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학교 부흥 꿈꾸는 그대에게」
/ 박명철 지음/ 도서출판 브니엘/
8200 원
교회학교 부흥을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쫓아다니기에 바쁜 요즘 교회 교육이 지닌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게 아닐까요. 돈으로 치장한 화려한 프로그램을 펼침으로서 아이들을 소집하려는 기도는 결국 상업주의에 편승한 세상의 전술을 교회가 표절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아이들을 잠시 현혹시키는 것이지요. 장사꾼은 그래도 됩니다. 돈버는 것이 목적이기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영혼을 살리는 교회는 그리해서는 곤란합니다. 교육의 본질에 접근해야 합니다. 시대와 장소를 뛰어 넘어 우리를 감동시켜왔던 인간의 본질적 만남에 기초해야 합니다.

그럴 듯한 이론으로 무장한 책들은 여기저기 많이 널려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론이 현실에서 그대로 힘을 발휘하는 것을 본 적은 별로 없습니다. 교육 이론이 피상적인 테크닉의 개발에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교육은 테크닉의 문제로 해결 될 수는 없습니다.

주어진 조건에 따라 항상 동일한 반응을 일으키는 기계와는 달리, 인간은 주고받음의 상호작용을 통해 다양한 프리즘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대 인간으로서의 진솔한 만남' 을 통한 근원적 교감이 없이는 교육의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진정한 교회 학교의 부흥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십 수년간의 기자 생활을 통해 교회 학교의 현장을 누비며 체험으로 터득한 교회학교 성장의 비결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화려하고 세련되며 획기적인 비장의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갖가지 프로그램의 개발에 현혹되어 우리가 놓치고 있던 진짜 소중한 방법들을 감동 어린 현장체험으로 들려줍니다. 교회 학교 현장에서 감동으로 아이들을 사로잡은 사람들의 진솔한 얘기. 그리고 그 체험 속에 녹아 있는 교육의 방법들. 이 책은 그와 같은 내용들로 꾸며졌습니다.  

한 학생이 아버지를 따라 지방으로 전학을 갔습니다 물론 교회를 옮길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그 학생이 몇 달 뒤 다시 이 교회가 있는 인천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학교도 다시 옮겼습니다. 이유가 뭔지 아세요? 교회를 떠날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새로 옮긴 교회에 다니면서 전에 다닌 교회가 더 생각나고 교회만 가면 예뻐해 주던 교회 어른들이 눈에 아른거려 병이 날 지경이었다는 것입니다.(22쪽)

아이의 교회 때문에 결국 부모는 주말 부부의 삶을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젊은 학생들을 교회에 잡아두기 위한 갖가지 방법들을 요란스레 외쳐 대지만, 젊은 학생들을 붙잡아 두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런 와중에 지방으로 이사를 갔다가 교회 때문에 되돌아 온 학생의 얘기를 들으니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놀라게 됩니다.

저자는 이를 '내 아이 의식' 이라고 명합니다. 교회가 '내 아이 의식' 을 가지고 있다면 과연 교회 학교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할까요? 예산이 어떻고 교회 형편이 어떻고 하면서 남의 자식 바라보듯 할 수 있을까요? 우리 교회는 교회 학교 아이들을 진정 내 아이로 대하고 있나요? 교회 학교의 부흥은 아이들에 대해 '내 아이 의식'을 갖게 될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저 아이들 편에 서는 일입니다. 저 아이들이 겪고 있는 외로움의 정체를 보는 일입니다. 아이들이 무슨 고민이야, 공부만 잠자코 하면 될 일이지, 생각하는 어른들을 향해 저 아이들이 말로 다할 수 없는 마음 깊은 곳의 '비명'을 듣는 일입니다. (31쪽)

한 여학생으로부터 고민을 듣다가 도무지 해결 방법을 찾을 길 없어 함께 실컷 울고 말았다는 어른 목사의 고백은 아이들 편에 선 교육자의 모습을 실감하게 합니다(32쪽).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온갖 해답을 다 가지고 있는 만능의 해결사가 아닙니다.

설령 문제 해결 방법을 제시하지 못할지라도, 그들의 입장과 고민을 함께 나눌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서로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눈물 흘릴 수 있다면 이미 교육은 성공한 것입니다.

오늘 교회의 교육이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아픔을 함께 하지 않음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인지, 그 해답은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993년 2월 21일
이날은 내게 매우 특별한 날이다. 그렇게도 그리던 교사로 임명된 날이기 때문이다. 책상 위에 놓인 유치부 공과 교안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설레었던가. 수많은 교회학교 교사들이 모두 그렇겠지만 내게 주신 하나님의 '교사 임명장' 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사형 선고나 다름  없는 백혈병을 치른 뒤 내게 주어지는 모든 환경, 그것은 사진의 한 컷 한 컷처럼 지울 수 없는 귀중함으로 새겨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14쪽)

1993년 12월 28일
...백혈병 재발. 병원으로부터 이 통고를 받자마자 금세 떠오른 얼굴들은 내가 전도한 우리 반 아이들, 마흔네 명의 얼굴들이다. 주일예배만 드리고 다시 입원해야 하는데...5년간 재발하지 않으면 다 나은 것이라 했는데... 이제 그 5년이 꼭 한 달 남았는데 ....꿈일까? 당장 입원하면 애들은 어떻게 하지? .......이럴 줄 알았으면 욕심 부리지 않고 전부 우리 반으로 데리고 오지 말걸 그랬나. 아니면 처음에 받은 네 명에게라도 온 힘을 다해 열심히 가르칠 걸. 모든 게 복잡해졌다. (117쪽)

스무 살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은우'. 1년 동안 유치부 교사의 삶을 살면서 십수 년을 교사 노릇한 사람보다 더 진한 감동을 남기고 간 스무 살 처녀 선생님 '은우'의 얘기가 가슴에 아려옵니다.

이토록 교사라는 자리을 값지게 만든 사람이 또 있을까? 교사라는 달란트가 어떤 마음을 필요로 하는지 그녀의 일기를 보노라면 너무도 절실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스무 살, 너무도 젊은 나이에 떠나버린 그녀를 그리는 저자의 글 속에는 안타까움과 자성이 진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알까. 그 직분에 걸려 있는 생명만큼 소중한 가치를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알고서 그 자리에 서 있을까요? 교회 학교 교사의 일이란, 곧 그리스도의 삶을 요구하고 있음을, 그분이 보여주신 그 마지막까지의 사랑을 요구하는 일임을 얼마나 알까요? 아니 또 저는 얼마나 제게 주어진 생명의 가치를 감격으로 누리고 있을까요?(118)

제가 살고 있는 이 세상조차 그렇게 많은 '은우들'의 눈물과 그들의 희생 속에서 지탱해 온 것이라는 저자의 고백에서 사랑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교육의 저력은 바로 자신의 모든 것을 주는 사랑에 있음을 실감하게 합니다.

감동이 있는 교육.
진솔하게 교육에 대해 말하자면 이보다 더 나은 표제가 없을 듯합니다.  저자가 십수 년간의 기자 생활을 하면서 '교회 학교 교육' 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붙들고 씨름했다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 나아가 그 씨름의 현장에서 마주친 숱한 순간들, 저자로 하여금 눈물짓게 하고 탄성을 발하게 했던 순간들을 기록에 담아 그 체험을 한줄로 꿰어 냈다는 점 또한 녹녹치 않은 일이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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