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의 영성 이야기' 시리즈.
 ⓒ뉴스앤조이 신철민

영성생활은 영원한 과정이며 순례의 길이다. 잘 닦여진 결승점을 향해 전 속력으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달릴수록 넓어져만 가는 수평선을 향해 인생 전체가 벅차도록 달려가야 하는 마라톤이다. 그리고 우리가 올바른 코스를 달리고 있다는 확신을 한 후에라도 즉 거룩한 산을 향해 먼길을 순례하는 자에게 부어주시기로 한 하나님의 약속을 끊임없이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영성순례의 여정에서 명상기도와 영적 독서는 영성생활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는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영성생활 전통이다. 렉시오 디비나는 수도원(monastic) 전통에서 내려오는 렉시오 디비나와 강단(scholastic)형 렉시오 디비나로 구분된다. 강단형은 일반적으로 성서를 네 번 봉독한 이후에 네 단계를 통해 진행된다.

1) 성서낭독(lectio) : 단어와 구절에 집중
2) 묵상(meditatio) : 성서말씀의 음미
3) 애정 어린 기도(oratio) : 자발적인 응답
4) 관상(contemplaticio) : 하나님의 현존 안에 평안히 거함

수도원형 렉시오 디비나는 강단형보다 훨씬 단순화되고 개방된 형식을 갖고 있지만 나름대로 흐름은 가지고 있다. 어떤 단계를 규정하기보다는 성서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이다. 그러나 그 흐름은 앞서 말한 강단형의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그것이 단계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수도원식 렉시오 디비나는 항상 성령께 드리는 기도로 시작되며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 말씀 봉독, 지향 없는 묵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는 '의미의 고찰', 자발적인 기도를 통한 응답, 특정한 의지 행위와 생각들을 넘어서서 하나님 안에 평안히 머무는 안식 등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한국 개신교의 경우 QT(Quiet Time)라고 불리는 성서묵상 방법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조용한 시간에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이 오늘 현실상황에 주는 의미를 찾고 적용하는, 현실적인 묵상방법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지극히 머리와 가슴에만 머무르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QT를 선호하는 신앙인들은 성서에 대한 비판적 분석, 즉 성서말씀의 역사적 상황이나 언어학적 분석 등등의 성서비평이 갖는 가치를 무시하기 때문에 성서가 갖는 철저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전인수격의 해석과 알레고리식 해석이 난무한다. 그것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 말씀되게 할 수 없다.

배꼽 읽기의 핵심은 성서의 역사문화적·신학적 의도를 비판적으로 살피고 분석하는 머리로 읽는 성서 읽기를 배척하지 않는다. 성서를 읽을 때 우리의 이성과 지성을 포기할 이유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성서는 지식과 지성으로 깊게 읽어야 한다. 그러나 가슴으로 뜨겁게 읽는 것도 지나칠 수 없다. 성서말씀에 등장한 사람들의 심정을 가슴으로 맞대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심전심을 가능하게 하는 성령의 역사를 무시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성서를 머리와 가슴을 통해 깊고 뜨겁게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배꼽으로 읽어야 한다.

성서를 배꼽으로 읽는다는 것은 성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내 몸에 꽂히는 것을 상징한다. 즉 성서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지금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을 의미한다. 성서를 읽고 나서 하나님께서 내게 이 말씀을 통해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분명하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그 들음이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 즉 자기 생각이나 마음의 표현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 더욱 더 지성과 감성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배꼽으로 성서 읽기'로서 렉시오 디비나를 다시 풀어서 정리해보자. 우선 성서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때까지 읽고 또 읽는다. 그리고 의심나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덮어두거나 지나쳐서는 안 된다. 의구심을 품지 않는 것이 성서에 대한 올바른 태도도 아니며 믿음 좋은 모습도 아니다.

성서를 묻다 보면 성령의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보이지 않았던 진리의 세계를 보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영적 독서는 성서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머리로 읽은 후 이제 성서를 가슴으로 읽는다. 성령을 통해 내 영과 성서 안에 등장한 사람들의 심정을 만나는 것이다. 성서를 지성과 감성으로 읽는 것, 그것은 성서를 깊이 심사숙고하는 것이다. 복음서에서 심사숙고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적으로 어떤 것을 관조하는 것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고통스럽지만 자신의 영혼 속에 그것을 계속해서 붙잡고 있는 것이며 그것이 야기하는 모든 긴장을 끝까지 감내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성서말씀을 충분히 심사숙고한 다음 반드시 우리는 하나님께 되물어야 한다. '하나님, 이 말씀을 통해 나에게 지금 이 시간에 하고 싶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내게 말씀해주세요!'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성서를 통해 우리는 도덕적 교훈만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도덕적 교훈은 다른 종교경전에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성서를 읽는 것은 그 성서가 말하는 보편적 진리의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렇다면 성서는 한번 읽는 것으로도 족하다. 우리가 성서를 읽는 이유는 성서말씀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직접 듣기 위해서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이 순간이 하나님 말씀이 내게 성육신 하는 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성서말씀을 읽어도 각기 다른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공동으로 성서를 읽었을 경우서로 들은 말씀을 함께 나누는 것은 중요한 훈련이자 고백이다. 각자가 들은 말씀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서로 말씀을 나눌 때 성서를 통한 하나님 음성 듣기가 보다 실재적이고 분명해질 것이다.

▲김진 목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처음에 이것이 내 생각에서 끝난 것인지, 가슴의 느낌인지 분별이 안될 수 있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생각과 감성을 넘어서 돌진해오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깨닫고 느낀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하시고자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듣고 확신할 때 배꼽으로 읽기는 완성된다.

김진 목사 / 크리스챤아카데미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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