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예산처 앞에서 장애인 관련 예산 삭감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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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이동권·교육권 관련 예산 삭감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 장애인교육권연대, 전학투위 민중연대 현장실천단 '희망 2003' 회원들은 8월 14일 오후 서울 반포동에 있는 기획예산처 앞에서 시위를 갖고 장애인 관련 예산 삭감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

5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땡볕을 받으며 기획예산처 앞에서 목소리를 높인 것은 최근 장애인 관련 예산이 대폭 혹은 전액 삭감되었기 때문. 교육인적자원부에서 기획예산처에 제출한 특수교육 관련 신규예산 272억은 현재의 예산 구조에서 지원할 수 없다는 핑계로 전액 삭감되었고 저상버스 도입을 위해 서울시가 신청한 40억 예산은 15억으로 25억 삭감되었다.

▲기획예산처 철문 앞에서 농성중인 장애인.ⓒ뉴스앤조이 양정지건

이날 시위에서 이동권연대 박현 조직국장은 "장애인의 이동권과 교육권을 경제성·효율의 논리로만 따지는 정부 시각에 분노를 느낀다"며 "참여를 말하던 노무현 정부가 사회복지 예산을 삭감하며 장애인을 내몰고 있다"고 외쳤다.

도경만 위원장(전교조 특수교육위원회)은 "정부가 장애인 유아들의 교육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것이 1994년인데 현재 24만 장애유아 중 교육을 받는 아이들은 겨우 5만이고, 대학생 나이의 장애인 중에 대학에 다니는 사람은 1.6%에 불과하다"며 "이렇게 열악한 교육 현실이 장애인이 노동 시장에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고 강조했다.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의 차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동권연대 박영희 공동대표(장애여성공감)는 이동권 투쟁을 하면서 겪은 일화를 소개했다. '버스 타기 투쟁'을 위해 버스에 오르던 박영희 공동대표를 보고 한 대학생이 던졌다는 "이건 장애인 타는 버스 아닌데요"라는 말이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의 차별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

박 공동대표는 "기획예산처가 선심을 쓰듯 15억을 배정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며 "우리도 비장애인처럼 이동의 자유를 누리겠다는 것을 예산을 삭감하며 막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가 낸 세금 중에서 우리들의 권리를 달라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희망 2003' 회원들과 전경들의 대치.ⓒ뉴스앤조이 양정지건

▲쇠사슬을 가운데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뉴스앤조이 양정지건

▲"이동권은 생존권이다."ⓒ뉴스앤조이 양정지건

▲철문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전경과 학생들.ⓒ뉴스앤조이 양정지건

시위 참가자들은 기획예산처 장관에게 면담신청서를 제출하고 장애인 예산 삭감에 대한 책임 있는 답변을 듣겠다며 기획예산처 안으로의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곧 수십 명의 전경들이 철문을 닫고 입구를 봉쇄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철문 앞에서 구호를 외치며 전경들과 대치했다. 이 과정에서 '희망 2003' 회원들과 전경 사이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대치 상태가 40분 정도 지속된 후, 이동권연대 공동대표 3인이 기획예산처 입장을 듣기 위해 청사로 진입했다. 그러나 건설교통예산과 앞에서 다시 실랑이가 벌어졌다. '내부 규정에 어긋나 이동권연대 대표들과 기획예산처 책임자 간의 면담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과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기자 출입을 허용하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기 때문이다.

▲비공개로 진행된 기획예산처와 이동권연대 공동대표단의 면담.ⓒ뉴스앤조이 양정지건

결국 한 시간 정도 이 문제로 복도에서 논쟁을 벌이다가 기자들을 제외한 채 3시 30분 경 김동환 경제예산심의관과 공동대표들 사이에 면담이 시작됐다. 20분 정도 진행된 면담에서 김동환 심의관은 계속해서 "저상버스 도입과 장애인 교육과 관련된 사업은 지방자치제의 일이지 중앙 관할이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권연대 공동대표단은 장관과의 면담 약속을 확정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확답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날 시위는 4시 30분 경 마무리되었다.    

장애인 이동권 교육권은 생존의 문제다

장애인의 이동의 문제는 생존의 문제이다. 생존의 문제마저 너무도 터무니없는 금액으로 삭감시켜 버린 기획예산처의 결정에 우리는 분노하며, 이 분노를 온몸으로 보여줄 것이다.

