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치수를 잘하는 게 나라님의 가장 큰 일이라고 했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은 나라님의 덕이 부족한 때문이지만 물난리가 나는 것은 나라님이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 때문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결국 물난리는 인재라는 것입니다. 해마다 물난리가 되풀이 되는 지역이 있습니다. 그 지역을 책임지는 지방단체장들이 제대로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도 원인이고, 한강수계의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한 홍수대책본부도 잘못이고, 더 크게는 치수시스템에 더 많은 사회적 자원을 투입하지 못한 우리나라 정책입안자와 사회전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해마다 그 지역에 물난리가 계속되는데도 불구하고, 한번만 물난리를 당해도 정이 뚝 떨어질 그 지역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대부분의 수해지역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매년 수해가 계속되어도 그곳을 떠날 수가 없어서 올해는 나아지겠지... 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게 그네들의 삶인가 봅니다.

저는 별로 넉넉하지는 못하지만, 우선 아파트에 사니 수해를 입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전에 제가 운영하는 조그만 직장은 수해다발지역 인근에 있었습니다. 저의 가게에 오시는 분들 중에도 수해지역에 사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비가 오면 저도 걱정이 됩니다. 올해는 별 문제가 없어야 할 텐데... 어쨌든 그분들과 저는 한동네 사람이었으니까요.

몇 년 전, 또 엄청난 물난리가 난적이 있었습니다. 아침방송에서 “OO지역, OO지역, OO지역에 밤에 큰 비가 내렸습니다.” 란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바로 제 가게가 인접해 있는 그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가 차로 한바퀴 둘러보았습니다. 저희 가게는 지대가 높아서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제가 걱정했던 그 지역은 엄청나게 심각했습니다.

제 시간에 출근한 직원들은 제가 일찍 나와 있는 것을 보고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비는 그쳤지만 그 후유증 때문에 길이 막혀 제가 늦게 나올 것으로 생각 했었던가 봅니다. 그날 아침 TV에서 본 참담한 광경에다, 아침에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한 터라 저는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마침 결혼한 여직원 중 한사람의 친정이 그 수해지역이었습니다. 자연 마음이 콩밭에 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직원을 포함해서 두 사람의 직원을 불렀습니다. 조금의 돈을 내놓고 수해지역에 필요할, 휴지, 일회용품, 음료수 등을 사서 그 지역에 적절히 드리라고 했습니다. 오후쯤 조금 지치고 밝은 표정으로 돌아온 직원들은 참 일을 잘 처리했습니다. 제가 준 조금의 돈에다 자신들의 돈까지 보태어 필요한 물건들을 사서, 인근의 빈민교회에 무기명으로 드렸다고 합니다. 그리곤 같이 빗자루를 들고 동네의 흙도 치우고... 온갖 굳은 일을 하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군인들이 오는걸 보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랑하기를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 했어요’라고 합니다. 우리다음에 구청, 그 다음에 보건소, 그리고 한참 지나니까 높은 사람들과 방송국에서 같이 나오던데요! 직원들의 얼굴에는 자긍심과 피곤, 그리고 약간의 분노가 보였습니다.

“참 친정은 어땠어요?”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우리 집도 엉망이예요. 집이 흙으로 가득 찼어요” 라고 시집간 그 딸은 이야기 합니다. 그 와중에도 친정아버지는 직장으로 출근하시고, 연로하신 어머님 혼자 집에 가득 쌓인 진흙을 치우고 계셨다고 합니다. “세상에. 친정집까지 그랬어요! 그러면 간 김에 집 정리 좀 도와드렸어요?” “아뇨. 저희가 간 건 동네를 도우러 간 것이니까, 저희 집은 나중에 저녁에 가서 해야죠”

저는 그런 마음 씀씀이를 가진 직원과 함께 일했던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그 착한 직원의 친정에 다시는 빗물이 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제는 멀리 이사를 떠나왔지만 장마가 오니, 문득 그 일이 다시 생각이 납니다.

이번 해에는 부디 물난리로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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