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6일과 7일 스포츠 계에서는 아주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스포츠에 어느 정도 관심 있는 독자라면 언론을 통해 접했으리라 생각되지만, 시즌 막판을 향해 달리고 있는 프로농구 에서 일어난 기록 타이틀 경쟁이다. 

사건의 발단은 6일 울산 모비스와 전주 KCC간의 경기. 이날 3점 슛 왕 타이틀을 위해 울산의 우지원 선수는 무려 33개의 3점슛을 던져 12개를 성공 시켰다. 그러자, 다음날인 7일 인천 전자랜드의 문경은 선수는 원주 TG삼보와의 경기에서 무려 22개의 3점슛을 성공 시킨 일이 발생했다.

빗나간 타이틀 경쟁

결국 3점 슛 타이틀은 정규시즌 197개의 3점슛을 성공시킨 우지원 선수에게 돌아갔고, 시즌 막판 무려 42개의 3점슛을 성공시킨 우지원과 문경은 선수는 후세에 남을 만한(?) 기록들을 남겼다. 우지원 선수는 프로농구 경기에서는 거의 나올 수 없는 한 경기 70점의 진기한 기록을 세웠다. 이는 에릭이버츠 선수가 세운 58점보다 무려 12점이나 많은 프로농구 최고기록이다. 프로농구에서 한 팀이 평균적으로 득점하는 점수가 90~100점 사이라고 볼 때 개인 득점 70점은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문경은 선수 또한 7일 경기에서 22개의 3점 슛으로 프로농구 한 경기 최다 3점 슛 국내 신기록을 세웠다. 한 마디로 각 팀 선수들은 우지원 선수와 문경은 선수의 '기록 만들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도움을 주었고, 이미 정규시즌 1위, 2위를 확정시킨 원주와 전주 또한 수비 포기로 간접적 도움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대기록과는 달리 언론과 팬들은 비난 일색이었다. 문제는 이들의 치열한 3점 슛 경쟁에 있어서 일부러 기록을 만들려고 노력한 추한 타이틀 경쟁을 벌였다는 것. 3점 슛 타이틀을 따내기 위해 각 팀들은 일부러 선수들에게 점수 밀어주기를 하였고, 선수들은 그런 부정한 방법으로 타이틀 획득을 했다는 것이 문제다.

또한, 승부를 펼쳤던 다른 팀 전주와 원주도 거의 경기를 포기하고, 이 선수들의 점수 밀어주기에 한 몫을 했다는 것도 문제다. 각 팀 동료들은 팬들이 지켜보는데도 불구하고, 경기의 승부보다는 특정선수 득점에만 신경을 쓴 것이다. 그리고 다른 팀들 역시 용병 선수 임대문제로 자존심 문제 때문에 일부러 밀어주기 경기를 했다는 의혹도 불거나오고 있다. 필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미 정규시즌 1, 2위를 확정지은 원주와 전주가 수비를 포기하고, '기록 만들기'에 동참을 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타이틀 만들어주기의 안타까운 현실

어찌됐던 만들어 주기식 타이틀 경쟁이 문제가 됐다. 스포츠 선수들은 매 경기 항상 충실해야한다. 이것이 팬들을 생각하는 행동이고, 스포츠 자체의 위상을 살리는 길이다. 경기에서 최선을 다한 다음, 승패가 갈라지고, 그 다음 따라오는 것이 기록 타이틀이다. 플레이 자체가 우선시 되지 않고, 타이틀이 우선시 된다면, 그것은 바로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고, 스포츠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더 나아가 팬들의 관심 감소를 일으키는 이른 바 '자기 무덤 자기가 파는 식'의 행동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타이틀 만들어주기'가 농구 규칙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옳은 행동일까?

예전에 모 프로야구단 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비난은 잠깐 이지만, 기록은 영원하다." 이것이 과연 스포츠 인이 가져야할 옳은 마인드인가? 누구도 이런 마인드가 옳다고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 스포츠 계를 지배하는 마인드였고, 이것은 우리 스포츠 계에 팽배한 성적지상주의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아마추어에 순수 아마추어리즘은 없다

우리 스포츠 계는 성적지상주의가 팽배해 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과 같은 중요한 국제대회에서는 무조건 금메달을 따야하고, 좋은 기록을 만들거나, 능력에 맞지 않는 호 성적을 거두었어도, 은메달, 동메달 또는 노메달이라면, 누구 하나 제대로 칭찬해주는 사람 없는 현실이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생각해보자. 만약 우리나라가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결과가 왔을까? 과연 우리 스포츠의 현실이 월드컵 4강에 맞을 정도로 충분히 성숙한 것일까? 축구계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했지만, 유소년 시스템이 라든지 리그 운영이 라든지 모든 면에서 결코 그 정도의 수준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아마추어 학생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회에서 4강 또는 8강에 올라야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갈 수 있는 규정에 있어 승리가 우선시 될 수밖에 없다. 방법이야 어떠하던 승리를 따내는 것이 주목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 학생 스포츠를 비롯한 아마추어 스포츠는 경기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 하고 운동을 통한 정신적, 육체적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러나 지금 학생 스포츠에서의 선수들 혹사는 당연시 되고, 스포츠의 기본 정신을 가르치기보다는 이기기 위한 훈련을 강요할 뿐 있었다.

