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해방신학의 편협성에서 벗어나라"는 주장과 관련하여

우선 이 논쟁의 제기는 해방신학이 무엇인가, 그리고 이 기획이 해방신학적 관점에서 쓰였는가, 그리고 해방신학은 편협한가의 문제를 정리하는 것과 관련된다.

해방신학은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이 겪은 경제적 착취와 정치적 억압에 침묵하고 기득권자들과 손을 잡고 있었던 라틴 아메리카 카톨릭 교회의 보수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한다. 1960년대의 라틴 아메리카는 미국의 자본이 경제지원과 협력이라는 명분 하에 경제를 지도하면 빈곤이 해결될 것이다, 미국식 교육을 받은 군부가 정치적 중심에 서면 나라의 정치가 바로 서게 될 것이다, 라는 이른바 '발전주의'(Developmentalism)의 물결 속에 휩싸인다. 그러나 그 현실적 결과는 군부의 독재와 미국식 자본주의의 라틴 아메리카 경제 지배, 그리고 사회적 빈부격차라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적 발언권은 철저하게 묵살되고 군부정권은 민주주의를 유린했으며, 인권은 철저하게 짓밟혔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카톨릭 교회는 암울한 현실에 침묵했고 기득권 세력과의 결탁을 통해 상류층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자 민중들은 카톨릭교회의 이러한 자세에 대하여 깊은 절망과 환멸을 느꼈고, 일부 진보적인 신부들이 민중들의 고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진 특권층으로서의 카톨릭 교회에 반기를 들었으며 이것이 신학화 되면서 해방신학은 태동한다. 이 시기 미국은 해방신학과 입장이 유사한 흑인신학이 생겨났고, 수 백년의 노예생활 이후 여전히 인종차별의 대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흑인들의 삶을 성서적으로 조명하는 작업을 벌여나갔다.  

말하자면, 아메리카 대륙 남과 북에 기득권을 유지해온 개신교, 카톨릭 교회의 신학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새로운 신학적 논리가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 해방신학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을 통해서 현실을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계급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질서 속에 존재하고 있는 각종 불의에 대하여 비판적인 작업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해방신학은 기존의 서구 신학체계로부터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된 신학이자, 예수님을 민중의 해방자로만 이해하는 신학적 편향성을 드러냈다고 비판받는다. 하지만, 기존의 서구 신학체계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존 로크 등 자유주의적 정치경제질서를 이상적 가치로 삼는 전제와 결합된 신학이었다는 점이 재비판되면서, 해방신학과 기존의 전통적인 서구신학은 치열한 논쟁의 과정으로 들어간다. 중요한 것은 신학이 무엇을 위해 봉사하는가에 있다는 논점에 이르게 되면서 해방신학은 기득권 질서에서 소외된 자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반면에, 기존의 서구 신학은 이러한 억압의 현실에 눈감아 왔으며 현실의 문제를 관념화시켜오면서 신앙은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만 국한시켰다는 논란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과하면서 해방신학도 중요한 변화를 겪게 된다. 해방신학이 사회경제적 억압과 정치적 폭력에만 주목한 나머지 인간의 실존적 모순과 죄악에 대해서는 깊은 성찰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함께, 과거 해방신학에 적대적이었던 라틴 아메리카의 카톨릭 교회는 라틴 아메리카의 민주화가 진행되고 군부정권의 인권유린이 속속 드러나면서 자신들의 과거를 회개하였고, 해방신학이 제기했던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라틴 아메리카 카톨릭 교회는 민중들의 반감의 대상으로부터 다시 신앙의 중대한 현장으로 받아들여지는 변화를 거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해방신학은 교회가 기득권 질서와 결탁하여 사회적 억압과 정치적 폭력에 침묵하고 민중들의 고난을 돌아보지 않은 정황에서 역사적 예수의 현실에 주목했고 그로써 가난한 자들의 아픔을 껴안고 풀어나가는 것을 교회의 중대한 사명으로 제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하겠다. 그러나 해방신학 역시 시대적 산물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실존적 본질에 대한 성찰의 부족으로 결국 영성의 문제에 눈을 돌리게 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서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 신학의 현실은, 인간의 실존적 영성의 문제도 중시하고 사회적 모순의 해결에도 관심을 가지는 차원으로 성숙한 입지를 가지게 되었다고 하겠다. 따라서 해방신학의 내용도 단일하게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의 현재적 상태도 과거의 이해와는 매우 달라졌고 신학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나름의 역사적 공헌이 있다는 점에서 세계 신학계에서는 지속적인 연구대상으로 존재하고 있다.  

