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좌담 참석자들. 앞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한명수 목사, 손봉호 교수, 박종화 목사, 박득훈 편집인. ⓒ뉴스앤조이 실철민

4·15 총선은 국민들이 막 출범한 지 1년이 지난 노무현 정권을 평가하고 정치와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결정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만큼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만들어 가는데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리스도인은 전체 인구의 20%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만 제대로 선거에 참여해도 한국의 장래는 상당히 밝아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정치의 영역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우선 시대를 제대로 읽어내는 예리한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뉴스앤조이>는 그리스도인이 총선 시국을 어떻게 읽어내야 하며 중요한 정치 쟁점들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 지 생각해 보기 위해 특별 좌담을 마련했다. 한명수 목사(예장합동 전 총회장) 손봉호 교수(한성대 이사장) 박종화 목사(경동교회)가 좌담에 참여했고, <뉴스앤조이> 박득훈 편집인이 진행을 맡았다. 이 좌담이 그리스도인들의 현 시대를 바르게 읽고 책임 있는 한 표를 행사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편집자 주).

박득훈 편집인 : 기독교 내부에서 현 시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적으로 매우 비관적입니다. 특히 보수주의 진영을 중심으로 기독교정당을 만들겠다고 나선 이들은 현 시국이 정치적으로 부패하고 반미와 친북 세력이 득세하는 등 극도의 혼란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기독교인들이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현 정국이 비상시국이라는 견해가 올바른 것인지 그리고 기독교정당 참여자들의 시국관이 역사적으로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한명수 목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한명수 목사 : 단적으로 현 시국은 위기가 아닌 과도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정치가 너무 부패했기 때문에 기독교정당이 필요하다고 하는 시각에 대해서도 좀 다른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기독교 자체의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넘치는 상황에서 기독교정당 결성 취지는 먹혀 들어갈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내부에서 친미나 친북, 반미나 반북, 혹은 우익이나 좌익 등의 표현을 남발하는 것도 마땅치 않습니다.  원칙적인 얘기지만 호혜평등의 원칙에 의해 반대할 것은 반대하고 찬성할 것은 찬성하는 자세가 옳다고 봅니다.

손봉호 교수 : 현재 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렵고 극도의 정치적 부패상이 드러나 전반적인 위기 의식이 강하게 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 시국이 부정적인 위기상황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우선 정치가 과거보다 더 부패해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현재의 정치적 부패상은 과거에 드러나지 않았던 비리가 이제 곪아 터져 나왔기 때문에 불거졌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가장 큰 공헌은 검찰로 하여금 성역 없이 수사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검찰 총장이 대통령보다 강해진 것처럼 보입니다. 때문에 현재의 정치적 혼란은 오히려 상당히 긍정적인 현상으로 봐야 합니다.

노 대통령이 정치개혁만 한다면 다른 것을 실패해도 괜찮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면에서 틀림없이 과거보다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현 정치 부패상을 부정적인 면으로만 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또 우리나라는 보수적이고 반공적인 사상에 오랫동안 젖어있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진보적 정권이 들어서 보수적인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사람들은 위기의식을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좌익이나 우익의 구별은 근본적으로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이미 무력화되어 있고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념적인 좌우익 구별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북한의 체제를 옹호할 필요도 없고, 또 북한이 지금 무너진다면 감당하지 못 할 게 뻔합니다. 그리고 미국도 감정적으로 칭찬할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우리나라가 손해보지 않는 차원에서 미국을 바라봐야 하지 않습니까.어쨌든 정국이 혼란스런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은 정의와 공정성을 강조하고 나라의 중심을 잡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정당은 전혀 옳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정치 구조는 아직 기독교인의 순수한 양심으로 볼 때 비도덕적인 것과 타협하지 않고는 정치판에서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또 권력을 뜻하는 정치에 기독교의 이름으로 진출했을 때, 다른 종교가 위협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은 정당이 아닌 시민운동 같은 권력을 갖지 않는 비판과 계몽운동이 옳다고 봅니다.

박종화 목사 : 현 시국은 비상시국이 아닙니다. 피터 드러크의 문명사적 연대기에 따르면 영국이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가는데 150년이 걸렸고, 미국과 독일은 70년, 일본이 50년, 한국이 20년 걸렸습니다. 산업화 속에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사회의식 그리고 문화 등이 포괄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20년 동안 권위적 군부를 경험하면서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성장 등 엄청난 일을 했습니다. 특히 경제적 부의 축적은 두드러진 부분입니다. 그러나 민주적 의식이나 문화적 소양은 경제발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현재의 혼란은 경제발전을 정신적 가치관이 따라잡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봅니다. 어쩌면 이런 혼란은 행복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혹시 위기라고 규정할 지 모르지만 제3세계나 우리보다 못한 나라에서 볼 때는 사치스런 말입니다.

