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 한국기독당이 창당대회를 열었다. 한국기독당의 창당을 주도하는 이들의 주장은 한국의 정치가 바람직하지 못한 길로 가고 있기 때문에, 국회의 복음화를 이룩해 올바른 정치를 펼치겠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누구나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있고 종교인이 종교정당을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또 그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서구에는 기독교민주당, 기독교사회당 등 기독교의 이름을 내 건 정당들이 많이 있고, 그들 중 상당수가 집권을 하고 있거나, 집권한 경험이 있기도 하다.

문제는 그들이 내걸고 있는 국회의 복음화를 통한 정치발전이라는 구호가 가소롭다는 점에 있다. 우리나라 국회가 기독교인 의원이 적어서 유신헌법을 통과시켰으며, 권위주의 정권시절에 침묵으로 일관했던가를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의 30%가 기독교인이고 정치인 중에 기독교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항상 이보다 더 많았다. 그들 기독교인이 어떠한 마음으로 정치에 몸을 담았던가에 상관없이 그들은 제도권 정치에 흡수되면서 차별성을 잃어갔다. 최근에 드러나는 돈 선거와 관련해 거명되는 국회의원 중에 기독교인이 결코 적지는 않을 것이다.

제도권에 진입한 후에도 제도정치의 구태에 동화되지 않은 꼿꼿한 정치인은 도태되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국회의원은 그가 기독교인이던, 과거의 전력이 아무리 아름다웠던 지에 상관없이 기성정치인과의 차별점을 찾을 수가 없게 되어갔다.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기독교인구의 비율과 우리나라의 정치의 수준이 비례하지 않는 이유이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정치를 이끌어 온 이들은 제도권 밖에서 외치는 재야의 목소리였다. 제도권 안의 기독교인들이 그들을 용공으로 몰아붙이고, 사대적인 정책을 펼치기에 여념이 없는 사이에 나라의 자주와 주권을 위해 몸을 던졌던 이들도 바로 권력과는 상관없는 목회자와 교인들이었다.

이제 권위주의 시대에 침묵으로 일관했고 음성적이거나 혹은 분명하게 드러나는 목소리로 권위주의 정권을 비호해 오던 사람들이 정당을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앞서서 정치를 개혁하겠다고 한다. 이제는 올바른 소리를 해도 좀처럼 잡혀가기도 힘들고, 정치권에 몸을 담으면 얼마간의 권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가 보다. 그래서 그들은 기독교를 팔고, 세상의 이치에 어두운 기독교인을 팔아서 권력을 사려고 하는 것이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기독교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온 것은 한줌 광야에서 외치는 선지자들의 목소리였다. 수많은 옥고를 치르며 통일의 길을 연 목사님, 목숨을 걸고 독재와 맞서 싸웠던 교인들, 조그만 팜프렛 정도의 책으로 올바른 신앙의 길을 인도해 온 헌신적인 종교지도자들, 고통이 있는 곳에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 하면서 눈물과 땀을 흘린 크고 작은 예수들이 한국의 기독교의 정체성을 지켜왔다.

그들이 그렇게 노력하는 바로 그 시간에도 지금 물량주의에 물든 기독교 지도자들은 세상을 미혹했고 미친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서 거짓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제 정당을 만들고 정치를 하겠단다. 정치권을 정화하고 우리나라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겠단다.

어차피 썩은 정치권에 물든 기독교인들은 계속 있었다. 그들이 기독교 정당의 이름으로 모인다고 더 나빠질 것은 없다. 그러나 그들이 교인을 미혹하고 기독교의 이름으로 교인들의 표를 이용해서 권력을 맛보려고 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도 길거리에 나서는 기독교인들이 있다. 오늘도 힘든 세상을 밝게 만들어보려고 고통 중에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선지자고 그들이 신앙의 본보기이다. 그리고 이제껏 교회권력의 맛과 따사로운 물질적 생활에 익숙해 있던 거짓선지자들이 이제는 권력을 탐하고 있다.

권력에 익숙해진 그들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조금의 두려움도 없는 것인가. 하나님을 팔아서 또 다른 권력을 취하려는 이들의 가소로운 주장이 무엇이든, 나는 그들이 또 다른 권력을 취하는 것을 반대한다. 진정한 권력은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있다.

권력은 진정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사람들, 진정으로 그들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들, 진정으로 권력의 달콤함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이들. 광화문 거리에 선 이들. 고통받는 자들에게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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