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의 여정」헨리 나우웬. 윤종
석 옮김. 복있는 사람.
여름 한복판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이다. 사람이 더위에 노출되면 만사가 귀찮아지고, 아무 것도 아닌 일에도 짜증을 내기 쉽다. 나름대로 더위를 이기는 방법이 있겠지만, 더위를 이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독서이다.

나는 요즘 헨리 나우웬의 <안식의 여정>에 깊이 빠져있다. 헨리 나우웬(Henri J. M. Nouwen)은 캐나다의 토론토의 라르쉬 데이브레이크(L'Arche Daybreak) 공동체에서 담임 사제로 있었다. 그는 깊은 영성의 소유자로서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가 남긴 책들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깨우침을 주고 있다. 그가 남긴 책들 가운데 ‘제네시의 일기’(바오르의딸), ‘죽음 가장 큰 선물’(홍성사), ‘영혼의 양식’(두란노)등 여러 책들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헨리 나우웬은 1996년 9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섬기던 데이브레이크 장애인 공동체에서 안식년을 갖게 되었는데 그곳이 마지막 삶의 거점이 되었다. 그는 1년 동안 많은 여행을 했으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었을까.

그가 1년 동안 많은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경험한 이야기를, 자신의 삶의 폐부에 깊이 받아들여 거기에 영적 의미를 담아 기록한 생수 같은 맑고 투명한 느낌을 준다.

이 책에는 말없이 숨어있는 깊이와 아름다움이 아주 많아 천천히 곱씹으며 읽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가야할 길이 있다. 헨리 나우웬은 자신의 인생을 나그네처럼 간소하게 살았다. 그는 나그네 길과 본향에 대한 그리움을 품과 하느님 앞에 소명을 다하기 위해 늘 영적인 씨름을 했다.

그는 믿음과 삶을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중간 중간 들어있는 그의 기도는 그가 구도자(求道者)로서 얼마나 혹독한 자기성찰을 했는가를 보여준다. 헨리 나우웬은 그가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따스한 시선을 잃지 않았다. 내적으로는 깊은 영적인 고요함을 갖고, 자신의 삶을 단순화시켜 사람들을 대하고 자연을 이해했다. 그를 어디로 가든 잡초 속에서도 선을 보였다.

그의 일기를 읽는 사이, 우리는 그의 길동무가 된다. 병 중에 만난 추기경, 그에게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여준 장애인 남자, 그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서커스 곡예사 가족, 그의 93세의 아버지를 함께 만나게 된다. 그는 사람과 자연과 사물을 한번도 허투루 대하는 법이 없다. 매사에 친절하고 반듯함을 잃지 않았다.

안식의 여정동안 헨리 나우웬의 마음 내면의 줄다리기가 계속된다. 한편으로는 고독, 기도, 집필, 보다 친밀한 우정으로 끌리는 마음으로 깊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설교, 강의, 여행, 행사 등 일하고 싶은 열망이 따라 다닌다. 다시 자리에 앉아 글을 쓸 때면 글쓰기가 즐겁다. 글쓰는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은 마음도 자주 표현된다.

▲고흐. 해바라기. 나우엔이 좋아한 그림.
헨리 나누웬은 언제나 열정적으로 살았다. <안식의 여정>에서 우정과 친밀한 관계에 대한 자신의 필요를 인정한다. 간혹 소외감과 외로움을 표현할 때도 있다. 그의 아름다움은 자신의 고통을 나누는데 있지 않고, 고통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단순히 털어 놓는데 있다.

그는 통상적 도피처로 달아나지 않고 고통을 감당했다. 너무 심할 때는 손을 내밀어 도움을 구하며 고민을 나누었다.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았으며 최대한 진실한 모습으로 살고자 했다.

1995년 9월 2일 안식년 첫 날, 그의 일기는 샤를르 드 푸코(Charles de Foucauld)의 기도 시로 시작한다.
‘아버지, 아버지의 손에 저를 드립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제게 행하시옵소서. 어떻게 하시든 저는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수용할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제 안에서 아버지의 모든 피조세계에서 아버지의 뜻만이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기에 저를 드리며 아무 조건 없이 무한한 믿음으로 아버지의 손에 저를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나의 아버지시기에. 아멘.’


그가 떠난 안식의 여정은, 그가 안식년을 처음 시작하며 푸코의 기도문대로 마쳐졌다. 이것이 우연한 일이었을까? 1996년 5월 1일 그의 일기에는, 그가 40세에 남긴 기도문을 자신의 신앙의 흔적으로 남겼다.

“인생이 절반에 이른 시점에서 저는 주님의 임재 속에 들어가서 자신을 주님께 재 헌신하고 싶습니다. 지난 40년간 주님은 저를 인도해 주셨고, 성숙한 믿음과 자신의 은사에 대한 새로운 확신 속에서 영적으로 장성한 자가 되도록 점차 이끌어 주셨습니다.

(중략) 주님을 제 목자와 인도자로 맞아들입니다. 야망으로 가득 찬 세상 한 복판에서 겸손한 자가 되게 하소서.

권력에 집착하는 세상에서 연약하게 살게 하소서, 복수와 응징의 고통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게 하소서.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저는 마음을 열고 주님께 옵니다.

주님께서 제게 주신 은사를 믿게 하시고 위험도 마다하지 않고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주님, 제 인생과 제 소명과 주님께서 제 마음에 심어주신 이 소망을 인해 감사드립니다. 아멘.


▲헨리 나우웬의 생전의 모습.
그의 일기 한편 한편은 소중한 영적 깨달음과 성찰을 동반하고 있다. 그는 진지한 영적 사유(思惟)를 통해, 자신의 돌아갈 본향을 주목하며 하루에 삶에 성실했다.

1996년 9월 21일 헨리 나우웬은 심장발작으로 여러 날을 고생하다 하느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가 그의 절친한 친구의 손을 잡고 마지막으로 “내가 죽거든 뭐든지 제일 쉬운 길로 하십시오. 나는 네덜란드에 묻혀도 좋습니다. 거기가 최선의 길이라면 말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감사했다고 말해 주십시오. 나는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말을 남겼다.

살아생전 헨리는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 살았고, 죽어 가는 많은 이들의 임종을 지켰다. 그가 기대하던 바는 아니었지만, 그의 심장마비는 과연 그를 다른 세상으로 인도해 준 하나의 선물이었다.

헨리는 자신과 가족들 자신이 속한 ‘라르쉬 데이브레이크’라는 신앙공동체와 자기 친구들과 사제로서의 자신의 소명과 하느님-그분의 영원한 사랑이야말로 헨리의 64년 인생에 등대가 되었다-과 화평한 상태로 최후를 맞이했다.  

<안식의 여정>을 읽으면서 헨리 나우웬의 고백대로, 하느님이 목자처럼 우리의 삶을 이끌어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모두 길 위에(途上) 서 있는 사람들이다. 그 길 위에서 헨리 나우웬과 같은 영적인 스승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위로요 기쁨이다.  

박철 목사(지석교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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