20여 년 전 제가 독일에서 유학할 때 그 나라의 실업률이 4∼5%나 됐다고 온 나라가 난리법석을 떨었습니다. 실업률이 1∼2% 올랐다고 법석을 떠는 그들을 당시 우리나라 사정에 비교해 봤을 때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20년 전의 독일 상황을 겪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현재 상황은 우리가 도약할 수 있는 계기이자 생산적 위기입니다. 우리나라의 단점인 '빨리빨리'가 갖고 있는 한계에서 오는 당연한 귀결입니다.

박득훈 편집인 : 현재 위기를 성장통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1월 25일 노무현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았습니다. 현 정권은 "과거 1년 동안 대한민국은 뚜벅뚜벅 앞으로 가고 있다"는 자체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 갈등 요소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은 물론 대통령이 먼저 탈권위를 통해 토론문화를 정착하는 데 앞장서고 있어서 어느 때보다 민주화가 정착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진단에 대해 반대 의견도 많습니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없어서 나라가 불안하고 우왕좌왕하며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고 반미친북적 성향이 강하다는 비평도 만만치 않습니다.

한명수 목사 : 말 실수도 하고 문제는 많아요. 여러 가지로 많은 문제가 있지만 그러나 현 단계에서 천사가 온들 어떡하겠습니까. 가령 노 대통령이 미국 가기 전에 어떤 사람들은 반미주의고 폐쇄적 민족주의자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을 다녀 온 다음에는 복제인간이 됐다고 하더군요. 친미주의자가 됐다는 얘기죠.

그러나 나는 반미나 친미라는 단어에 대해서 불만이 있습니다. 물론 용미라는 말 즉 미국을 이용한다는 말도 이상하죠. 미국은 미국이고 우리는 우리죠. 그리고 전부 친미만 있으면 어떡하나요. 반대의 목소리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폐쇄적 민족주의 역시 안되고 열린 민족주의가 필요하죠.

여중생 사망 촛불시위에 대해서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 사람이 죽었는데 촛불시위 정도도 못하나요. 이 사건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우리나라 정서에 결코 맞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를 너무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말해야 합니다.

노 정권이 검찰권 독립을 통해서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는 부분에 대해서는 시원함을 느낍니다. 만약 보수 정권이 들어섰다면 아마 털어버리지 못했을 겁니다. 다행스러운 부분이죠.

▲박종화 목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박종화 목사 : 노무현 대통령은 문민정부나 참여정부가 이루지 못한 누적된 부패구조를 뜯어고치는 마지막 주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입니다. 잘못된 것을 부수는 역할에 대해서는 크게 평가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 정권에게 새로운 조국을 이룩하는 '건설자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현 대통령 참모진과 정당 구조를 가지고 새로운 21세기 건설을 기대하기는 힘들고 또 다른 누군가가 역할을 해야 합니다.

노 정권의 부수는 역할은 한편으로 경제보다는 정치적 위기를 가져옵니다. 하지만 제도권 정치가 망해도 이 나라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국민은 무서운 속도의 발전 속에서 수치화할 수 없는 성숙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더 부숴야 할 것을 부순 후에 비로소 진정한 NGO와 GO가 정치와 제도를 새롭게 세워 나가야 합니다. 기독교는 이때 기독교정당으로써가 아닌 공의와 정직을 바탕으로 한 정책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정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다음은 반미 문제인데요, 나는 미국이 한미동맹 차원으로 볼 수 있는 일개 국가는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미국은 마치 로마제국과 같은 나라입니다. 미국은 전세계 지도를 놓고 자국의 이해관계 속에서 동아시아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짝사랑 비슷하게 미국을 국가 대 국가로 놓고 미국의 정책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냐에 따라 친미냐 반미냐를 따지고 있습니다.

서유럽이 왜 독일을 중심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같은 정책을 반대하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 미국이라는 제국이 유럽을 점령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에 따른 자기보호본능 때문입니다. 단 영국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생리적으로 유럽 대륙과 갈등을 보이며 미국과 유럽에 각각 양다리를 걸친다는 식의 자세를 보입니다. 일종의 유럽식 실용주의 노선인 것입니다.

