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규 장로.

포지션(position)
오늘 김사규 장로님이 교육관 샤시문을 설치하러 오셨습니다. 김 장로님은 알미늄샤시문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을 갖고 계십니다. 그럭저럭 사업도 잘 되십니다. 그리고 장로님도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계시고 또 적성에도 맞는다고 하십니다. 언제나 일을 하실 때에는 복음성가 테이프를 틀어놓으시고 그 일을 즐겁게 하십니다.

나는 김 장로님이 작업하시는 걸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습니다. 작은 키에 파란색 쟈켓을 걸치고 또 까만 모자를 쓰시고 진지하게 자신의 일에 몰두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 보입니다.

장로님이 늘 쓰시는 까만 모자에는 영어로 포지션(position)이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습니다. 장로님이 그 모잘 사지는 않았을 것 같고 어디서 그 모자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장로님과 모자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장로님의 연세를 봐서는 요즘 신세대의 감각하고는 거리가 멀 것 같은데, 그래도 까만 모자에 포지션이라는 글자가 박힌 모자를 쓰신 모습은, 농약가게에서 얻어 ‘부자’라는 글자가 박힌 모자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신세대에 가깝고 세련된 모습으로 보입니다.

'포지션'이라는 말의 우리말은 '자리' '위치'라는 뜻이지요. 나는 김 장로님이 자기 자리를 잘 지키는 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실 자기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무단이탈하는 모습을 우리는 많이 보게 됩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자기가 지켜야 할 자리가 있지요. 농부는 농부대로, 장사꾼은 장사꾼대로, 군인은 군인대로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리가 있습니다.


또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에서 내가 지켜야 할 자리, 사회에서 내가 지켜야 할 자리, 교회에서 내가 지켜야 할 자리, 등등.  지금 내가 컴퓨터 자판 앞에 앉아 이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이 시간 지금 밖에서는 김 장로님이 망치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전기 드릴로 벽돌 구멍을 뚫는 소리도 들립니다.

포지션이라는 글자가 박힌 까만 모자를 쓰신 김 장로님은 서부시대 총잡이처럼 날렵하게 망치를 들었다 드릴을 들었다 하시면서 보기 좋게 문을 달아 놓으셨습니다.

“이제 목사님, 암만 바람이 불어도 끄떡 없겠시다!”

김 장로님은 자신이 만들어 세워놓은 문 앞에서 스스로 대견해 하십니다. 김 장로님은 문을 만드시는 분입니다. 또 문을 달아주시는 분입니다. 바라기는 김 장로님께서 그리움에 목말라하는 모든 이들의 가슴에도 따스한 햇살이 넉넉하게 스며들 수 있는 작은 창문을 만들어 주시는 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김 장로님께 깊은 찬사를 보냅니다. 까만 모자에도 행운이 있길 빕니다.

형님같은 장로님
김 장로님은 내게 형님같은 장로님이십니다. 체구는 작지만 매사에 꼼꼼하시고 무슨 일이든지 허투루 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너무 진지해서 어떤 때는 답답할 때도 있지만, 알고 보면 김 장로님의 살아온 방식이 그러했으므로 이해가 됩니다. 김 장로님은 우리 교회 선임 장로로서 40세에 장로가 되었으니 장로가 되신 지 꼭 20년째입니다. 20년 동안 김 장로님은 교회학교장, 재무부장, 선교부장, 성가대장, 남선교회장 모든 직분을 두루 거치셨습니다.


김 장로님 직업이 알루미늄샷시 전문이어서 교회를 돌보는 일에 매우 필요한 기술입니다. 마음이 여려서 눈물이 많으십니다. 군대 동기인 방현일 집사 증언에 의하면 군대에 나갔을 때 김 장로님 당신 키만한 소총을 들고, 고향이 그립고 어머니가 그리워서 툭하면 울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좀 덜하지만 주일 낮 회중 기도시간에 박 목사를 위해 기도하다 멈칫했다 하면 영락없이 마음에 감동이 와 우시는 것입니다. 내가 단상에 앉아 있기 때문에 잘 압니다. 김 장로님은 울보 장로님이십니다.

목소리는 타고난 미성이어서 예배시간에 독창을 하면 예배당이 쩌렁쩌렁할 정도로 성량이 풍부하여 사람들 마음에 큰 울림을 줍니다. 김 장로님께서 작년 이맘때 대장수술을 하셨습니다. 대장에 조그만 혹이 생겨서 이따금 하혈을 하곤 했는데 다행이 조기에 발견하여 수술로 완치할 수 있었습니다.

수술하던 날, 내가 MRA 촬영실에서 검사를 하고 계시는 김 장로님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드렸는데, 김 장로님이 침대에 누워 내 손을 꼭 잡으시고 “목사님, 고맙습니다”고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말씀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퇴원하고 돌아오셔서 심방예배를 드리는데 김 장로님께서 “하느님이 살려주신 인생, 이제 덤으로 사는 인생이니 주를 위해, 교회를 위해 열심히 충성 봉사하겠다”고 다짐하셨던 일도 기억이 납니다. 김 장로님은 설교도 잘 하십니다. 목회자가 되었으면 훌륭한 목회자가 되셨을 겁니다.

교회학교 어린이들이 김 장로님이 설교를 하시면 심하게 떠들고 장난하다가도 조용히 설교를 듣습니다. 기도은사를 받으셔서 기도도 은혜롭게 하십니다. 어떤 장소에서 기도를 하시든지 거기에 맞는 적절한 기도를 하셔서 김 장로님의 기도에 은혜를 받습니다.


교우들도 모두 김 장로님을 존경합니다. 올해 회갑을 맞으셔서 건강이 예전만 못해 그것이 제일 걱정입니다. 김 장로님은 3남매를 신앙으로 훌륭하게 잘 키웠습니다. 장로가 자식 농사를 잘 지어야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성공하셨다고 생각됩니다. 큰딸은 전도사에게 시집을 갔고, 아들은 중국에서 파견근무를 하고 있고, 막내딸도 지난달에 좋은 청년을 만나서 결혼을 했습니다. 아무쪼록 형님 같은 김 장로님께서 동생 같은 박 목사를 잘 보살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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