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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의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6.3%, 제조업 상용 종업원 기준 임금 상승률이 12%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의 체감 경기는 싸늘하였는데, 올해 경제성장률이 3%에도 못 미칠 경우 대량 실업과 가계 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사오정'(45세 정년퇴직)이니, '오륙도'(56세 자리 보존자는 도둑)니 하는 웃지 못할 우스갯소리가 직장인을 슬프게 한다. 평생 직장의 기대치가 사라지면서 '돈벌이'에 대한 강박관념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마음만 고쳐먹으면, 단기간에 고소득의 돈벌이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는 천의 얼굴을 가진 사업 제안이 우리 사회에 자본주의의 독감 바이러스를 유포하고 있다.

네트워크 마케팅(network marketing)이라는 사업방식을 활용한 일종의 다단계 판매업은 초기 자본금 없이 쉽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으며 노력 여하에 따라 고수익이 보장된다는 장점 때문에 직장인들이 선호하고 있다. 네트워크 마케팅이란 생산자와 소비자, 소비자와 소비자간의 망(網)조직을 통해 신속하고 직접적으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유통비용과 광고비용을 절감하고 그 이익을 구성원들이 나누어 가지는 사업방식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암웨이(Amway) 사업이다. 암웨이 사업의 핵심적인 슬로건이 바로 '돈과 시간의 자유를 누리자'이다.

"해볼 만한 사업"으로 주목

공정거래위원회의 국회 제출 자료에 따르면, 한국 암웨이의 2002년 매출액은 2000년보다 2.4배가 증가한 1조 1,732억 원, 당기순이익은 723억 원을 기록하였다. 매출액 규모로는 삼성전자의 3% 수준에 해당된다. 암웨이를 포함한 상위 5개 다단계 판매 회사의 총 매출액은 2조 5천억 원, 당기순이익 1,640억 원으로, 매출액 대비 당기순이익률은 무려 6.6%에 이른다. 1991년 한국 암웨이 사업이 시작된 이후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자 아류 사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사업설명회에 참석하여 보면, 사업자가 2∼3년 동안만 고생하면 평생동안 고수익이 보장될 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인지세로 고소득이 상속되는 "정말 해볼만한 사업"이라고 권유한다.

여기에 경제적으로, 신앙적으로 심각한 함정이 있다. 먼저, 이러한 유형의 사업의 장점이 될 수 있는 유통비용과 광고비의 절감은 인터넷 유통구조의 발달로 크게 반감되고 있다. 즉, 인터넷 쇼핑몰이 급성장함에 따라,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유통비용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생산자 직거래 체계의 발달도 유통구조의 혁신에 기여하고 있다.

둘째, 역선택(adverse selection)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사업 참여자는 취급하는 제품의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사업 배당금의 누적 점수를 늘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제품들을 소비해야 한다. 필자가 A회사의 유사한 또는 동일한 상품을 대상으로 직접 시장 가격을 조사해 본 결과를 예시로 소개해 보면, 주방세제, 칫솔 및 치약의 경우 다단계 A회사 제품이 할인마트에서 판매되는 일반 제품보다 2∼4배 더 비쌌으며, A회사가 위탁 판매하는 S전자의 김칫독과 밥솥의 경우는 S쇼핑몰에서 판매하는 가격의 1.4배에 이르렀다. 결국, 사업 참여자는 사업 배당금을 획득하기 위해 일반 소비자에 비해 현저히 비싼 가격으로 제품을 구입하면서 판매 실적을 올리는 역선택에 봉착하게 된다.

셋째, 다단계 판매사업은 과소비를 조장한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팀에서 소비를 많이 해야만 이에 비례하여 사업 배당금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당장 불필요한 제품들을 집에 쌓아두기도 해야 한다. 소비행위는 필요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나 이 사업은 '필요의 분량'보다는 '욕구 또는 욕심의 분량'에 따라 소비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더욱이 하위 파트너에게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소비해 보아야 하므로 필요 이상의 소비는 눈덩이처럼 늘어날 수밖에 없다. 투자에 소심한 사업가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지침이 설득력을 발휘한다.

넷째, 소비자의 다양한 선택권을 제한하여 비효율적인 소비행위를 유발하게 된다. 소비자(사업자)는 이 사업의 상품 목록에 있는 제품만 소비하게 되므로 자신의 기호에 따라 다양한 품질, 가격, 성능, 디자인, 모델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게 된다.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는 과잉생산체제이다. 자율적인 시장경쟁질서는 다수의 소비자의 다양한 의사결정에 의해 유지된다. 소비자의 합리적인 소비 성향과 선택권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생산자가 경쟁력을 가지게 된다. 만일 소비자의 선택이 획일화될 경우에는 시장 정보가 왜곡되므로 생산자가 보다 저렴하고 양질의 제품을 경쟁적으로 시장에 공급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에는 소비자의 손실로 이어진다.

자신과 공동체에 유익 주는 선택해야

다섯째, 근본적으로 기독교적 노동관을 왜곡시키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우리의 노동은 생활 방편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땅을 관리해 나아가는 본질적인 행위이다. 일시적으로 '돈벌이'가 넉넉하다 하여 우리가 노동을 중단하거나 유희로 전락시켜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생 수고하고 땀흘리며 살아가는 것은 처절한 고생만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유한한 존재를 인식하며 살아가는 보람이 아닐까? 밤늦도록 수고하는 직장인들의 돈벌이를 경시해서는 안된다. 노동하는 과정보다 노동의 결과인 소득 수준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노동의 기독교적 의미를 경시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인은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평생토록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여 일할 수 있는 자신의 가치를 개발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위 후원자가 사업 정보를 제공한다는 미명하에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몇 단계 아래 하위 파트너의 사업 실적에 비례하여 배당금을 획득하는 것은 극단적으로는 불로소득의 일종이다. 불로소득의 열매를 크게 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확장시키고자 하는 것은 '낙타'가 넉넉하게 통과할 수 있는 '바늘구멍'을 넓히려는 시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김태황 교수.
여섯째, 신앙 공동체에서의 다단계 판매 활동은 신앙생활 자체를 왜곡시킬 수 있다. 교회의 여러 모임을 통한 대인관계가 사업 파트너 관계로 전도될 수 있다. 지체들간의 교제가 사업조직원들간의 정보 전달 모임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구역모임이나 분야별 소그룹 모임에서, 1부에는 예배나 성경공부로 분위기를 조성하고 2부에서 다단계 사업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장면을 쉽게 예견해 볼 수 있다.

신앙인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으나 반드시 자신과 공동체에 유익한 일을 해야 한다. 21세기 획기적인 경영 전략이라고 숭배되고(!) 있는 네트워크 마케팅에 함정의 쐐기가 숨어 있다. 함정 그 자체가 사악한 것이 아니라 함정이 있음을 알고도 외면하는 행동이 잘못이다. 신앙으로 경제를 살리려고 애써보기도 전에 왜곡된 경제관이 신앙을 잠식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김태황 / 천안대 경상학부 교수 thkim@cheon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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