우리도 동아시아 주변 정세를 정확하게 판단해 유럽과 같은 실용주의 노선을 걸어야 합니다. 나는 이것을 적극적인 자주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동아시아는 중국이 부상하고 비록 힘이 빠졌지만 러시아가 다시 일어서고 있습니다. 일본은 경제대국이지만 미국의 우산 속에 들어가 있는 형편입니다. 우리의 살길은 반미나 친미가 아닌 적극적 자주입니다. 친미 친중 친러라는 적극적 자세가 생존 방법인 것입니다. 북한은 소극적인 자주 즉 비동맹정책을 취했지만 냉전 시대 일부 통했을 뿐 현재는 일어설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아직 실기(失機) 하지 않았습니다.

가령 우리는 다자간 안보체제 속에서 평화공존의 생존전략을 취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단일극 체제 유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중국을 파트너로 삼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북한을 이슈화시켜 다극 체제 속에서 한반도를 거대 제국의 만남의 장소로써 만듬으로 우리 스스로 동북아의 중심이 되도록 하면 좋을 것입니다. EU의 본부가 델리에 있는 점이나 룩셈부르크나 네덜란드 같은 작지만 알찬 나라들이 국제협상의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은 우리에게 충분히 희망을 안겨주는 실례입니다.

▲손봉호 교수. ⓒ뉴스앤조이 신철민

손봉호 교수 : 북한이 과거의 북한이 아닙니다. 그것을 감안했으면 좋겠습니다. 북한이 과거처럼 위협이 되는 세력이 아니지 않습니까. 북한의 인권 무력 등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갖는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친북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참 애매합니다. 과연 우리가 북한 독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죠. 나 같은 사람은 대번에 소위 친북자 속에 들어갑니다. 하여튼 북한 관계를 개선하고 교류를 많이 하고 북의 경제를 도와주고 통일의 기반을 만들자고 하는 그런 정도지 정말 북한이 좋고 북한처럼 되자는 친북세력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친북에 대한 두려움은 과장되어 있습니다.

반미는 우리가 조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반미를 하지 않더라도 미국인들이 그렇게 인식했을 때 우리가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부시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이고 반미주의자일 수도 있겠지만, 굉장히 실용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익을 위해서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우방이라는 생각은 감정적인 것입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약육강식의 원칙이 작용합니다. 영원한 우방이라는 것은 순진한 생각입니다. 다만 미국이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박득훈 편집인 : 좀 세밀하게 우선 정치부패부터 짚어 보죠. 현재의 정치적 부패상을 과도기적 증상으로 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정치가 왜 이렇게 부패할 수밖에 없는지 궁금합니다. 최장집 교수(고려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모든 정당이 편차는 있지만 보수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정책 대결이 없고 오로지 의지할 데라고는 금권이나 지역주의였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부패한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 정치가 부패한 것은 사실인데 그 부패의 근원은 어디에서 온다고 판단하십니까.

손봉호 교수 : 최근 삼국지를 다시 읽고 있는데 시작부터 완전히 부패로 물들어 있습니다. 전부 뇌물이 판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신라시대로부터 역대 정권이 공정하지 못했습니다. 뇌물 주고받는 공정하지 않는 관행 때문에 정부에 안전을 기대하는 대신 인간관계에 의지하는 연고주의가 작용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정당도 이념과 정책 위주가 아닌 이익 공동체와 같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 부패를 막는 정치제도는 민주주의가 가장 좋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민주주의 역사가 너무 짧은데다 밑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위에서 밑으로 강압적으로 형성됐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런 민주주의 한계 때문에 남북관계나 경제적 어려움을 핑계삼아 군사정권이 집권하게 됐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제도로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은 문민정부 시대부터이기 때문에 매우 역사가 짧습니다. 물론 3·1운동을 통해 일제에 저항했고 군부독재 시대의 민주화 투쟁 같은 시민운동이 그나마 의미있는 민주화의 전통입니다.

어쨌든 우리 정당은 유교적 전통이나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보수화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부패는 누구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문화적 배경, 경제적 어려움, 반공 이데올로기 대결 등이 작용해서 더욱 크게 형성됐다고 봅니다.

한명수 목사 : 불교와 유교 등이 민족의 중심적 정신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가운데 100년 전에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더 부패해졌다는 말을 들은 바 있습니다. 군부 독재 시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집권하기 위해 체육관 선거와 같은 부끄러운 일이 자행됐습니다. 그때 기독교인들이 다 들러리 서지 않았습니까. 옷 입혀 주고 설교해주고 축하 기도해 주고, 기독교인들의 부끄러운 역사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물론 보수교회가 특히 그랬습니다.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크면 제일입니다. 본질적 가치를 무시하고 가시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것이죠.

