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6주 전 교회에서 만난 소박한 여인을 통해 '삶'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는 입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작은 관을 통해 위에 직접 영양을 공급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는 삶에 지쳐있고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교회에서 받는 성도들의 따뜻한 환영과 기도에 깊이 감사하고 용기를 얻고 있었다.

그녀가 음식을 먹지 못하는 이유는 삶이 가져다주는 고통에 절망하고 신음하던 중 순간적으로 약을 먹고 죽음의 길을 택하려다 음식을 넘기는 기도가 타버렸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음식을 입으로 삼키지 못하게 됐고 말도 작은 소리로 풀잎 떨리듯이 하게 됐다.

예배를 마친 후 어려운 사람들과 가끔 기도하는 자리를 마련하는데 그녀가 수술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아내와 내가 병원을 방문하니 그녀가 많이 놀라면서 고마워했다. 사실 그녀는 내 아내가 현재 암으로 투병중이라 설마 자신에게까지 병문안하러 올 것을 기대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녀가 아내를 보며 용기를 얻는 모습에서 동병상련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또 내 아내와 그녀를 보며 위로의 힘은 '같은 마음을 갖는 것'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그녀를 교회로 인도한 성도는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을 백혈병으로 잃은 분이었고 옆에서 관심을 갖고 도우시는 분도 고통을 아는 식구다.

대장이나 소장을 끌어당겨 음식을 넘길 수 있도록 기도를 만들어야 하는 대수술이라 몇 시간이 걸릴지 예측도 불가능했지만 정작 수술을 받는 그녀는 불안하지 않다며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미소를 보며 이번 수술이 단지 음식의 맛을 즐기려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생각지 않고 무심코 지나쳤던 자신의 몸에 대한 존귀와 감사를 회복하려는 것임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죽음의 문턱까지 가본 그녀에게 단순히 목숨을 연장한다는 이유 외에도 현재의 삶에서 참 생명과 행복을 주는 하나님 나라의 문을 두드리는 결단임을 나는 믿는다.

내가 그녀의 수술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담당 의사가 그녀에게 수술 받지 않아도 충분히 살수 있고 오히려 어려운 수술이라 위험할 수도 있으니 선택을 하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술을 하루 앞둔 시간에 편안하게 자신을 맡기는 믿음과 내 아내에게 "빨리 회복해서 완쾌되세요, 그렇게 될 거예요"라고 위로하는 넉넉함에 있다. 무엇보다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며 같이 대화하고 기도하는 속에서 참 삶을 갈망하는 그녀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방인성 목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앞으로 그녀는 내가 느끼는 음식의 맛과는 사뭇 다른 맛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입으로 먹지 않고 사는 신비한 세계 즉 용서를 맛보며, 화평을 먹고, 기쁨을 마시는 비결을 더욱 열망하게 될 것이다. 더 건강해서 힘있게 활동하며 큰 소리로 말도 하겠지만 천천히 걷고 작은 소리로 말해도 얼마든지 이해하고 위로하며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수술로 음식을 넘기는 통로의 기도가 고쳐져서 맛있는 것 많이 먹고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재미있는 삶을 사는 모습, 생각만 해도 좋다. 더욱 더 신나는 것은 하늘의 것을 맛보는 기도(祈禱)의 문이 열려 지난날의 슬픔을 딛고 참 삶의 기쁨과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기도는 뚫려야한다! 혹 입으로 먹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늘의 것을 먹는 기도는 반드시 뚫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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