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서 흠씬 욕을 먹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나쁘다는 것을 더 이상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나쁘다는 소리 듣기도 지겨우니 어디 대안이 있으면 한번 내보아라.”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또 한 언론에서 글을 읽었습니다. “세간에는 아직도 신자유주의 극복이라는 말을 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다. 이미 신자유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길은 어떻게 하면 그 흐름에서 뒤떨어지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그 두 가지 소리를 가슴에 안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흠잡을 데 없는 적절한 지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동의할 수 없는 것. 그런 것이 신앙인에겐 종종 있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을 박해하던 이민족들이 던지던 야유의 말들. “어디 네 신이 너를 구원하는지 한번 지켜보자”라고 할 때도 신앙의 선배들은 현실적으로 진리였던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신앙의 전통이었습니다. 불가능함에 도전하는 것, 깨어짐으로 승리하는 것, 그것이 신앙입니다.

강대한 군대가 승리한다,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속적인 이치일 뿐입니다. 세속적인 이치로는 로켓을 달에 쏘아 보낼 수는 있어도, 여리고 성을 나팔로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신앙은 논리에 깃들지 아니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신자유주의는 바빌론과 앗수르와 로마처럼 강고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은 우리에게 반드시 새로운 희망을 주실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성이 불타고, 우리의 성전을 겁탈 당할지라도, 우리가 그 옛날 유대사람들처럼 그들의 신에게 고개 숙이지만 않는다면.

그러나 어떻게, 지금, 이 자리라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이 땅 위에 이루어지도록 할 수 있을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삶의 절박함에 몰릴 때마다 그렇게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 땅에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신의 빛나는 승리의 역사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내 머리는 둔하고 답답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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