박득훈 편집인 : 4·15총선을 맞아 공명선거 운동을 비롯 낙천·낙선 혹은 물갈이운동 등 부패정치를 없애야 한다는 시민운동이 많이 일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여기에 어떻게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는지요. 

▲박종화 목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박종화 목사 : 기독교인들은 사람을 중심으로 투표를 해야 합니다. 현재의 기존 정당 구조로는 향후 국가경영에 있어서 여든 야든 자격이 모자랍니다. 일단 능력 있고 개혁 성향의 인물 본위로 뽑아 그들이 헤쳐 모여 진정한 개혁을 위한 정당을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4·15총선 후 현재의 정당구조는 재편될 것입니다.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고 양심적인 후보를 세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어차피 빅뱅은 시작될 것입니다. 그 속에는 과거 우리가 가졌던 지역 중심의 투표는 의미가 없게 됩니다.

기독인 유권자들은 정치권 재편을 염두에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천과정을 보면 기존 정당구도에 대한 저항이 간접적으로 표출됐다고 느낍니다. 기존 정당 기득권이 재편된다는 뜻입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대외적 신분 때문에 투표하는 것은 더 이상 안 됩니다. 지금은 어느 종교를 따지기 보다 정치적 투명성과 정치 개혁성향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종교적 소속이나 지역 정서, 계층적 편향을 지닌 투표는 정치개혁에 방해가 됩니다.

손봉호 교수 : 이번에는 신인들이 많이 당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인들이 기존 정치인보다 자질이 우수하다는 것 보다 도덕적 부채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 때문입니다. 낙천·낙선 운동은 우선 물갈이를 하는 데는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멀리 내다봤을 때 과연 민주주의 원칙에 맞느냐, 그건 좀 의심스럽습니다. 단지 우리 단체는 이 사람 원치 않는다 혹은 지지한다고 발표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엘리트를 자처하는 사람이 특정인에 대해 '된다' '안 된다'는 것은 월권입니다. 유권자의 성숙한 투표에 방해가 되고, 시민운동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당은 존재 자체가 거의 무의미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인물 본위로 유능한 사람보다는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게 좋겠습니다.

박득훈 편집인 : 기독교인들이 정치의 전체적인 그림을 생각하면서 총선에 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전국에 후보를 내겠다고 나선 기독교정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그리고 기독교정당이 문제점을 안고 있다면 우리 정치 현장에서 종교보다는 정치적 자질이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서 어떤 당위성을 제시할 수 있겠습니까.

▲한명수 목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한명수 목사 : 기독교정당은 남남갈등과 동서갈등이 존재하는 이 나라에 또 다른 갈등의 불씨를 안겨 줄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기독교 전체에 망신만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정당 참여자들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많은 것으로 압니다. 가령 일부 사람들을 가리켜 돈이 나오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식입니다.

기독교는 요즘 아주 이상한 집단 이기주의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정 목회자 얘기는 하고싶지 않지만 큰 교회 목사가 하나 무너지면 마치 기독교 전체가 다 무너지는 것처럼 옹호하고 나서는 현실은 무척 슬픈 일입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냉정하게 회개하는 심정으로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어저면 이런 옹호 논리는 과거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이 부패정권을 옹호한 논리와 맞아떨어집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제와서 한국 정치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은 역시 대단히 슬픈 현실입니다. 군사독재 때 어용했던 사람들이 정치나 사회에서 어른 노릇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다 끌어내려야 합니다.

박종화 목사 : 기독교인 지도자가 기대치만큼 기독교 가치관에 맞게 정치하는 일을 개인적으로 본 일이 없습니다. 대개 기독교 가치관이 정치 현실에 맞지 않을 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그만큼 우리 정치인들의 기독교 가치관 뿌리가 약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상황은 종교적 언어가 아닌 생활 신앙 속에서 기독교 가치관이 뿌리 내리지 못한 상황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악용한 점은 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인물을 보고 투표하자는 게 제 생각입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기독교정당 하겠다고 나선 분들은 가야할 시대의 인물들이지 새로운 시대 가치관을 실현하는 인물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물론 그 분들이 교회 발전에 끼친 업적에 대한 평가는 유보하겠습니다. 그러나 사회가 어려울 때 과연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했는지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분들이 주축이 된 기독교정당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기독교를 이용당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의심하게 됩니다.

