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개혁교회(담임:윤은한 목사)의 수련회가 2박3일간 제주도에서 있었다. 대구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광주의 성도들과 제3의 지역에서 만나 아름다운 교제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자 커다란 기쁨이었다.

지난 늦봄, 광주의 여러 성도들이 내가 목회하고 있는 팔공산까지 먼길을 달려와 교제를 나눈 적이 있었던 터라 형제 자매들 중 다수는 이미 낯이 익었고 처음 만나는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진리를 추구하고자 애쓰는 그들의 신앙 자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들이 수련회 기간 동안 읽고 토론하기 위해 준비한 어렵고 방대한 자료들을 보면서 엄격하고 빠듯한 수련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련회 중 효과적인 공부를 위해 사전에 이미 어느 정도공부가 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교회지도자들의 깊은 배려를 이해할 수 있었다.

둘째 날의 계획 가운데는 한라산 등반이 있었다. 한라산 동편의 성판악 코스를 잡아 등산한다고 누군가 일러주었다. 수련회 장소를 출발해 산아래 출발지점에 모였을 때 약 서른명의 인원 중 어린아이들이 여럿 되는 것을 보고, 과연 1950미터나 되는 남한 최고봉을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염려부터 생겼다.

이제 겨우 다섯 살 되는 아이와 여섯 살 짜리 아이가 등산대원들 중 가장 어린 아이들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그 꼬마들에 비하면 염려할 대상이 아니었다. 나는 속으로 ‘올라가는데 까지 가다가 되돌아오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성판악 출발지점에서 한라산 정상까지는 약 10Km가 된다고 한다. 왕복이면 20Km가 된다.

그 때 얼른 내 머리 속에 스쳐간 것은 나의 어린 시절이었다. 20Km라면 내가 어릴 때 살던 고향 마을에서 외갓집까지 가는 거리 보다 10리나 더 먼거리이다. 나의 고향 경북 의성군 비안면 화신리에서 외갓집이 있는 의성읍까지는 16Km인 40리 길이었다.

나는 그 먼길을 한번도 걸어가 본적이 없으며, 외가에 갈 때는 시골길을 10리 정도 걸어 나와 흙먼지가 뿌연 시골 찻길에서 한참 기다린 후에 지나가는 버스를 타고 면소재지까지 나와 다시 외갓집 마을까지 가곤 했다. 20Km라면 그 전체 길 보다 무려 10리나 더 먼거리이며 더구나 이번 등산길은 험하고 가파른 산길이다.

8월 중순이면 한여름이다. 그러나 우리가 등산하던 날 한라산의 기후는 그렇지 않았다. 비가 오락가락했으며 날이 맑아지는가 하면 갑자기 짙은 안개가 끼기도 했다. 그 길을 어린이들이 따라 나서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싶었다. 나는 산을 올라가며 아이들의 눈치를 끊임없이 살폈다.

나만 아니라 그 부모들은 물론 모든 어른들이 그랬을 것이다. 거의 다섯시간에 걸친 등산길에 그 아이들의 부모는 이제 그만 올라가고 내려가자고 말하기도 했지만 도리어 아이들이 끝가지 가겠단다. 물론 힘든 길에서는 어른들이 그 아이들을 잠깐씩 업어주기도 하고 구슬리기도 했으며 아이들의 손을 잡아 이끌어 주기도 했다. 초등학교 1, 2 학년 어린이들은 아무런 도움없이 완전히 어른처럼 등산했다.

다섯 시간 가까이 등산한 후 산 정상에 이르렀을 때는 거의 겨울 날씨였다. 사람들은 긴옷에다 비옷까지 걸쳤다. 미처 긴 옷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입술이 파래서 서둘러 내려가는 모습도 보였다.

