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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세가 넘으신 할머니의 5천원짜리 지폐와 모 대형교회 담임목사의 출판기념회 후의 10만원짜리 수표 두 장. 이 두 가지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대학 4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취업했던 모 인터넷신문에서 경기도 지역에서 최고령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하신 송ㅇㅇ 할머니를 찾았습니다.

사연을 듣고 기사화하기 위해 할머니를 찾았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으시는 할머니의 취재를 마치고 가려는데 할머니께서는 "버스비 하라우, 내 손주 같아서 그러는 거니 날래 받으라우" 하면서 "안 받으면 내가 니 회사까지 따라갈꺼니 알아서 하라우" 하며 기어코 제 주머니에 꼬깃꼬깃한 5천원짜리를 찔러 주셨습니다. 이것이 제가 기자생활을 하면서 받았던 최초의 촌지(?)라는 것이었습니다. 후에 수박 한덩이를 사들고 할머니댁을 찾았지만,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졸업 후 교계신문에서 일었던 일입니다. 사진 촬영을 하고 취재를 하라는 지시를 받고 서울의 ㄱ교회 담임목사님의 출판기념회 자리를 찾아갔습니다.

행사 후에 식사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저는 "기자라는게 이런 거구나"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러나 문제는 이게 아니었습니다.

부목사님이라는 분이 "어느 신문이냐"고 묻자 저는 "ㅇㅇㅇ신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이 '자료'라며 제게 노란 서류봉투를 건넸습니다.

저는 취재에 필요한 자료는 모두 챙긴 터라 "취재 다 했는데요"라고 말했으나 목사님은 억지로 제게 봉투를 건넸습니다. 저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받아들고는 제 차 뒷자리에 던져놓았습니다.

그 속의 돈을 발견하게 된 것은 약 두 달이 지나서였습니다. 오래간만에 세차를 하려고 쓰레기를 정리하는데 봉투가 발견됐습니다. 저는 그냥 쓰레기겠지 하고 던져놓는데 안에서 서류와 함께 나온 것은 흰 봉투였습니다. 그 속에는 수표 두 장이 있더군요.

이게 뭘까 하고 생각했는데 출판기념회가 떠오르더군요. 기분이 무척이나 나빠서 세차는 포기하고 바로 인근에 있는 아무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상계동 인근의 작은 교회에 무작정 들어가 그 봉투를 놔두고 왔습니다.

그 후 저는 "원래 이렇구나" 하면서 주는 촌지 남들 다 받는 거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제게는 선배들 모두 받고 있는 속에서 안 받는다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받지 않기 위해 노력을 했죠(물론 모두 안 받은 것은 아니였지만). 촌지를 받으면 항상 기분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 후 저와 친하게 지내던 동료기자들과는 약속 한 가지를 했습니다. 절대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촌지를 받지 말기로... 이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현재 교계에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죠.

기자생활을 하면서 목사님들이 찔러주시던 문서선교비라는 봉투를 볼 때마다 저는 그 옛날 할머니께서 전해 주시던 구겨진 5천원짜리 지폐가 생각납니다.

할머니의 5천원짜리가 제 양심을 구기지는 않았지만, 목사님들의 흰 봉투는 제 마음과 양심을 구겨버리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생각하며,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워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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