독일과 같이 기독교를 국교로 삼는 나라에서도 기독교정당은 기독교의 가치관을 정치적으로 내세운다는 뜻이지 교회나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정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곡해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기독교민주당은 가톨릭적 색채를 띠고 있고 개신교의 색채를 띠는 정당은 사회민주당입니다. 이들이 기독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정당적 이름일 뿐 교회가 참여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같은 다종교 사회에서 기독교정당은 종교갈등 소지가 많을 뿐 아니라 사회도덕과 윤리 등에서 검증되지 못한 사람이 기독교정당에 참여한다고 했을 때 오히려 부정적인 반응을 초래할 것입니다. 나는 기독교정당에 투표할 생각도 없고 오히려 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현재의 기독교정당은 오히려 반기독교적입니다.

한명수 목사 : 우선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표를 주자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지금 우리 상황은 기독교인이고 유능하면 좋지만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평가가 달라지는 것은 안 된다고 봅니다. 준비가 제대로 되지 못한 분들이 혹시 국회에 들어가 권력을 잡는다면 오히려 전도에 방해가 될 것입니다. 또 기독교 이미지에 큰 상처를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치권력은 아직까지 굉장한 유혹입니다. 우리 사회는 돈에 약하지만 정치권력에도 굉장히 약합니다. 그곳에 들어가서 정말 기독교정신을 갖고 정치인으로 활동하려면 보통 인격 수준을 넘어야 합니다. 사실 지금 우리나라 상황에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물론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고 하지만 권력을 향한 개인적 욕망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엄연한 인식이 있는데도 개인이 올바른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봤자 어느 누구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할 것입니다.

(* 한명수 목사는 개인적인 일정 때문에 부득이하게 이 이후 대화에는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이점 독자들께 양해를 구합니다.)

▲박득훈 편집인. ⓒ뉴스앤조이 신철민

박득훈 편집인 :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이 과거 정권에 대해 침묵 내지는 옹호하다가 이제 와서 정치 일선에 나서려고 하는 동기를 무엇으로 볼 수 있을까요.

손봉호 교수 : 일단 대의명분은 정치가 너무 부패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치일선에 나서면 지금보다 좀 낫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명분이죠. 그 다음에 신학적으로는 네덜란드의 아브라함 카이퍼가 기독교정당을 만들어 기독교 원칙에 의해 정치했다는 것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직접적인 동기는 문선명파가 가정당을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게 직접적인 자극을 준 듯합니다. 이러다가는 기독교가 기회를 놓친다고 본듯 합니다. 나는 지금 상황에서 종교단체가 정당을 만든다면 그 종교가 망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박종화 목사 : 기독교의 정치 참여는 찬성합니다. 그러나 정당을 결성하는 것은 우리 정치 현실이나 이론적 혹은 이상론을 봐도 맞지 않습니다. 왜냐면 정당 정치는 구조적으로 교회를 정치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치참여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기독교정당은 다수당이 되어도 기독교 가치관을 수용할 수도 없지만 소수당이면 기독교의 사회적 위상을 떨어뜨려 선교활동 마저 저해할 것입니다.

박득훈 편집인 : 기독교정당을 추구하는 근본적 혹은 진정한 이유는 혹시 딴 데 있을 수도 있을 듯 한데요.

박종화 목사 : 다는 아니지만 우리 정치 현실이 어려웠을 당시 진짜 공의의 목소리 내시는 분 말고 간접적으로 이득을 취한 분들이 지금 정치권으로 나오는 모양새입니다. 혹시 우리 사회가 과거보다 투명해지고 진보적인 목소리가 일정 부분 울려퍼지니까 정당을 구성하지 않으면 정치적 기득권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위기감은 없었는가 생각해 볼 필요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의 대 사회적 역할이 과거보다 전혀 다른 패턴으로 새로워지고 투명해져야 하는데, 그런 분위기에 적응을 못한 권위주의적 체제에 물든 사람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새로운 정당을 조직해서라도 기득권 관리 및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자기보호본능은 없었겠습니까.

박득훈 편집인 : 앞으로 한국사회가 좀더 민주화되고 성숙해진다면 기독교정당의 전망은 달라질 수 있을까요.

손봉호 교수 :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동안 문화나 사회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기독교정당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독교정당이 가능한 상태는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을 때입니다. 즉 정치를 권력으로 생각하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봉사로 생각하는 의식이 생길 때입니다. 하지만 나는 세계 역사상 그런 나라가 아직까지 출현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론적으로 볼 때 네덜란드가 어느 정도는 근접했지만 완전한 형태는 아닙니다.

시민들이 정치에 대해 상당한 책임의식을 갖고 봉사하려는 것이지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비로소 기독교정당 결성도 봉사를 위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이 엄청나게 성숙해져야 하는데… 글쎄요.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힘든 얘기입니다.