자, 그러면 이 기획이 해방신학적 관점에서 쓰인 것인가? 그렇다와 아니다가 공존한다. "그렇다"는 측면은, 한국교회가 기득권 질서와 결탁하여 사회적 억압과 정치적 폭력, 그리고 경제적 빈곤의 모순에 대하여 외면해왔다는 점에서이고, "아니다"의 측면은 이 문제의 해결이 해방신학이 요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폭력을 수반하기 마련인 사회 혁명적 방식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하나님의 생명의 영이 충만해질 때에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그 생명의 영은 고난에 민감하며, 하나님의 의에 충실하고 사랑의 용기가 그득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영에 사로잡혀 자라는 사람은 인간의 고난에 마음 아파하면서 그 고난을 자신의 것처럼 여기고 인간실존에 따뜻하게 다가가는 법이다. 한국교회는 바로 그러한 영의 사람을 길러내는 것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신앙을 동기부여의 근거로 삼아 신분상승에 관심을 두는 이들을 길러내는 것에 힘을 쏟았다는 점에서 우리는 자기비판에 치열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해방신학적 관점은 편협한가의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는 김선호 님과 마찬가지로 편협하다고 결론짓는다. 해방신학은 인간의 실존적 차원을 담아내는데 역부족이며, 생명의 영과 관련한 신학적 이해에 한계를 드러낸다. 사실, 신학이란 그 어떤 신학이든 모두 시대적 소산이라는 점에서 관점상의 편협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신학이 주목하지 않거나 직면하지 않은 문제에 있어서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신학은 현실과 신앙의 접목지점에서 새로운 해석과 설명의 요구로 태어나며, 그로써 그 시대의 고뇌를 풀어나가는 중대한 논의의 기반을 마련해준다. 그런 점에서 역시 루터와 칼빈의 신학도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김선호 님은 필자가 "루터와 칼빈이 그때 당시의 기득권 세력과 손을 잡고서 가난한 민중들의 아우성을 짓밟았다면서 그들의 종교개혁가로서의 전체 업적을 도외시했다. 그들이 마치 정치적인 책략을 깔고서 그들의 지식으로 기득권 세력에게 봉사했던 것처럼 매도하는 것은 계급투쟁적 사관(史觀)에서 나오는 침소봉대적(針小棒大的) 종교개혁사의 이해이다. 이 기자의 이러 지적을 종교개혁사학회에 한번 개진해보라. 맑스의 학동(學童)이 하는 순진한 객담으로 알 것이다. 루터와 칼빈이 교회사 전반과 지성사에 던진 충격은 경천동지할 사건인 것이다. '오직, 성경으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저들의 엄청난 업적을 등한시하고 (오늘날의 가치기준인) 민중해방에 기여하지 못했다고 해서 저들을 기득권에 아부하고 예수정신을 구현하지 못한 자들로 매도하는 것은 루터와 칼빈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필자가 쓴 원문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보자.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존 칼빈의 기록에 의해 완성될 수 있었다는 주장은 종교개혁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이해가 빈약한데서 발생하는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종교개혁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틴 루터는 아주 뜨거운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혁명가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틴 루터만 있었더라면 혁명, 이 종교개혁은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록이 없기 때문에.. .존 칼빈. 생기기도 아주 깐깐하게 생긴 사람인데, 이 사람은 앉아 가지고 용의주도하게 종교개혁의 사상들을 정리했습니다. 그게 <기독교 강요> 아닙니까? 결국은 정리하고 기록하고 책 쓰는 사람에게 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사에서 이 두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며, 존 칼빈의 신학적 논리가 종교개혁의 이론적 지주가 된 것 또한 분명하다. 그러나 바로 이 존 칼빈의 권위주의적 신학체계가 종교개혁의 불길이 민중적 차원에서 새롭게 생명력을 얻으려는 상황을 질식시켰다는 점을 안다면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당대의 농민들이 봉건체제의 억압에서 신음하고 있는 현실을 결국 외면하고 신흥군주와 결탁함으로써 갈수록 개혁성을 상실해갔고, 존 칼빈에 이르면 신흥 중산계급의 지배체제를 새롭게 구성하기 위한 정치철학적 기반이 되어갔다는 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는 종교개혁사의 과정을 조금만 깊이 공부해보면 누구나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여기서 '기록된 지식'이 한 역할을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그 기록된 지식은 기록되지 못한 지식보다 못한가? 아니다. 기록성 여부로 그 지식의 수준과 성격이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 자체의 목적과 성격, 그리고 내용 자체로 우리는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마틴 루터나 존 칼빈이 카톨릭의 억압적 위계질서에 항거한 시점에서는 그들의 지식과 신학은 개혁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당대의 신흥 정치경제 지배세력과 손을 잡으면서부터는 개혁성 보다는 또 하나의 억압적인 체계를 지향하기 시작했고, 봉건적 질곡 속에 있던 가난한 농민들의 아우성을 짓밟는 일을 정당화하는 일에 앞장서고 말았던 것이다.

