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만큼 대형화를 추구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모든 영역에서 거대화, 대형화, 고급화를 추구하고 있고, 그러한 관점과 잣대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 들고 있지 않은가? 한국 교계에 파고든 이러한 물량주의가 교회를 세속화시켰고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른 목회자보다 더 많은 교세를 가지고 더 큰 예배당을 가진 목회자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목회자보다 영적 권위가 더 있는 것으로 착각(?)을 불러 일으키고, 대형교회 교인은 개척교회 교인보다 알 수 없는 우월감(?)을 가지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현상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대형화된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절대적 잣대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제약시키고 제한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전 대구에서 대형으로 치뤄진 S선교단체의 중고등부 수련회는 기자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주최측 추산대로라면 1차 6,000여명, 2차 3,000여명 도합 1만여명의 청소년들이 모여 수련회를 가졌는데, 과연 이 많은 인원을 대상으로 소기의 목적을 실현시킬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1년에 많아야 2번, 적으면 1번 가지게 되는 여름수련회에 거는 개교회학교의 기대는 막대하다. 그러한 기대를 한 몸에 안고 교단 차원에서 치뤄진 이 대회는 그래서 더 뼈아픈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참가 학생 몇몇의 후문을 들어보면 주최측의 통제에 문제가 있어 다양하게 준비된 강좌에 불참한 학생들이 많았고, 참가자들의 열기나 참여도도 수년 전에 비해 낮았다고 한다. 어찌 보면 이같은 현상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이 시대의 청소년들에게 개인주의적 성향이 두드러진다는 것은 전문가뿐만 아니라 비전문가들도 내리는 평가다. 그러한 다양한 개성을 지닌 아이들을 한 곳에 모아 놓고-물론 수십가지 다양한 강좌로 나누어 놓았지만-수련회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심각하게 고려해 볼 문제라는 것이다. 오히려 소수의 인원으로 그들의 다양한 의견과 궁금점에 피드백(feed-back)을 가지고 진행되는 집중적이고 소규모 행사가 더 필요한 시대가 아니냐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대형화는 많은 '선데이 크리스천'을 양성해 교회의 세속화를 부채질한 바 있다. 교회교육에도 대형화, 물량주의는 재고되어야 한다. 오히려 적은 수와 낮은 곳을 지향하는 것이 이 시대 교회의 위기에 대한 현명한 대안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많은 고기를 잡기 위한 큰 그물코에는 한 마리도 잡히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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