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척 초년병 시절, 참 많은 일을 겪었음에도 생각하면 잔잔한 감동으로 눈시울을 적시게 만드는 한 분이 계신다. 지는 꽃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신 고(故) 김화자 집사님은 지난 1월 2일 많은 교훈을 목사의 심장에 던져 놓으시고 버거웠던 육신의 장막을 벗어 던지셨다. 가신 뒤 님의 발자취는 더욱 빛이 나고 있다.

방광암으로 투병을 시작하신지 1년여, 심방 중이던 나에게 신음섞인 고백으로 그 분이 던지신 말씀마다에는 신앙의 무게가 서려 있었다.

"내 아픔 내가 감당하겠다" 하시던 집사님,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눈 한 번 질끈 감으시고, 입술 한 번 깨물면 그뿐이셨다. 누구에게 아프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아니셨다. 그 긴 세월 투병중에도 약한 모습 보이신 적이 없고 품위를 잃지 않으셨다. 남에게 짜증 한 번 부리신 적 없고, 오직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극도의 인내를 몸소 보이셨다.

언젠가 병원에서 기도하고 난 다음에 집사님은 아들 같은 나의 귀에 "60 평생이 너무 빨리 갔다"고 속삭이셨다. 찡하니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창밖으로 눈을 돌리는 내 손을 꼭 잡으셨다. 마지막 심방은 집에 계실 때였는데 이미 모든 것을 정리하시는 눈빛이었지만 기도를 마칠 때에는 유독 "아멘" 소리를 크게 하셨다. 온 힘을 다해 외친 것이리라. 그 소리가 마지막이 될 줄이야. 이제 천국 가서야 들을 수 있는 음성이 되고 말았다.

입관식, 온화하고 평화롭고 한없이 부드러웠던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하관예배에서 '육체 밖에서 주를 보리라'는 욥의 고백으로 말씀을 나누었다. 한 줌 흙이 된 한 인생을 청아공원에 안치하고 돌아서는데 어찌 그리도 많은 눈물이 쏟아지던지...
  
둘째 아들 최수철 집사의 얘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을 많이 남기셨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형제들이 지치기 전에 가셨다고 한다. 조금 더 시간이 흘렀더라면 병원비 그리고 간호 등의 문제로 형제들은 지치고 상한 마음에 불화할 수 있을 뻔 하였다 한다. 모든 후손들을 화목하게 해놓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막내 딸 최성숙 집사네가 이사를 한지가 일주일 되었다는 것이었고, 하루만 지나면 장례식이 주일이고, 또 하루가 지나면 학생수련회 기간이었으니 교회로서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나님의 은혜일 수밖에 없는 일들이다.

큰 아들 최인철 집사는 어머니 병중에 믿음이 자라 주초문제를 해결하였고, 주일지키기를 애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아들 준영이가 태어나고 아내는 병약한 몸으로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 17년을 외로이 살아온 셈인데, 고뇌와 고독에 찌들고 상한 몸과 마음 대신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기쁨을 그의 얼굴에서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가 죽고 손주 준영이는 고아원에 맡겨질 처지였는데 집사님이 "할머니가 있는데 무슨 소리냐"면서 하시던 시장 행상을 그만 두시고 손수 준영이를 키우셨다. 아들 셋과 딸 셋 그리고 손주를 키우셨다. 이제 고교 3학년인 준영이는 참 신앙의 청년으로 자라고 있으며 그의 성품은 집사님을 많이 닮았다.

창아공원 납골묘지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 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면서 보여준 형제들의 우애스러운 모습은 보는이로 하여금 가슴이 따뜻해지게 하였다.

집사님은 명예가 아닌, 부가 아닌, 신앙을 유산으로 물리셨다. 의리 있고 경우 바르고 많은 이로 하여금 따뜻한 가슴이 되게 하고 기쁨과 용기와 위로를 주는 믿음의 자손들을 남기신 것이다. 화장터에서 본 인생의 허무, 주 앞에 선 아름다운 천국의 성도들, 우리의 삶은 결코 이 세상이 아님을 또 다시 느끼게 만든 것들이다.

주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는 모습으로 서야 하며, 보이는 것으로 자랑을 삼지 말고 영원한 것으로 우리의 가치를 삼아야 하며, 이 세상이 아닌 천국을 위하여 마음과 보화를 거기 쌓아두는 삶이어야 하는데….

교회가 세상과 다른 것은 천국을 향한 좁은 길을 가며, 천국을 소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은 것이 아닌가. 그래서 하나님은 그 큰 사랑을 계속하시고 용서를 중단하지 않으시며 지금도 오래 참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도 낮아지고 깨어지고 포기하고 주님을 닮는 처절한 몸부림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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