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5가 기독교회관 건물.
ⓒ뉴스앤조이 자료사진
이른바 '새로운 연합'을 향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통합을 둘러싼 양 기구의 '로드맵'이 그 실체를 드러냈다. 기구통합을 위한 '단일안' 마련을 위한 '9일위원회'는 지난 8월 13일 연동교회당에서 모임을 갖고 양 기구의 '통합 로드맵'을 검토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교회협측이 제시한 기구통합의 로드맵이다. 이것을 골자는 양 기구의 교류와 협력사업을 펼쳐 나갈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 포럼'을 2004년까지 구성, 2008년까지 활동을 펼쳐 나가고, 2009년에는 이 활동에 대한 평가를 한 뒤 긍정적일 경우에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만 부정적일 경우에는 다시 새로운 단계를 설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긍정적일 경우 나아가게 되는 '다음 단계'는, 교회협과 한기총의 기구연합을 통해 분열된 교회들의 가시적 연합과 일치를 추진하는 것이다.

내용상 단순해 보이는 이 로드맵은 그러나, 몇 가지 복잡한 과정들을 포함하고 있다. 무엇보다 교회협과 한기총의 기구적 경계를 넘어서는 '지역교회 연합과 일치 포럼'을 구성하고, 이의 활성화를 통해 한국교화 연합과 일치운동의 하부구조를 강화한 뒤 이를 점차적으로 '지역교회협의회'로 전환시켜 나간다는 내용이 눈길을 끈다.

또한 '그동안 교회 내에서 다수를 차지하고도 사회 문화적 영향으로 차별을 받아 온 여성, 청년, 그리고 지역의 교회들이 함께 참여하는 일치운동이 추진돼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함으로써 일치운동이 중앙의 성직자 그룹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일치논의에 대한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로드맵이 상정하고 있는 2010년까지의 기간동안 열리는 각종 국제행사에 양 기구가 공동 대표단을 파송하고, 공동 대표단을 구성해 해외 교회를 방문하며, 최종적으로는 2010년에 열릴 예정인 애딘버러 세계선교협의회(IMC) 창립총회 100주년 기념 세계선교대회를 양 기구가 공동으로 한국에 유치하자는 제안도 포함돼 있다. 이는 해외 에큐메니칼 선교운동의 현장을 양 기구가 공동으로 체험해 보자는 의도를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로드맵의 내용이나 스케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원칙'이다. 교회협의 로드맵은, '세상을 향한 선교와 일치라는 에큐메니즘의 광의적 차원과 교회의 갱신과 일치라는 협의적 차원을 통전하는 것'을 로드맵의 기본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양 기구의 통합을 통헤 에큐메니칼운동이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에큐메니칼운동에 대한 공동의 이해와 비전을 발전시키면서 상호 균형을 이룬 의사결정 과정을 확립해 정치적 헤게모니론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연합 논의가 지닌 기구우선주의와 정치적 의도를 배격해야 한다는 의도로 해석힌다.

교회협의 로드맵은 한기총이 제시한 '죄책고백과 교류협력 → 한 지붕 두 가족 식의 통합기구 → 기구통합 완료' 방식에 비해 상당히 복잡할 뿐만 아니라 기간 역시 무척 길게 잡고 있다. 게다가 2009년에 일단 평가를 한 뒤 부정적일 경우는 아예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

(한기총의 통합안이 '포괄적 죄책고백'을 담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여기서 말하는 포괄적 죄책고백이란, 과거 일제시대의 신사참배를 비롯해서, 독재정권 시절 인권과 민주화를 외쳤던 진보진영을 정죄하고 비난한 일, 그리고 더 나아가 불의한 정권을 지지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한 일 등의 죄책을 고백하는 것을 말한다.진보와 보수의 연합에 있어서 결림돌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자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교회협의 로드맵에 대해 한기총을 비롯한 목회자협의회 등에서는 '너무 시간을 길게 잡고 있는 것이 사실상 연합을 하지 말자는 의도 아니냐'는 의혹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한 마디로 지나친 억지에 불과하다. 실제로 2002년 탄생한 미국의 연합교단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는 교회'(CUIC)는 1962년부터 시작된 '교회일치에 관한 협의회'(COCU)를 통한 무려 40년에 걸친 논의의 산물이다.

현존하는 여러 가지 차이들을 극복하고 실질적인 연합을 이루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양보가 필요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말 이상한 것은, 보수진영일수록 통합의 기간을 짧게 상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전 '뉴스앤조이'의 기사에서도 확인됐듯, 보수진영 인사들이 교회협에 대해 제기하는 문제는 하나같이 '너무 진보적이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적이어서 문제가 있는 기구와 연합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아마도 그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연합 논의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조차 없는 무지의 소치이거나, 일단 기구부터 만들어 수적 우위를 통해 진보를 제압하자'는 음모적 의도를 가지고 있거나...

교회협이 제시한 로드맵이 완전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보수와 진보 사이의 신학적 격차를 해소하는 문제라든지, 현실적으로 예전 등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성공회 등 주교좌 교회들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포함되지 않은 것 등은 앞으로 보완해야 할 문제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협의 로드맵은 이제까지 논의돼 오던 새로운 연합 논의의 문제점을 상당부분 극복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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