종교개혁과 관련해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역사적 지식은 따라서 나사렛 예수께서 선포하셨듯이 가난한 민중들의 삶에 하나님 나라의 정의가 이루어지기보다는, 성서의 본래적 정신이 이렇게 새로운 기득권 세력의 이념적 도구로 변질되어간 과정에 대한 파악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만이 우리의 지식이 올바른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기준과 내용으로 채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지식은 많으나 불의한 기득권 세력과 기존질서에 봉사하는 결과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전병욱 목사는 바로 이 불의한 기득권 세력이 해석해온 역사관에 물들어 나사렛 예수의 제자로서 지향해야 할 지식의 성격에 대하여 분명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지식의 문제를 논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역사관이 우리가 앞서 비판하고 강조했던 그의 성공주의, 승리주의의 논리를 낳고 있음을 분명히 봐야 할 것이다.

중간에 "종교개혁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틴 루터는...."이하 인용된 문장은 전병욱 목사의 글이다.  

필자가 쓴 글의 원문에서 마틴 루터와 존 칼빈이 주도한 종교개혁, 즉 당대의 카톨릭의 억압적 위계질서에 항거하는 차원의 개혁성을 부인한 바 없다. 이들은 단연코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주도자들이며, 그로써 서구 기독교사의 중추적 인물로 기록된다.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그들의 개혁성이라는 것은 반 카톨릭 개혁운동의 차원에서는 성공했고 의미를 가졌으나, 당시 중세사회의 기본적인 질곡을 푸는 일에는 도리어 수구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 있다. 이들과 비견되는 인물이 바로 토마스 뮌쩌이다. 비록 현실에서 패배했으나, 농민들의 고통을 가슴아파하며 이들의 삶에 대하여 역사적 예수의 실존을 부각시켰던 토마스 뮌쩌에 대한 이해없이 서구 종교개혁사의 역동적 흐름을 파악할 수 없다.

또한 마틴 루터를 지지했던 신흥군주들의 폭압에 신음하던 농민들의 아우성에 보다 철저한 종교적 개혁성으로 화답했던 그의 신학을 배제하고 마틴 루터와 존 칼빈의 개혁주의만 지상으로 받들어 모시는 것은 역사의 이해가 편향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일이다. 마틴 루터가 자신의 신학적 입지를 지원해준 신흥군주들의 정치적 보호에 기대어, 이들에게 항거했던 농민들의 비참한 현실을 외면했던 것은 종교사의 명백한 사실(史實)이다. 이는 김선호 님이 주장하듯 "오늘날의 가치인 민중해방의 기준"에서가 아니라, 이미 모세의 '노예해방'이라는 구약사의 핵심적 사건의 차원에서 볼 때에도 그 개혁성의 성서적 기준에 미달하는 것이다.  