팬들은 없는 프로 스포츠의 현실

프로스포츠는 원래 '팬들을 위해' 존재하고, 팬들의 인기에 의해 수입이 좌지우지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선진국에서는 아무리 좋은 성적을 내도, 그 플레이가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지 않았다면 퇴출당하고 만다. 그러나 국내의 사정은 다르다. 팬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승부가 보기 좋든 나쁘든 선수들이 혹사를 당하든 아니든 무조건 성적이 우선인 경우가 많다. 물론, 모든 구단이 그런 것이 아니지만, 성적지상주의가 국내 프로스포츠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국스포츠의 성적지상주의는 근시안적인 구단운영에서 온다고 볼 수 있다. 지금 현재 국내에 존재하고 있는 구단들에게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우선시 되는 답변은 단 한가지이다. 답은 우승. 우승이 그들이 이루어야 할 최종목표라고 단연코 이야기한다. 그 밖에 계획을 물어 봐야, 그제야 팬 서비스, 전용구장 건립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구단운영 최고의 목표는 시리즈 우승이고, 무조건 이기는 것이 그들의 목표인 것이다. 이러한 근시안적인 목표는 성적위주의 구단운영을 불러오고, 선수나 코칭스태프들에게 승리를 강요하는 격이 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결국 흑자경영에 의한 구단운영이 아니라 모 기업의 홍보용 구단운영에서 파생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만약 구단이 흑자경영을 위해 구단을 운영한다면, 물론 이기는 경기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팬들을 감동시키고,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을 즐겁게 만들어 다시 경기장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들까 생각하고,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같은 '홍보용 구단운영'은 근시안적인 승리를 통해 어떻게 하면 모 기업의 브랜드를 홍보할 수 있을까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팀이 우승을 하거나 상위권에 팀이 랭크되면, 강한 기업 브랜드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심을 수 있고, 언론에 자주노출 되는 반면, 하위권에 팀이 머문다면, 그 만큼 언론 노출도 감소하고, 기업 브랜드 홍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근시한적인 구단운영은 결국 코칭스태프나, 선수들에게 승리를 강요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것이 결국 성적을 중요시하는 성적지상주의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성적 지상주의는 없는가

기자는 여기서 과연 앞서 이야기한 빗나간 타이틀 경쟁이 우리 사회에는 없는지 묻고 싶다. 혹 과정이 어떠했던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 욕을 먹더라도 내 자신이나 내 자신이 속에 있는 그룹에게 이익이 된다면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 우리 사화의 현실이 아닌가 싶다. 필자가 모든 사람을 만나고 경험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모습에서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언론에 비춰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성적지상주의의 모습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지난 3월 12일에 있었던 대통령 국회 탄핵 사건. 이 사건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지만, 이것이 우리 사회의 성적 지상주의가 아닌가 조심스럽게 이야기 하고 싶다. 과정이 어떠했던 상관없이 자신의 이익이나 자신의 속한 그룹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는 행동으로서 말이다.

우리 사회에는 옮고 그름에 대한 고민은 없는 듯 보일 때가 많다. 지난 3월 6일과 7일 프로농구에서 보여준 추한 타이틀 경쟁은 아마도 이런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타이틀을 따기만 하면, 윤리적으로 맞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 말이다.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기자는 지난 30년을 모태신앙의 크리스천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믿음이 그렇게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나의 믿음에 대하여 논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믿음 좋은 다른 크리스천들과 비교했을 때 말이다). 지금 현재도 필자는 이른바 '나일론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크리스천의 삶과 세상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많은 고민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기자는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은 무조건 하나님과 교회의 요구에 받아드리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죄를 짓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적어도 30년 동안 교회 생활을 하면서 묵시적으로 배워왔던 것으로 사료된다.

하지만, <뉴스앤조이>를 만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우리의 교회 중에도 결코 바로 서지 않은 모습도 많다는 것을 느꼈다. 크리스천 지도자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지저분해 보일 때도 있고, 교회가 교회의 모습을 잃은 경우도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과연 우리의 교회 안에도 성적지상주의는 없는지 궁금해진다.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상관 없이 교인수와 교회 크기, 헌금액수가 더 중요하게 보이지 않느냐는 말이다. 믿음이 약하거나, 사회적 지위가 약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를 얕잡아 보거나 신앙적으로 낮게 평가하지는 않았나 자책하게도 만든다.

자칫 교회 내에서 '타이틀 만들기'에 노력하지는 않는가? 그리고, 사회 내에 팽배한 성적지상주의를 남의 일처럼 바라만 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사회에 팽배한 성적지상주의. 우리 교회가 고쳐 나가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는 것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교회내의 성적지상주의는 당연히 없어져야하고, 세상의 성적지상주의를 없애고, 윤리의식을 올바로 세워야 하는 것 또한 교회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천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