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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대체로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매우 우호적인 반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지난 6월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 정계지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국에서도 공산당 활동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아마 상당수의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발언에 대해 매우 분노하거나 불안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가 고착되는 데는 몇 가지 역사적 경험이 작용하여 왔습니다. 해방 후 남북분단의 비극으로 말미암아 월남한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주의·공산주의는 기독교의 적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경험하였습니다. 또한 한국전쟁에서 한국의 우방으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자본주의 국가 미국이 강한 기독교 색채를 띠고 있으며, 미국의 주도하에 동구 공산권이 무너졌다는 점 역시 한국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자본주의에 친근감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교계 지도자들 중에는 막스 베버의 유명한 저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언급하면서 자본주의는 프로테스탄티즘의 결과물이라고 확신있게 주장하는 이들도 종종 있습니다. 이쯤 되면 기독인의 사회주의에 대한 배격과 자본주의에 대한 전폭적 지지는 사회과학적 근거까지 지닌 아주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여지게 됩니다.

이들은 자본주의 자체는 매우 좋은 것인데 원래의 도덕적 근간이었던 기독교윤리를 잃어버려 천민자본주의로 전락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자본주의를 바람직한 모습으로 회복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주장합니다. 김동호 목사님의 『깨끗한 부자』에 대한 옹호나 김진홍 목사님의 다단계 마케팅 참여는 이런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가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경험과는 잘 맞아떨어질지 모르지만, 신앙과 사회과학의 측면에서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삶의 경험도 진리를 알아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진리의 절대적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의 경험은 매우 제한적이어서 진리라는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것을 오히려 가로막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6·25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경험하지 못한 세대는 서로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구 소련과 동구의 몰락으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은 이제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한편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적 세계화의 물결은 지구촌을 삼킬 듯한 위력으로 출렁이고 있습니다. 이상주의에 사로잡혀 이러한 역사의 현실을 통째로 무시하는 것은 지혜로운 자세가 아닙니다. 그러나 힘이 곧 진리이고 정의인양 기존체제에 대한 비판적 자세를 상실하고 대안체제를 찾아가려는 노력을 아예 포기해버리는 것은 기독인의 양심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기독교인은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편집인 박득훈 목사.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 정신이나 체제와 개신교 윤리 사이의 필연적 인과관계를 설명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둘 사이에 몇 가지 유사점을 추려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을 뿐입니다. 영국의 기독인 경제사학자인 R.H. 토니는 그 유사점마저 개신교의 한 분파인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중 상업계급에 국한됨을 밝혔고, 강렬한 개인주의나 엄격한 기독교사회주의 모두 칼빈의 교리에서부터 추론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본주의는 우리가 숨을 쉬고 있는 공기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공기를 맑게 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부분적 개량을 뛰어넘어 좀더 혁명적인 대안을 만들어가려는 열정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바라는 믿음으로 기꺼이 좁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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