우리의 종교개혁사에 대한 이해와 파악이 마틴 루터와 존 칼빈에 머물러 있게 될 경우, 우리는 그 종교개혁운동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서는 알 수 있으나, 그것을 오늘의 현실 속에서 새로운 차원으로 전개시켜나가는데 있어서는 한계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당대의 인물이었던 토마스 뮌쩌는 이들 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개혁적 변화를 추구했다는 점을 보아도, 이러한 비판은 오늘의 시점에서 과거를 비판하는 시점 오류가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다. (이런 이야기를 첨부하는 것은 마음이 내키지 않으나 김선호 님이 필자의 신학적 작업에 대한 의구심을 풀기 위해 한 마디 해두자면, 루터의 저작과 존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차분히 완독하기를 요구했는데, 이 기획을 담당하는 팀 구성원 가운데 대표집필자인 필자는 이 책들을 이미 대학원 시절에 치밀하게 독파해낸 바 있으며 이들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한계에 대하여 서구 신학계에서 이미 오래 전 정리가 끝났다는 점 또한 알고 있다는 점을 명기해두고 싶다. 그 한계란 이들이 교회의 문제에 매몰된 나머지 교회가 서야 할 현실의 자리에는 신학적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들의 신학을 거의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한국교회가 온 사회가 허물어져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치리와 교회부흥에만 매달리는 신학적 까닭이 다른 데 있지 않음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4. 인문학적 기초를 잘 닦으라는 이야기와 관련하여

김선호 님은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볼 때에 이 기자는 인문학의 A, B, C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이 기자는 루터와 칼빈을 20세기의 인물로 착각하는 것 같다. 저들이 맑스와 레닌과 모택동 이후의 인물인 줄로 알고 있다. 루터와 칼빈에게 인민해방적 가치관을 요구하는 넌센스를 보인다. 그렇다면 다윗에게도 민주정치의 이상을 요구해야 하고 종을 거느렸던 아브라함에게도 노예해방의 가치관을 요구해야 한다... 이 기자는 오늘날의 이데올로기(민중해방의 신학)를 준거틀로 삼아 5백년전의 루터와 칼빈을 난도질하는 인문학의 초보도 모르는 일을 감행했다." 루터와 칼빈에게 인민해방적 가치관을 요구하는 것은 시대적 상황에서 말이 되지 않으며, 이것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는다고 해서 이들을 비판하는 것은 결국 오늘의 시점에서 과거를 비판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앞서의 글에서 밝힌 바 있으나,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해보자. 루터와 칼빈에게 민중해방적 개혁성을 요구한 것은 지금의 시대를 사는 필자가 아니라, 당대의 농민들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들은 자신의 절박한 삶의 요구로 루터 등이 억압적인 중세봉건체제의 질곡에 대해서도 발언해주기를 기대했고, 루터는 처음에는 이들의 입장에 동조했었다. 농민들의 저항은 사실상 루터의 종교개혁에 힘입은 바 크다. 이들 농민들은 권위주의적 질서에 대하여 용기 있게 항거할 수 있는 자유를 종교개혁의 정신에서 발견했고, 그로써 자신들의 생존의 권리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진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카톨릭 교회의 탄압에 쫓기던 그는 신흥군주들의 정치적 지원이 필요해지자, 초기의 자신의 입장을 철회하고 신흥군주들에 의한 농민들에 대한 폭력적 진압을 옹호하고 이들의 집이 불타고 처참하게 살육 당하는 현실 앞에서 신흥군주들의 권력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애초에 농민들의 열화와도 같았던 루터에 대한 지지는 반감과 환멸로 바뀌게 되었고, 그 공백 속에서 토마스 뮌쩌가 개혁의 철저한 추진을 강조하면서 종교개혁사에 또 하나의 물꼬를 텄던 것이다. 그리고 토마스 뮌쩌가 근거를 둔 성서적 준거틀은 다름 아닌 애굽의 압제에서 신음하고 있던 히브리 백성들의 노예해방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루터와 칼빈의 역사적 한계를 지적하는 일은 이들을 결코 마르크스(마르크스는 19세기 인물)나 레닌 또는 모택동과 같은 20세기의 인물이나 그후의 인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 입증된다.  

