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환아 중 부모 두 사람 다 말을 못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이들이 우리 병원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 작년 여름이니까 이제는 제법 친해졌습니다. 늘상 제 병원을 들락거리지만 아직은 한 마디도 말을 해보지는 못했습니다. 말을 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 아이가 오면 저는 메모지를 준비해 놓습니다.

종이에 볼펜으로 적으면서 필담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필담은 너무 느리고 답답합니다. 말을 한다는 것이 의사소통에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그 가족을 만날 때마다 느끼곤 합니다. 아이가 울고 답답하면 부모는 애-애-애- 하고 시늉을 합니다. 손을 입에서 뗐다 붙였다 하면 아이가 기침을 한다는 뜻이지요. 같은 동작을 조금 더 크게 하면 토한다는 뜻이구요. 물론 그것을 깨닿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한 동안 만나는 동안 이제는 몸짓으로 거의 말이 통하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가는 늦은 저녁에 아이의 어머니가 병원에 찾아 왔습니다. 간호원이 이날은 차트도 찾지 않고 그냥 "** 어머니께서 원장님에게 하실 말씀이 있는가 봐요" 하는 것입니다. 그날은 아이를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어디가 편찮은가 보다 하고 필담을 위해 메모지를 찾고 있는데, 어머니가 주머니 종이를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종이에는 "아이가 배가 아픈데 쌀이 없어요. 5만원만 빌려주세요. 26일날 갚을께요"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물론 평소와 같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5만원을 꺼내어 어머니에게 주었습니다. 어머니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병원을 나갔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동료의사와 약속이 있었습니다. 저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로 조금 전 저녁에 있었던 일에 대해 자랑을 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신뢰하고 힘들 때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된 일입니까.

"오늘 내가 개업한지 2년만에 가장 보람된 일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인가 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 이야기를 듣던 동료들은 금세 웃어버렸습니다. "하하, 아직도 그렇게 순진하다니..." 그러면서 개업을 하는 동안 자신들이 사기를 당했던 여러 가지 경험들을 들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별 일들이 다 있는가 봅니다.

저는 그날 저녁, 이제는 그럭저럭 40대에 접어드는 제가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일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많이 많이 배웠습니다.

며칠이 지나가고 26일이 되었습니다. 저는 기다렸습니다. 5만원이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저는 그 돈이 아까워서 그 날을 기다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친구들이 무어라고 말을 하든, 저는 그 부모들과의 사이에 5만원이라는 돈으로 깰 수 없는 신뢰와 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설사 그 부모님이 그 돈을 갚아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날 이후로는 다시는 우리 병원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분들과 맺었던 아름다운 추억을 5만원으로 더럽히긴 싫었습니다.

그날 점심 무렵 그 어머니는 병원에 왔습니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1만원짜리 넉 장과, 1천원짜리 10장을 내밀었습니다. 저는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어머니도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병원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1천원짜리가 정말 10장인지 세어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세어보지 않아도 이미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내내 저는 행복했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