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화), 군산에 올라가 새만금 사업 반대를 내걸고 삼보일도(三步一禱)를 진행 중인 이희운 목사를 만났다. 진즉 응원방문을 하려 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가 꽤나 뒤늦은 방문이었다. 다행히 군산에는 같은 예민선(예장민중교회선교연합) 선배이신 돌베개 교회 유승기 목사님이 계셔서 일행이 머물고 있는 숙소까지 그분의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유 목사님은 함께 차로 이동하면서 "힘들었을 텐데, 그 먼데서 굳이 여기까지 올 필요가 뭐 있냐?"면서 "고행하면서 묵언정진 하겠다는 사람들은 그냥 놔둬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셨다. 본래 이번 행사는 끝까지 묵언하며 진행키로 했는데, 나처럼 자꾸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약속이 깨진지 오래란다. 그래도 나로서는 새만금 사업은 단지 전북 문제만이 아니고, 몸도 약한 이 목사가 외로이 길을 가고 있는데 그냥 보고만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싶어 일부러 시간을 낸 것이다.

우리가 이 목사가 머무는 숙소에 도착한 것은 밤 10시가 다 되어서다. 해서, 아쉽게도 하루 일정은 이미 끝난 뒤였고, 다음날의 일정을 위해 준비하는 몇몇 사람만 빼고는 다들 일찍 잠자리에 든 후였다. 우릴 환하게 웃으며 맞이하는 이 목사는 얼굴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기왕 하는 김에 철저히 하겠다는 생각에서 일부러 모자도 안 쓰고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 목사님은 이 목사가 개량한복 차림에다 수염까지 기르고 있어서 이를 지켜보는 일반 기독교인들에게 반발심을 자아내지 않을까 염려하셨다. 허나, 이희운 목사의 평소 행색이 그러니 누가 말릴 수 있으랴. 값비싼 양복 차림에, 머리에는 무스까지 바른 채 거드름을 피워대는 목사들보다야 백배 낫지 않을까 싶었다. 무릎의 상처는 좀 어떠냐고 했더니, 한의사들의 진료도 받고 했는데 지금은 많이 회복되고 있는 중이라 괜찮다고 했다.

평소 동료 목회자들에게 '일 중독'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몸을 잘 돌보지 않다가 전에 한 번 쓰러진 적도 있던 그였다. 이번도 몸을 생각지 않고 나선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그의 뚝심과 고집이 많이 작용했으리라는 짐작은 했다. 얘길 듣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틀림없다. 맨 처음에 이번 삼보일배 행사는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 두 분이 하기로 계획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을 기독교생명선교연대(새만금 사업 반대에 앞장서온 전북 개신교 단체)를 대표해서 이 목사가 자청해 '삼보일도'로 동참했고, 그러자 원불교에서도 김경일 교무가 합세한 것이라고 한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4대 종교가 어울어진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안심을 시키려 한 말이었겠지만, 이 목사는 오히려 지금이 기도로 재충전하며 모처럼 쉴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평소 교회만이 아니라, 실직·노숙자 쉼터 일에다 자활후견기관, 귀농학교까지 정신 없이 바쁜 그의 일상을 가늠케 하는 말이다. 그는 이번 행사에 참여하면서 책에서 볼 수 없었던 소중한 체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한 예로, 지금까지 별 관심이 없었던 원불교라는 종교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점을 들었다. 교세가 그리 크지 않은 종교임에도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데에 놀랐다는 거였다. 그에 따르면, 원불교는 최근에 비상총회를 소집하여 '환경문제 해결'을 전면에 내걸었다고 한다. 물론 여기에는 원불교 성지가 있는 영광이 핵폐기장 유력 후보지로 거론되는 것과 크게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이 목사는 원불교의 이러한 변화를 가톨릭의 종교개혁이라 불리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비견될 만하다고 높이 평가했다.

평소 이 목사는 성서절대주의자가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로 무엇보다도 성서를 중심에 놓고 있다. 이 점 때문에 언젠가 개인적으로 나와 토론을 벌이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는 쉼터의 노숙자들 가운데 알콜 중독자들이 있으면, 술을 마시는 것은 죄이며 성경적인 원리에 따라 술을 끊도록 유도하고 있다. A.A 모임('익명의 알콜중독자들'의 약자로 알콜중독자들의 회복을 돕기 위한 모임)에 맨날 참석하고 정신과치료를 다 받아봐도 알콜중독은 끊임없이 재발하곤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목사가 운영하는 쉼터에서는 수 년째 술을 끊은 사람도 몇 명 생겨났다니 효과가 분명히 있긴 있나 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나는 그의 방법에 동의할 수 없었다. 성서를 너무 문자주의적으로 치우쳐 해석한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삼보일도(三步一禱)를 하고 있는 이 목사나 바그다드에 끝까지 남아 있는 유은하 씨를 보면서 한편으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는 데, 둘 다 보수주의적 신앙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알다시피 유은하 씨의 경우, 이라크로 떠나기 얼마 전까지 복음주의학원선교단체인 학복협(학원복음화협의회) 간사로 일해왔다. 또한 이희운 목사는 예민선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보수적 신앙관은 두 사람의 사회참여에 오히려 강력한 에너지를 제공해 주고 있다. 진정한 보수와 진보는 통하기 마련이라는 말이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들의 모습은, 말만 앞세워 오던 나 같은 어줍잖은 진보주의자들을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이 목사는 "바닥에 밀착하고 있으면 아무리 진보적인 이론을 모를지라도 자연스레 통하기 마련이며, 바로 거기서 시대의 징조를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정말이지, 내가 아는 이 목사는 여간해서는 몸을 사리지 않는다. 그는 요즘 제3세계 어느 나라가 되었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나가겠다고 벌써부터 벼르고 있다. 실제로 특별한 차질이 없는 한, 아마도 내년쯤엔 나갈 작정인 모양이다. 지금의 나실교회가 하는 여러 선교사업들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있고, 굳이 자기가 아니어도 후배 중 누가 맡든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그런 뜻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예비답사라도 할 작정이었는지, 그는 재작년에 인도교회와의 교환 프로그램을 통해 6개월간 인도에 다녀오기도 했다. 초발심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바닥으로 다가서고자 애쓰는 그가, 서울까지 진행하는 힘겨운 삼보일도 행진으로 부디 지쳐 쓰러지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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