잔뜩 흐린 날씨에다 짙은 안개비는 정상에 오른 모든 사람들이 기어이 보고야 말겠다는 백록담을 결코 보여주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심술을 부리는 듯 했다. 그러다 안개를 쫓는 듯한 바람으로 인해 잠깐 희미하게 백록담이 보인다 싶으면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런데 그 사이에 우리의 아이들이 끼어있다. 어른들 틈에 끼어 사진도 찍고 어른들이 백록담을 보고 싶어 고개를 내밀면 저들도 그 틈에서 어른들을 그대로 따라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 떠들며 정상을 정복했다는 아마추어의 속내를 감추지 않고 떠들어대다가 산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내려오는 길 역시 올라 갈 때와 그다지 다르지 않게 힘들었다. 산 중턱쯤 내려오니까 어른인 나도 매우 힘들었다. 올라갈 때는 숨이 가빠서 힘들었는데 내려 갈 때는 숨은 차지 않는데 다리가 아파서 힘들었다. 그러다가 다섯 살 짜리 꼬마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힘내라고 하며 돌이 가득한 산길을 내려왔다.    

거의 아홉 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출발지에 다시 돌아오니 나로서는 한계에 이를 만큼 다리와 발이 아팠다. 한 쪽에 앉아 다섯 살짜리 꼬마와 여섯 살 짜리 꼬마의 눈치를 살피니 차라리 나보다 나은 것 같아 보였다. 그렇게 해서 그 멋있는 산행은 막을 내렸다.

그렇지만 그 날 밤 나는 계속 다리와 발을 문지르며 마사지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걸어보니 그런데로 걸을만 했다. 다리가 뭉치고 종아리가 아팠지만 그래도 걸을만하니 그래도 지난밤 시간을 투자해 주무르고 마사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흐뭇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 다음날 오전에는 아침 일찍 내가 특강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모두들 잘 일어났을까 하는 생각에서부터 다리를 충분히 주물러 주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은 제대로 걷지도 못할 것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힘이 많이 들면 강의 시간에 졸거나 힘들어 할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전날 등산할 때는 몰랐지만 하루 밤 자고 일어난 어린이들은 옴짝달싹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의 생각은 이번에도 완전히 빗나갔다. 어른들이나 어린이들 중에 내가 염려하듯이 힘들어 보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의 시간에도 졸거나 힘들어하는 성도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모두들 나만큼 열심히 다리를 주무르고 충분히 마사지를 했다는 말인가?  

나는 이번 한라산 등산을 통해 남한의 최고봉을 올랐다는 의미보다 더욱 소중한 교훈을 얻은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 그것은 첫째, 어린이들이 어른들 보다 못할 것이란 무조건적인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며 둘째, 그렇다고 해서 어린이들끼리 한라산과 같은 높은 산을 등산하게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교회 가운데서 아이들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가? 어린이들은 성경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란 막연한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성경은 어린 아이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책일 것이라는 어른들의 단정적 판단은 잘못된 것이다.

나는 이번 한라산 등산을 통해 어린이들이 어른들 못지않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교회를 통해 어린 아이들이 도리어 어른들 못지않게 성경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음을 보아왔으나 한라산 등산을 통해 이제 그 교훈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것이다.

어린이들이 한라산 등산을 하며, 어른들처럼 많은 지식을 가지고 전반적으로 풍부한 경험을 하지는 못했을지 모르지만, 저들의 능력 자체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어린이들끼리 높은 산을 등산하도록 할 수는 없으며, 어른들의 보호와 도움이 필요하듯이 말씀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건전한 교회 생활을 위해서는 역시 성숙한 어른들의 동반이 필요한 것이다.

이번 여름 귀중한 시간을 함께 보내도록 배려해 준 광주개혁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아직 교회가 설립된 지 얼마되지 않지만 말씀을 바탕으로 하여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가길 바란다.

이번 한라산 등산을 통해 어린 아이들의 능력을 확인했듯이 연령적으로 보아 아직 어리지만 튼튼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감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의 도구가 되는 아름다운 광주개혁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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