▲참가자들은 한 목소리로 기독교정당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박종화 목사 : 정치현안에 참여를 꽤 했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기독교정당 형태의 정치참여는 안됩니다. 다만 기독교 가치관을 정치현안에 적용시키기 위한 교회 내부의 창구를 만드는 것은 필요합니다. 공공의 유익을 위한 모든 백성의 의견을 묻고 기존 정당들과 협상을 통해 정책을 제안하거나 입안하는 역할을 필요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정당화되면 이미 정치권의 하나이기 때문에 교회 자체가 갖는 신뢰를 잃을 수 있다.

박득훈 편집인 : 4·15총선에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에 따라 1인 2표제가 도입됩니다. 즉 한 표는 후보에게 한 표는 정당에 투표하는데 기독교인들이 후보나 정당 선택에 어려움을 겪을 듯합니다. 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바른 선택기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손봉호 교수 : 상대적이으로 도덕적이고 정치적 부패가 적은 신인에 표를 주면 좋을 듯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소속 정당을 찍는 것도 좋겠죠. 그러나 문제는 지역구 사정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당과 후보를 갈라서 투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문제는 기준인데 내가 좋아하는 후보가 속한 정당이 항상 좋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후보와 정당을 구분하는 편이 낫겠죠.

정당을 택할 때는 개혁적이냐 도덕적이냐를 보고 뽑았으면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당과 후보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투표권을 행사할 때 향후 정당구조의 재편을 예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전략적인 측면인데 어느 당 찍으라는 것은 현 상황에서 무의미합니다.

원칙적으로 정당명부식 투표제에서는 비례대표 리스트를 보고 지지 정당을 결정해야 합니다. 리스트의 인물들을 보고 자격 여부를 살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현 정당은 일종의 혼미상태에 빠져 있는 가건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정당 프로그램도 크게 차이가 없죠. 우선 전국구에 올라 있는 인물 우선으로 정당을 선택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종화 목사 : 이번 선거에서는 서유럽 국가가 보여준 지혜를 배우면 좋을 듯 합니다. 독일에서 60년대 말 학생운동이 일어났을 때 많은 학생들의 요구를 기존 정당에서 정당 정강 정책이나 선거법을 통해 수용했습니다. 그 이후 정치 전반의 개혁과 도덕성이 개선됐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극단적인 부류는 지하로 잠적해 일부는 테러단체로 변질됐습니다. 이들은 이상주의를 추구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깨지고 말았죠. 어쨌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독일의 기존 사회는 상당히 개혁적이고 진취적으로 흘러가는데 성공했습다.

이런 과정을 놓고 본다면 진보적 그룹의 역할을 매우 긍정적으로 볼 수 있고, 이런 그룹들에게도 투표해 제도권으로 흡수하는 것은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제도권 밖의 운동은 때로는 실제보다 과도하게 평가되거나 운동권 자신의 망상이 있을 수도 있지만 국회 안에서 정치 현실화시켜야 합니다. 즉 국회에서 민주적 절차를 통해 진검승부를 펼치고 그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옳습니다. 제도권 밖에서는 승복이 없지 않습니까. 민주주의라면 다수결원칙 아래 승복하고 수용하는 자세가 있어야 사회가 발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당 재편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당의 정책 경쟁이 제도권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 첫째입니다. 진보정당에 대한 투표도 적극 주장하고 싶습니다. 노동정책을 바꿀 수도 있고 정치가 건전하고 활성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득훈 편집인 : 현 시국의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빈부의 격차가 심화된다는 통계입니다. 서울대 입학율 통계를 봐도 고소득층이 저소득층의 16배입니다. 빈부의 재생 산구조가 강화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런 현상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손봉호 교수 : 나는 기독교가 원칙으로는 사회주의라고 봅니다. 사회주의는 필요에 따라 공급하는 것이고 자본주의는 능력에 따라 분배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기주의 등 현실적인 우리의 상황 때문에 자본주의를 할 수 없이 받아들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빈부격차를 줄이는 정책과 약자들의 타성적 상황을 키우지 않는 방향으로 지혜로운 소득분배 정책을 써야 합니다. 그것은 대단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특히 우리의 문화적 정서를 고려해야 하고 특별히 교육정책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는 이제까지는 계급의 세습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교육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요즘들어 계급의 세습이 시작된다고 느낍니다. 그것은 상당히 위기입니다. 계급의 세습이 이뤄지면 가난한 사람은 계속 교육을 받기 힘들게 되고 역시 가난을 면하기 힘들게 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지혜로운 접근이 필요합니다. 교육의 격차가 생기지 않도록 아무리 가난해도 능력 있으면 교육받을 수 있는 정책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조세정책도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도 소득이 많은 사람의 세금이 적습니다. 일정액 이상의 소득에 대해서는 세금으로 흡수해야 합니다. 교육에 투자하는 정책도 수반되어야죠. 기독교는 일반 정서에 맞지 않더라도 그쪽으로 관심을 쏟고 거기에 맞게 투자해야 합니다.