한편, 김선호 님이 지적한 다윗은 군주체제의 인물이었지만, 사울 왕정의 압제와 핍박에 시달렸던 온갖 사연을 가진 민중들이 모여든 아둘람 굴에서 혁명의 근거지를 만들고 이를 기초로 하여 새로운 체제를 성립시킨다. 그러나 그의 체제가 점점 권위주의적 체제가 되고 민중들의 삶과는 관련이 없는 상태로 가면서 자신과 자식들, 그리고 자식들 간의 처절한 권력투쟁의 비극을 경험하는 말년의 불운에 처한다. 다윗의 뒤를 이은 솔로몬 체제는 골육상쟁의 권력투쟁과 제국건설을 목표로 한 화려한 궁성건축에 몰두하면서 국력을 소진하다가 결국 무너지고 마는 처지에 이르게 된다.  

이 다윗과 솔로몬 체제의 교훈은 하나님의 의로 시작한 체제가 기득권에 사로잡히면 어떻게 될 것인가이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이 요구하는 의의 개혁성을 상실한 결과에 직면했던 이스라엘 왕조가 이후 분열되고 강대국의 식민지로 전락하며 노예생활을 하게 된 것은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다윗-솔로몬 왕조의 문제는 민주주의와 군주체제의 대립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포기해버린 정치적 기득권 질서의 문제이다. 민주주의 체제라고 할 지라도 그 체제가 하나님의 의를 포기해버리면, 그 의가 살아있는 군주체제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고대 노예제 사회의 족장이다. 그러한 그에게 성서는 노예해방적 역할을 요구하지 않는다. 당시 아브라함에게 절박했던 문제는 그가 국가적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이방인 유랑자 출신이었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이러한 유랑자적 존재에서부터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땅에 뿌리박은 삶을 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느날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똑똑히 알고 있거라. 너의 자손이 다른 나라에서 나그네 살이를 하다가, 마침내 종이 되어서 사백년 동안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의 자손을 종살이하게 한 나라를, 내가 반드시 벌할 것이며 그 다음에 너의 자손이 재물을 많이 가지고 나올 것이다."

그 시점에서 이 이해하기 어려운 예언은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하는 애굽의 노예생활이며, 하나님은 바로 이 노예해방의 과정에서 놀라운 역사를 펼치실 것이라는 비전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신앙전통 속에는 이미 노예해방의 하나님 사건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창세기의 기록이 바로 이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에 노예로 끌려갔을 때에 이루어진 고백의 정리라는 점은, 하나님이 노예된 자들과 하나의 마음이 되어서 이들의 고난을 종식시키고 사람다운 삶의 아름다움을 주시려 했다는 점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인간을 노예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노예로 삼으려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유인으로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이다. 해서 하나님은 애굽의 노예된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주도하셨고, 예수께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할 것"이라면서 한번 맨 멍에를 다시는 매지 말라고 하셨다. 부당한 현실에 의해 노예된 모든 이들에게 기독교 신앙이 자유의 기쁨과 의지를 부여하는 까닭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께서 억울하게 포로된 자들을 풀어내시는 자유와 은총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이 아닌가? 인간의 노예적 현실로부터의 해방은 마르크스나 레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루어진 역사적 사고가 아니라, 하나님 본래의 의도에서 출발한 염원인 것이다.  


5. 어떤 작품을 전체의 흐름의 토대 아래서만 인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에 대하여

