의원이며, 착하고 의로운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의회의 결정과 처사에 찬성하지 않았다). 그는 유대 사람의 동네 아리마대 출신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내어 달라고 청하였다. 그는 시신을 내려서 모시로 싸고,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에다가 모셨다. 그 무덤은 아직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것이다. 그 날은 준비일이고, 안식일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눅23: 50-54)

“그 죽음은 한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30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당신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30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30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의 한 대목입니다. 음력 섣달 열여드레인 할아버지의 제사에 맞추어 고향인 제주 서촌 마을에 내려간 `나'를 화자로 내세운 이 소설은 30년 전 향리에서 벌어진 양민학살을 통해 4·3사건의 아픈 역사를 조명하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의 제목이 되기도 한 순이(順伊) 삼촌(제주에서는 촌수가 먼 친척 어른을 남녀 구별 없이 삼촌이라 부른다)은 30년 전의 학살 현장에서 두 아이를 잃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인물이지만, 평생 그 사건으로 인한 충격을 떨쳐버리지 못하다가 마침내 자살을 하고 맙니다. 

이 소설은 1948년 북제주군 조천면 북촌리에서 벌어진 양민학살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그날 아침 이 마을 어귀에서 무장대의 습격으로 군인 2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군대는 2개 소대 병력을 마을로 급파하여 3백여 동의 가옥을 불태우고 수백 명의 양민을 학살하였습니다. 마을의 남정네들이 군·경에 학살당하거나 토벌대를 피해 입산함으로써 여자만 남게 되어 한동안 `무남촌(無男村)'으로 불리기도 한 북촌은 함덕 해수욕장과 지척 거리에 있는 전형적인 제주 마을입니다. 

1978년에 발표된 이 소설로 인해 작가 현기영은 보안사에 끌려가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책도 발매금지되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 시대 권력이 왕따시킨 제주 4.3 사건의 아픔을 언급함으로써 그 시대 주류의 비위를 거슬렸다는 것이 그의 죄목입니다. 권력이 정죄 한 자의 주검은 저주 아래 있습니다. 그 주검을 위로하는 자 역시 저주의 사슬에 묶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권력이 시대를 통솔하는 법칙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은 죽은 가족의 시신을 수습하고 제사를 모시는 일조차 쉬쉬해야 했었습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왕따 당하는 아이와는 아무도 같이 놀아주지 않습니다. 함께 왕따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그 상황에서는 그 아이와 함께 어울리는 것 자체가 대단한 용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어떤 측은함이나 위로의 표시를 해서는 곤란합니다. 나의 입지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입니다.  그저 모른 체 하거나 왕따 공세에 함께 가담하는 것이 나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최선의 길입니다.

그 시대의 힘이 무엇을 지향하는가에 안테나를 맞추고 행동하는 게 사람들의 일반적인 처세술입니다. 물론 드물게 대세를 거스리며 왕따 당할 위협을 감수하고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 용기의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의 행동은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회피하려는 동물적 본능을 거부합니다. 그가 달고 있는 안테나의 주파수가 시대의 힘을 향하지 않고 의를 향해 있기에 그렇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권력이 지향하는 바를 알고 그에 자신을 맞추거나 그 요구에 앞서 부응해 가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시대의 권력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더 중히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 공회가 정죄하고 죽인 예수의 시체를 거두어 들였습니다. 모두가 떠나버린 골고다 언덕을 찾아 저주의 표적이 되어 십자가에서 고꾸라진 예수의 시체를 손수 수습하여 세마포로 싸고 아무도 장사한 적이 없는 무덤에 넣어두었습니다.  

진정한 용기는 무엇인가 권력을 등에 업고 날뛰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시대의 힘(권력)이 요구하는 바가 불의함을 알았을 때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불의한 정죄로 말미암아 따돌림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사람들로부터 내버려지고 외면 당하는 사람을 살피고 어루만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혀 죽은 시신의 수습은 물론 제사조차 제대로 모시지 못하고 숨죽이며 살았던 제주의 한을 위로하고 장사지내 준 현기영의 소설은 의로운 행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시신을 수습한 아리마대 요셉의 행동이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요셉이 유대 공회 의원이라는 지위에 있었지만 예수의 시신을 거두어들이는 행위로 말미암아 자신의 입지가 흔들리고 유대 지도층들로부터 왕따 당하는 위기에 직면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결단을 내린 그의 행동은 그가 세상을 넘어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도 남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흑백 인종 차별이 법적으로 정당화되던 때의 얘기입니다. 한 흑인 교회에서 수난일 성찬식을 거행하면서 특별한 행사를 계획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준 정신을 본받아 누구든지 자기가 정말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의 발을 씻어 주는 행사를 마련한 것입니다. 이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 중에는 백인 판사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흑인 여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여자의 주인인 백인 판사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로서 대법원장으로 내정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흑인 교회에서 시행하는 세족식 광고를 듣고 참석하겠다고 신청한 것입니다.

세족식이 거행되던 날 흑인 교회를 찾아온 백인 판사는 흑인 여종 앞에 무릎을 꿇고 발을 씻어주었을 뿐 아니라 그 검은 발에 자신의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 백인 판사의 놀라운 행동을 지켜보던 교인들은 온몸이 얼어붙은 듯 숙연해졌습니다.
"마르다는 내 집 종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내 아들딸을 돌보았으며 내 자식들의 발을 씻어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이 백인 판사의 행동은 곧 빅뉴스가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백인들 사이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분노가 일었겠지요. 흑백 차별을 당연시하는 사회에서 백인 판사의 행동은 품위에 어긋난 짓이었나 봅니다. 내정되었던 대법원장 자리가 취소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판사직도 박탈당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흑인 교회의 목사가 판사를 위로하기 위해 방문하였을 때 그는 오히려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판사직도, 이 사회의 어떤 지위도 죽어서 무덤 갈 때는 모두 먼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세상의 먼지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감사가 더 중요합니다."

인종에 따른 차별, 이념에 따른 차별, 종교에 따른 차별, 빈부에 따른 차별, 성별에 따른 차별 이 모두가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 누구도 다 똑같은 자녀라는 평범한 진리가 인간의 삶 속에서는 그대로 지켜지기가 너무도 어렵습니다. 아주 단순하고도 평범한 진리지만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행동에 옮겼던 그 판사는 큰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그 역시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파장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으리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해야할 바를 행하였습니다. 세상의 지위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라 일컬어 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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