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와 자주 만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쿠바에 가본 적도 없고 무슨 혁명인가를 하러 다닌 일도 없지만 묘하게도 그의 이름과 우연히 맞닥뜨리게 되는 일이 잦았습니다.

게바라를 처음 만난 건 남미의 민주화운동을 다룬 몇 권의 책들에서였습니다. 어느 나라의 경우를 다루든지 그에 관한 언급이 빠지지 않는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책 속에서 만난 그는 게릴라전의 귀재로, 가끔은 탁월한 전술가나 직업 혁명가로, 또는 실패한 행정가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와의 관계가 비교적 원만했던 편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그랬습니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그가 5년 전 갑자기 다시 찾아왔습니다. 엉뚱하게도 당시에 근무하던 조그만 잡지사 후배 기자의 입을 통해서였습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째깐' 잡지사에서 '기자님'을 모신다는 게 좀 힘든 일이 아닙니다. 능력이 뛰어난 분은 낮은 급여에 고개를 흔들고, 급여에 연연하지 않는 후덕한 분들은 업무 추진력에 다소 문제가 있기 십상입니다. 후배 기자는 급여 수준에 무관심하면서도 취재와 기사 작성 분야에 화려한 경력을 가진 그야말로 '최고급 인재'였습니다. 그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걸었었는지 말하자면 오히려 입이 아픕니다. 그랬기에 그 후배가 던진 질문 "이 사람이 누구에요?"가 충격적으로 들렸는지도 모릅니다. 후배의 손에는 게바라의 얼굴이 표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어느 시사 주간지가 들려 있었습니다.

끈질긴 게바라는 작년에도 찾아와서 골탕을 먹이고 돌아갔습니다. 어느 잡지사에서 책을 한 권 선정해서 서평을 써달라기길래 <체 게바라 평전>을 골라주었더니 당장 '게재 불가' 통지가 왔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토대로 하며 점잖은 크리스천들을 독자층으로 삼는 잡지에 게바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취지였습니다.

물론, 누구나 예수님에 대해 알아야 하듯 게바라의 이름을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예수님의 송신 주파수와 게바라의 수신대가 서로 달라서 서로 어긋날 수 있다는 점도 모르지 않습니다. 크리스천이 아니었던 그가 주님의 메시지를 정확히 수신해서 자신의 삶과 철학에 반영하기를 기대한다는 건 애당초 무리입니다. 하

지만,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살라는 특명을 받고 사는 크리스천들로서는 아직 주님을 모르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방법을 파악하려는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서적 일변도의 독서 성향을 다양하게 바꾸는 것도 그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새들백교회의 사례를 본받아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고 삼박자 축복을 받는 일이 무척 중요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알아듣는 목소리로 복음을 전할 준비를 갖추는 일도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글쓴이:최종훈(도서출판 <좋은씨앗>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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