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 박부원 장로. ⓒ뉴스앤조이 최소란

도예가 박부원 장로(64)는 40년 동안 도자기를 빚으며 창조주의 섭리를 드러내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는 흙으로 작품을 완성하며,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의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도자기 빚는 일을 자신의 천직으로 여기며 꾸준히 한길 인생을 걸어온 그의 삶과 신앙이 그의 작품에 서려 있다.

박부원 장로가 도자기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1962년 도예가 지순탁 선생과의 만남이었다. 그는 오로지 찻그릇에 매력을 느껴 강원도 홍천에 있는 지 선생의 공방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12년 동안 도예기술을 배우며 지 선생과 함께 우리 그릇을 만들어냈다.

▲찻그릇에 어울리는 차를 마시며 다도를 즐기는 박부원 장로. ⓒ뉴스앤조이 최소란

그 후 74년 경기도 광주에 터를 잡고 '도원요(陶元窯)'를 설립했다. 도원요는 박부원 장로가 직접 도자기를 만드는 작업장이자, 창작품 수백 여 점을 전시해놓은 전시관이다. 지금은 그곳에서 그의 일을 물려받을 아들(박수열·35)과 딸(박소영·34)에게 도예를 가르치고 있다.

모든 흙이 다 하나님 것, 기독교적인 게 따로 있나?

박부원 장로는 흙이 하나의 그릇으로 탄생되는 과정을, 인간의 생이 완성되는 삶의 여정과 흡사하다고 말한다. 그는 도자기가 완성되는 것을 '태어난다'고 표현한 도예비평가 유종열 씨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도자기는 단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혼을 불어넣어 해산한 존재라는 것이다.

▲분청철화항아리.

또 박 장로는 가마 불에 도자기를 구워낼 때 인간의 한계를 깨닫는다고 말한다. 그가 오랜 시간 숙련된 감각과 직관으로 혼신의 노력을 다해 도자기를 빚지만, 정작 도자기를 가마에 넣은 후부터의 일은 인간의 몫이 아니다. 그는 이를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표현한다. 모든 일의 결과는 하늘(하나님)의 뜻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본 회퍼는 "가장 고통스럽고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고백했다. 박 장로는 이 고백을 빗대어 역설적으로 "도자기를 미련 없이 깰 수 있을 때 좋은 작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실패를 감내하며 작품의 절대적인 완성도를 추구하는 그에게서 끝없는 자기성찰적 신앙을 엿볼 수 있다.

▲비둘기 형상을 띤 십자가 문양의 성물. ⓒ뉴스앤조이 최소란

박 장로에게 기독교적 색채를 띤 작품이 있느냐는 물음을 던지면 그는 "모든 흙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그 흙으로 교회에서 사용되는 성물을 만들면 기독교적인 작품, 절에서 사용되는 그릇을 만들면 불교적인 것으로 구별할 필요가 있나요?"라는 되묻는다. 많은 종교인들이 겉에 종교라는 상표를 붙여 물건을 차별하지만, 그는 모든 흙과 그 흙으로 만든 그릇의 주인이 동일하게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다.

또 박 장로는 그릇을 판매하는 고객도 기독교인에게 한정짓지 않는다. 유교·불교인들이 많이 찾기 때문이기도 하나, 특정 종교(기독교)가 문화를 독점할 수 없다고 보는 지론이 더 큰 이유이다.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이라면 종교를 초월하여 누구나 그의 작품을 가질 수 있을 뿐 아니라 그와 함께 차 한잔을 나눌 수도 있다.

▲박부원 장로가 직접 그림을 그려넣은 호리병. ⓒ뉴스앤조이 최소란

분청사기에서 서민들 숨소리가 들린다

박부원 장로가 구워내는 그릇에는 평범한 서민들의 수수함과 소박함이 묻어난다. 박 장로는 주로 찻그릇을 비롯해서 사발, 접시, 항아리 등 분청사기에 천착해왔다. 분청사기는 예로부터 우리 서민들의 생활용품으로 만들어졌지만 청자나 백자의 화려함에 가려 정통자기로 인정받지 못했다. 박 장로는 40년 전 점차 분청사기의 맥이 끊어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분청사기 재현 작업을 시작했다.

박 장로는 분청사기의 아름다움은 각별한 데가 있다고 이해한다. 그것은 화려함이나 섬세함과는 다른 질박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이다. 그는 "분청사기는 과거 청자나 백자를 가지지 못한 서민들의 그릇이었지만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소박한 멋은 청자와 백자가 따라갈 수 없다"고 강조한다.

▲분청회화접시. ⓒ뉴스앤조이 최소란

"분청사기는 거칠고 무지한 서민들의 숨소리가 들리고, 사람의 체온이 흐르고 있다."

박 장로가 분청사기를 통해 추구하는 가치는, 민중들과 함께 하고 그들의 삶과 애환을 이해하고자 그 자신이 민중이었던 예수님의 삶이다. 박 장로가 추구하는 가치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의 도자기처럼, 박 장로를 지으신 분의 뜻을 발견해 가는 그 삶의 여정은 완성작에 이를 날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박부원 장로가 직접 그림을 그려넣어 만든 항아리. ⓒ뉴스앤조이 최소란


도예가 박부원 장로, 해외에서 더 유명

도예가 박부원 장로는 40년 전부터 분청사기를 빚어왔다. 서민들의 일상용품으로 만들어졌던 분청사기는 찻그릇에서 찻주전자, 사발, 접시, 항아리까지 다양하다. 박 장로가 만드는 도자기는 언뜻 보면 화려하거나 섬세하지 않아 투박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당당하고도 싱싱한 맛을 풍긴다. 또 자연스럽고 소탈한 맛, 어떤 격식이나 제약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멋을 지니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대부분의 그릇들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색감을 그대로 살렸지만, 항아리나 접시에는 그림작가가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한다. 박부원 장로의 대표작은 논갈이하는 농부를 그린 '분청철화항아리', 정물그림이 담긴 '분청회화접시' 등이 있다. 박 장로가 대나무, 새, 물고기 등의 그림을 손수 그려 넣은 작품도 있다. 또 비둘기의 형상을 띤 십자가 문양을 새겨 넣은 성물을 만들기도 했다.

박 장로가 만든 찻그릇은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1975년 일본 동경에서 첫 작품전시회를 가졌으며, 76년에는 오사카에서 한국도예 5인걸작전이 열려 도예계에서 호평을 받았다. 그 후 해마다 일본에서 전시회를 열었던 그는 6년 후인 82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처음 국내전시회를 열었으며 이후 해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수차례 전시회를 열었다.

영광스러운 하늘의 찬란한 눈길을 상징하는 '요변천목차완', 검은 유약을 발랐다는 '흑유차완', 물고기가 물살을 헤엄치는 듯한 무늬를 띈 '분청귀얄문차완' 등이 박 장로의 대표적인 찻그릇 작품들이다. 또 차주전자인 '천목차호'는 황토빛의 색감이 매우 독특하다.

박 장로는 99년 광주지역의 도예인 50여 명이 모여 만든 '광주도예인협회'의 회장직을 지낸바 있다. 2001년에는 경기도 광주·여주·이천에서 열린 세계도자기박람회 추진위원으로 위촉돼 한국의 도자기를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요변천목차완.

▲흙유차완.

▲분청귀얄문차완.

▲차 주전자인 '천목차호'. ⓒ뉴스앤조이 최소란

▲차를 따를 때 쓰는 나눔그릇. ⓒ뉴스앤조이 최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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