박종화 목사 : 현재의 자본주의는 세계화 속에서 시장경제에 의한 무한경쟁 체제입니다. 과거 냉전체제 시대는 그나마 자본주의 체제가 빈부격차 해소에 훨씬 유리하다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당시 사회주의 체제라는 견제세력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견제세력이 없어진 상황 속에서 빈부격차는 누구도 말할 수 없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보는 절망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오해 없이 말하자면 사회주의가 갖고 있던 평등사상은 자본의 평등이 아닌 예컨데 기회균등이라는 이상향입니다. 교회는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상황에서 그 이상향을 국가 체제 안에서 정치권에 주장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권력에 기생하게 되면 그 역할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의 전우주적 원리에 입각해 전세계 전백성을 앞에 놓고 만인을 위한 관점에서 기독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종교간의 협력도 상당히 진척될 것입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종교간 갈등이나 종족 갈등 등을 한반도에서 사전에 막는 일이 중요합니다.

가난을 세습하는 사람은 없지만 부는 자동적으로 세습됩니다. 교회의 직제 세습이나 정치권 혹은 부의 세습이 존재하듯이 세습은 옳고 그르고를 떠나 사라져야 비로소 분배의 평등이 이뤄집니다. 부는 민주적 절차에 의한 공개경쟁을 통해서도 승계됩니다. 세습적 부의 승계는 반드시 제도적으로 막아야 합니다. 엄청난 조세를 통해서 세습이라는 무임승차 즉 태생적 특권은 막는 제도가 마련돼야 합니다. 그럼에도 가난한 자가 이익을 얻지 못하면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기회가 박탈되어서는 안됩니다. 세습은 기회를 박탈시키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입니다.

박득훈 편집인 : 빈부의 세습 방지를 위해 조세정책과 교육정책이 관건으로 떠오른 셈입니다. 교회도 무언가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손봉호 교수 : 몇 년 전에 공산주의가 무너졌으니까 앞으로 기독교가 공산주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교회는 과거보다 사회주의적으로 평등을 강조하는 그런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또 한가지 기독교는 단순히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뿐 아니라 세계적 빈부격차 즉 남과 북에 대해서 훨씬 진솔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국내 문제만 아니라 전세계에 대한 관심이죠. 최근에 선교사가 활동하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그런 부분에 관심을 갖고는 있습니다만 제도적으로 우리가 후진국가를 도와야 한다는 그런 의식을 만드는 일에 기독교가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박득훈 편집인 : 가난한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손봉호 교수. ⓒ뉴스앤조이 신철민
손봉호 교수 : 그 동안은 우리의 평준화 정책이 교육평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과외수업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무 효과를 못 고 오히려 역작용이 발생했습니다. 과외수업 받는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가고 공교육은 약화되어 결국 빈부격차를 더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평등화 제도를 바꾸고 돈이 있는 부모들은 엄청난 액수의 등록금을 내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정부는 사립학교 보조금을 공립학교에 투자해 월등한 수준을 유지하고 가난한 학생들이 혜택을 보도록 만드는 것은 어떨까 생각합니다. 재능이 있는 사람은 장학금 제도를 훨씬 확대시켜 사립학교 등 자기가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경쟁도 시키면서 능력 있는 가난한 학생들을 돕는 그런 방법을 취해야 합니다.

나는 사범대학교에 있었기 때문에 교사가 된 제자가 많이 있지만 그들이 이상을 갖고 학교에 갔다가 '주저앉아 울고 싶다'는 하소연을 들을 때가 많습니다. 교실 통제도 전혀 안 되고 누굴 기준으로 수업해야 할 지도 전혀 모르겠다고 합니다.
요즘 학교가 정상적인 학교가 아닙니다. 학생이 학교를 추첨으로 들어오고 보니 정작 교사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학생이 들어오고 싶어서 들어왔으면 학교가 권위를 갖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학생이 학교의 권위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평준화가 도리어 공교육을 무력하게 만드는 역작용을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박종화 목사 : 학력사회라고 하는 유교적 전통이 좋은 대학 들어가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공교육이 망가지고 나니까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사교육을 통해 이득을 얻고 있습니다. 그 고리를 어떻게 끊어야 합니다.