김선호 님은 전병욱 목사의 작품 인용과정에서 생기는 문제, 즉 전체적인 흐름과는 상관없이 설교자의 필요에 따른 이른바 '독자비평'적 관점에서의 선택을 이렇게 옹호하고 있다. "이성규 기자는 전병욱 목사가 <꿈>에서 레미제라블과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파편적으로 인용하여 예화로 써먹는 우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전체 작품의 의도를 전병욱 목사가 간과하는 무식함을 보였다고 지적하면서 이 기자의 페이퍼 냄새를 자랑하듯 말했다. 나도 이 기자가 작품을 잘 이해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그러나 이 기자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우를 범했다. 현대 문학비평에서도 독자비평은 엄존하고 있다. 어떤 작품이 발표되고 나면 독자의 것인 측면이 있다. 물론 전병욱 목사가 이런 측면을 생각했을 수도 있고, 안 했을 수도 있다. 정확히는 전병욱 목사가 설교적인 편의성에서 자기 설교취지에 도움이 되도록 작품을 끌어당겨 써먹었다고 생각해야 맞을 것이다... 전병욱 목사가 자기설교를 뒷받침하는 예화적인 목적으로 특정작품을 부분적으로 인용하여 써먹는 것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작품을 일이관지(一以貫之)하게 철저하게 알아야 예화로 써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목사가 설교를 하면서 한 영화의 전체적인 의미를 말하지 않고 단편적인 장면만 인용해서 얼마든지 자기 설교에 써먹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 기자는 설교를 논문으로 착각해서는 아니 된다. 설교는 엄밀한 과학이 아니다."

우선 첫째, 설교자는 설교적 편의, 즉 설교 메시지에 부합하는 예를 인용하기 위해 어떤 작품의 전체적인 내용을 모두 거론할 필요가 없고, 부분적인 대목을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 전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설교에 목적이 있는 것이지 인용대상이 된 작품 분석과 그 전체적 내용해설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김선호 님이 언급하고 있는 독자비평이란, 독자의 관점에서 작품을 분해하고 해석하는 작업을 의미한다면, 그 비평은 그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오해는 최소한 피한다는 전제에서 성립이 가능한 것이다. 작가는 A라고 이야기했는데, 독자는 아니다, B라고 이야기했다면서 B에 관해 계속 비평한다면 그것은 작가의 작품 A에 대한 비평이 아니라 전혀 다른,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은 B에 대한 비평이 되고 만다. 만일 필자가 김선호 님의 이야기에서 이 기획기사의 편의성을 목적으로 하고 독자비평을 내세워, 김선호 님이 하지도 않은 이야기 또는 김선호 님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방식으로 어떤 대목을 뽑아 이야기를 전개한다면 그것은 부당한 비평이 될 것이다.  

독자비평의 근거는 독법(讀法)의 정확성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자세는 성서를 기준으로 설교를 해야 하는 설교자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의식되어야 하는 독법이다. 즉 성서해석에 있어서 exegesis는 무엇보다도 비평 이전에 텍스트 자체의 육성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는 것을 훈련의 근본으로 삼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전병욱 목사의 독법은 자신의 생각과 작품 자체를 환치시켜 작품과는 아무 상관없는 내용을 인용이라는 방식으로 처리해 자신의 생각을 지원하는데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필자의 원문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중복의 번거로움이 있긴 하지만, 일단 재검토해보자.

"빅톨 위고의 <레미제라블>은 빵 하나를 훔친 죄로 중형을 살아야 했던 봉건적 정치경제 구조에 묶였던 혁명 이전의 프랑스 사회의 비인간적 현실을 고발한 작품이다. 장발장은 바로 이러한 정의롭지 못한 구조에 희생된 인물이었고, 자베르 경감은 이 억압적인 체제의 하수인으로 등장하여 그러한 전근대적 불의를 정의라고 착각한 존재를 보여주고 있다. 장발장은 그 억압의 처절한 현실에서 희생되어 사회적 복수를 결의할 수 있는 조건에 놓여 있었으나, 인간의 문제, 역사의 문제는 그렇게 해결될 수 없음을 촛대를 훔쳤다가 그를 보호해준 신부의 말없는 일깨움 속에서 엄청난 인간적 변화의 실마리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는 가난하고 약한 이웃을 위해 자신을 헌신적으로 나누며 사는 존재로 성숙해간다. 이후 자베르 경감의 자살은 자신이 추구해온 것이 실상은 거짓 정의였으며, 그가 죄인으로 보아온 장발장의 삶과 인간 속에서 자신의 삶이 도리어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절감한 결과였다.  