누구나 안전하고 편리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동할 권리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인 인권인 것이다. 특히 대중교통의 이용을 국가로부터 배제 당한 장애인에게는 더욱 더 절대적인 문제이다.

중증장애인이 이동하지 못하는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집에서 20년, 30년 지내야만 했던 현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그로 인해 장애인은 인간으로 살 기본적인 모든 권리로부터 단절되어 왔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는 이동하지 못하는 장애인을 집구석에 처박힐 수밖에 없게 만들어 놓았으며, 사회전체를 장애인에게 감옥으로 만들고 있다.

지난 2001년 오이도추락참사가 발생한 후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시청 앞 천막농성을 시작으로 ‘누구나 안전하고 편리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일반버스 노선에 저상버스 도입을 요구하였다. 장애인이동권확보를위한백만인서명운동, 지하철점거, 도로점거, 국가인권위원회 점거 39일 단식농성 등 피나는 투쟁을 통해 장애인이동권 문제의 심각성을 사회화시켰으며, 3년간의 투쟁 속에서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서울시와 건설교통부는 겨우 생색내기로 2004년도에 80대의 저상버스 도입을 공개적으로 약속을 하였다.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울시는 지방자치예산에서 절반을 감당하고 나머지 절반인 40억의 예산을 중앙정부차원에서의 예산지원을 건설교통부를 통해 기획예산처에 신청하였다. 하지만 기획예산처는 2차 심의에서 국방예산 증액 및 여러 가지를 핑계로 15억 예산 지원만을 확정하였다. 그리고, 적반하장으로 이전에 없었던 예산을 만든 것에 대하여 장애인여러분은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큰소리치고 있다. 이나마 어려운 국가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여 특별히 생각해서 세운 예산이라고 한다. 이 얼마나 가당찮은 정부의 오만함인가. 이 얼마나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치부하는 발상인가.

저상버스 도입을 위해 중앙정부는 15억을 지원한다고 한다. 그것은 서울지역에서만 15대의 저상버스를 도입할 수 있는 비용이다. 서울 이외의 지방자치단체는 전무한 것이다. 타 지방자치단체는 저상버스 도입에 대한 요구조차도 없었고, 중앙정부는 그것을 이유로 외면하였다. 참여정부라고 한다. 장애인의 차별을 금지하기 위해 차별금지를 목놓아 외치고 있는 참여정부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 정부는 사법부의 판결과 이번 기획예산처의 저상버스 도입예산삭감을 통해 얼마나 장애인의 권리가 그들에게는 하찮은 것인가를, 그리고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일방적으로 비장애인중심의 사회를 조직하고 유지하기 위한 것인가를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제출한 특수교육 관련 신규예산 272억 역시, 현재의 예산 구조에서 지원할 수 없다는 핑계로 전액 삭감해 버렸다. 50%가 넘는 장애인이 초등학교의 졸업 학력으로 존재하고 있고, 그나마 존재하는 특수교육조차도 통합교육의 이념을 실현하기는커녕 오히려 분리교육으로 일관한 채, 장애인을 철저히 사회적 편견과 차별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버린 것이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장애인 교육 정책이었다. 그나마 이를 개선하기 위해 통합 교육 기반 조성과 관련된 특수교육 신규 예산조차도 전액 삭감해 버리는 기획예산처는 과연 장애인 교육권에 대한 인식을 최소한이라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학력주의 사회에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다는 것은 노동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고 생존권을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없애겠다고 공약했던 노무현 정부의 지난 대선 전후의 태도는 온데간데 없이, 차별을 재생산하는 정책들로 일관되는 모습을 이번 기획예산처의 장애인 교육 관련 예! 산을 전액 삭감한 것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이번 기획예산처의 장애 관련 예산 삭감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기에는 너무나 턱없이 부족한 예산을 책정해 놓고 마치 큰 선심을 베푸는 것처럼 장애인을 우롱하는 작태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특수교육 관련 신규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마치 장애인은 교육받을 권리도 없는 존재로 매도해 버리는 기획예산처의 행동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요구

하나. 장애인이동권 외면하는 예산 책정 기만이다. 기획예산처는 각성하라!
하나. 저상버스 도입 예산삭감 즉각 철회하라!
하나. 특수교육관련 신규 예산 전액 삭감 즉각 철회하라!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 / 장애인교육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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