우리는 경직된 사회주의적 교육정책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공개적 경쟁도 필요하지만 누구에게나 개방된 입시체제와 비록 사교육이 존재한다고 해도 돈이 들어가는 사교육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또 대학의 수를 과감하게 축소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몇 개 대학을 빼고는 대학 자체의 하향 평준화가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대학은 전문화가 안 되고 경쟁력도 떨어져 있습니다. 세계화시대인데도 각 분야의 프로페셔널 정신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막연한 학벌주의는 과거 조선시대의 사농공상(士農工商) 속의 선비, 즉 사(士)를 존중하는 관습일 뿐입니다.

손봉호 교수 : 학벌주의는 연고주의에 따른 우리 문화의 일부인데 이것을 인위적으로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조금 변화되고 있는 부분도 있죠. 가령 기업체에서 좋은 대학을 나와도 능력 없으면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모 대기업의 경우 서울대학 출신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이런 경우를 보면 우리사회가 전반적으로 합리화되면 학벌주의가 사라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박종화 목사 : 우리나라가 어느 때부터 대학 200여 개를 전부 종합대학으로 평준화시켜 버렸습니다. 학교의 특성이 없어진 것이죠. 대학이 경제구조 속에서 통폐합되고 문어발식으로 확장된 재벌과 비슷한 종합대학으로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수도권에 있는 대학이 다 서울대학이라고 하듯이 특성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정리할 필요가 있고 제도적으로 관리하면서 기회를 균등하게 줄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종합대학을 소수로 만들고 가능하면 특성화되고 전문화된 대학이 많아 져야 한다고 봅니다.

손봉호 교수 : 우리나라에서 학벌주의가 강해진 것은 선시험 후지원 제도를 채택한 이후입니다. 그 때 이후 대학 서열화가 생겼습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만 해도 서울대학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정부 정책 실패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교육정책은 문화 등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하는데 임기응변식의 단순한 논리만 갖고 도입했기 때문에 이 모양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박득훈 편집인 : 특성화 내지는 지역 분산은 정치권에서 움직여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서울대 학벌주의가 가장 강력한 곳이 바로 제가 보기엔 정치권입니다. 과연 정치권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떼 내는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으로 보십니까.

손봉호 교수 : 서울대 출신이라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서울대생들의 애교심은 그렇게 강하지는 않습니다. 동창회가 제일 안 되는 곳이 서울대입니다. 서울대 동창회는 굉장히 무력하죠. 서울대 출신으로 대통령이 딱 한 사람 나왔습니다. 각료들의 비율도 과거보다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학벌주의의 원인이 전적으로 정치권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정도 합리적인 안을 내 놓고 민주화와 시민운동이 활발해지면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박종화 목사 : 서울대의 특정과를 폐지하고 타 대학에 그 학과가 만들어진다면 대학의 특성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전남의 모 대학에 가면 어느 전공이 독특하다거나 울산이나 대전의 어떤 대학은 어느 학과가 뛰어나다 등의 특성화 정책을 국민적 합의에 따라 추진하면 학벌주의를 어느정도 근절시킬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교육계 사람들이 이런 정책을 내 놓고 받아들이는 정당을 지지하겠다고 한다면 정치개편도 일어날 수 있다. 아마 노무현 시대라면 가능할 것입니다.

세계화 물결 속에  빨리 교육시장도 세계화가 이뤄졌으면 합니다. 서울대는 일종의 우물안 개구리식 오만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이 서울이 아닌 지역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 대학의 경쟁력을 키워줄 뿐만 아니라 지방을 고르게 발전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박득훈 목사 : 시민단체들이 정치인의 이라크 파병에 대한 태도를 놓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이 점을 어떤 관점에서 판단해야 하겠습니까.

손봉호 교수 : 개인적으로는 파병에 반대합니다. 그러나 정치인이 파병을 찬성했다고 해서 친미주의자라고 보거나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파병 찬성자라도 국익에 의해서 어렵게 결정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박종화 목사 : 양심적으로 파병을 반대합니다. 그런데 파병 자체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도덕적 기준 및 국제관계나 전후 복구 사업 참여 등 실리적 기준 두 가지 잣대가 필요합니다. 사실 단일 논리가 아니기 때문에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이 문제에 있어서 기왕 이뤄진 일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고자 합니다. 단지 추후라도 이라크 국민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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