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점심시간, 어머니는 내 불편한 심기를 눈치 채시곤 대사 연습을 하자고 하시지 않고 정원에 나가 산책이나 하자 하셨다. 장미덩굴이 푸르름을 더해가던 봄날, 거대한 느릅나무들 밑엔 민들레꽃이 군데군데 피어 있었다. 어머니는 민들레꽃에 다가가더니 한 포기를 뽑으면서 말씀했다.
"잡초들은 다 뽑아 버려야겠다. 이제부터 우리 정원엔 장미꽃만 길러야겠어."
"그렇지만 난 민들레가 좋아요. 엄마. 꽃들은 다 아름다워요. 민들레꽃까지도." 나는 항의했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래 맞아. 꽃은 어떤 꽃이든 그 나름대로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 사람도 마찬가지란다. 누구나 다 공주가 될 수는 없는 거야. 그러니 공주가 되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단다."
학예회 날 무대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는 긴장되고 불안했다. 시작되기 얼마 전 선생님이 내게 오셨다.
"너의 엄마가 이걸 전해 달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내게 민들레꽃 한 송이를 건네 주셨다. 민들레는 꽃잎 끝이 말리기 시작했고 줄기도 시들시들했다. 그러나 그 민들레를 바라보며 어머니가 밖에와 계시다는 생각을 하고 또 어머니와 점심시간에 나눴던 얘기를 생각하니 자부심이 되살아났다.
<민들레 이야기>란 책에 나온 글입니다. 민들레처럼 살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장미가 되길 바랍니다. 세상은 장미의 천국입니다. 민들레는 없어도 될 것이라 여길 뿐입니다.
그러나 민들레의 세상도 장미의 천국도 실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민들레는 민들레로 피며, 장미는 장미로 필뿐입니다. 홀로 제 각기 하나님 앞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나는 나로서 세상에 살며 하나님 앞에서도 홀로 서야 할 존재입니다. 독립은 나의 전제며, 내 삶의 방식입니다. 거기 자유가 있음을 발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