프랑스 혁명의 역사적 현실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빅톨 위고는 혁명의 논리로도 인간의 존엄성을 해칠 수 없으며, 인간적 위대함이 보다 위대한 혁명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깨우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이 불굴의 고전이 될 수 있는 저력이며 따라서 자베르 경감의 정의란 사실 전근대적 체제의 억압이 위장된 것이었으며 이러한 위장된 정의로 인간이 얼마나 끔찍하게 희생될 수 있는가를 빅톨 위고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자, 그런데 전병욱 목사는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세계관, 즉 하나는 은혜의 세계관이며 다른 하나는 정의의 세계관"으로서 정의는 선하긴 하지만 인간을 근본에서 변화시키지 못한다면서 "자베르 경감은 정의의 원리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고 언급한다. 자베르 경감은 정의의 원리가 아니라, 빵 하나 훔친 것 이상의 죄를 짓고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억압하는 지배층들의 하수인이 자기도 모르게 된 자라는 점을 우리는 주시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그는 자살이라는 선택으로 자신의 삶이 진 빚을 갚으려 했던 것이다. 전병욱 목사의 고전읽기 실력은 이러한 점에서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가 과연 작품이나 제대로 읽고 말하는 것인지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알렉산드리아 뒤마의 <몬테크리스트 백작>과 관련한 언급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몬테크리스트 백작은 암굴왕이라는 제목으로 소년소녀들이 읽기에 좋게 각색되기도 했는데, 그 주제는 전병욱 목사가 말하고 있듯이, 주인공 에드몬드 단테스가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자들을 오랜 수형생활의 탈옥 이후 차례차례 복수하는 것으로 "권선징악"을 이루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의 청춘을 파괴하고 그의 사랑마저 붕괴시켰던 존재들을 향해 복수의 칼을 날렸지만, 그것이 그의 삶을 되찾게 해준 것도 아니며 그 복수의 인연 사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애정과 혈연의 인연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인간현실 앞에서 결국 모든 욕심과 원한을 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으로 그의 작품은 끝난다. 바로 여기에 뒤마의, 작가로서의 위대성이 있는 것이며 그 작품이 고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에드몬드 단테스는 사랑 앞에서 모든 복수의 끈을 놓아버리고 무릎을 꿇는다. 이만큼 성서적 주제를 훌륭하게 다룬 작품이 있을까 싶을 내용을 그는 그의 무지로 권선징악 수준으로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전병욱 목사가 유독 청년들에게 공부를 강조하는데, 그 자신 고전에 대한 공부를 다시 할 수 있으면 한다."  

전병욱 목사가 그의 설교적 편의를 위해 부분을 인용하는 것은 그의 자유이며, 그의 설교구상에 따른 문제이다. 그러나 당대의 불의한 구조의 하수인으로 살다가 장발장의 훌륭한 삶 앞에서 결국 자신의 삶이 거쳐온 위선과 허위 앞에서 자살을 택한 자베르 경감이라는 인물을 정의의 원리로 똘똘 뭉친 인물이라고 규정하거나, 또는 복수심에 불타 있다가 사랑의 힘 앞에서 이 모든 원한의 끈을 놓고 새로운 삶을 결단한 에드몬드 단테스라는 인물을 복수를 통해 권선징악을 하는 자로만 규정하는 것은 그의 다른 인간이해도 이럴까 싶어 걱정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전병욱 목사가 <레미제라블>이나 <몬테크리스트 백작>의 부분적 장면을 인용한 것도 더더구나 아니다. 그는 두 작품의 주요인물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를 통해서 자신의 설교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설교적 편의를 위한 작품의 부분적 인용의 경우에 우리가 취해야 할 바는, 자신의 인용이 정확한 독법에 근거를 둔 것인가 정도는 점검할 필요를 느끼는 자세일 것이다. 설교를 하는 작업은 실로 어렵다. 그리고 이 설교에 살과 뼈를 붙이고 세우는 과정에서 문학이든 영화이든 작품을 인용하고 성경의 문맥과 결합시켜 재해석해내는 작업은 정밀한 인문학적 소양의 육성이 전제된다는 점에서 진지하고도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한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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