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시작한 지 얼마 후부터 렉카차 기사들이 내게 명함을 들이 밀었다. 사고 차량을 목격하면 즉시 연락을 달라는 것이었다. 자기들이 차를 견인하면 대당 3만원을 주겠다는 것이다.

어느 날인가 골목길을 가는데, 사고 차량이 실랑이를 벌이는 것 같아 보였다. 처음으로 렉카차에게 연락을 해 보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렉카차 기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와서 돈을 받아가라는 것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돈을 받아왔다.

한국 경제에 불황이 닥쳐왔다. 택시도 예외는 될 수 없었다. 사납금을 채우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자정이 넘어 가건만 사납금을 채울 여력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신호 대기 중에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 때 불현듯 예전에 렉카 기사에게 돈을 받은 기억이 났다.

'이럴 때 사고라도 목격하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하자마자 "끼익 꽝"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옆에서 사고가 났다. 나는 잽싸게 렉카차에 연락을 했다. 그 덕분에 나는 사납금을 채울 수 있었다.

얼마 후 그날도 사납금을 채우지 못해 고민하던 날이었다. 나는 그 날도 "누가 사고라도 나지 않나" 하는 해괴망측한 생각을 또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두 남여가 차를 한 켠에 세우고서 막대기로 무얼 끄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서 보니 아주 커다란 능구렁이를 집적대는 것이었다. 나는 얼른 손으로 잡아 봉투에 담아왔다. 다음 날 건강원 집에 2만원에 팔았다.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보다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악한 명분이 나를 지배했다. 그 덕에 나는 사납금을 채우는 꼴이 됐다. 하루가 지났지만.

나는 칼럼을 쓰느라고 아내에게 구박을 많이 받는다. 제발 위선적인 글 그만 쓰고 가족에게 더욱 관심을 가지라고 말한다. 어느 날인가 한참을 두고 쓴 칼럼이 다 마쳐가고 있을 때쯤 아내는 컴퓨터를 꺼버렸다. 그 허망함이야 당해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나는 다시 처음부터 글을 썼다. 그 때문에 그날은 일도 못했다. 나는 일을 하면서 갑자기 "술집에 손님이라도 데려다 주면 하루종일 일 못한 것을 벌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잠시 후 손님이 두 명 타더니 좋은 술집에다 데려다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을 태우고 명함을 준 술집에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술집 주인에게 거금 8만원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위와 비슷한 경우를 당한 적이(?) 또 있었다. 그날은 7만원을 받았다. 아무튼 꿈은 계속 이루어졌다. 위에 열거한 사례들은 사실은 수도 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미신적인 기원을 하게 되어 있다. 인간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아니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이 이루어졌다고 하여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사실 인간의 탐욕을 잘 드러내주는 일이다. 다만 인간의 자기 변명과 정당화 때문에 죄가 죄로 인식되지 못할 뿐이다.

그런데 독실하다는 기독자들은 수도 없이 기도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기의 생각대로 꿈이 이루어지는 결과를 보게 된다. 문제는 그 일들을 두고 무조건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베푼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단지 자신의 탐욕임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일로 거룩으로 치장한다는 것이다.

도둑질로 돈을 벌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와 그저 하는 일이 잘되기를 빌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일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자기의 생각대로 되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도둑질을 하면서 들키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와 자신의 행복과 사업의 성공을 위해 기도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 이 말이다. 나는 나의 뜻대로 되어진 일들 중에 하나님의 신성이 들어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모두 나의 탐욕일 뿐이었다. 나는 언제나 나의 유익을 위해 살고 본능에 육신이 이끌리는 것을 수도 없이 경험한다. 때문에 내가 바라는 일들이 이루어진다 해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기가 겁난다.

이 세상 것은 육신에 속한 것이요 육신과 관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육신의 생각이 이루어진 것을 가지고 감히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히려 했던 내 자신의 지난 날 모습을 생각하면 실로 수치에 수치를 더하는 것 같다. 기독자라면 세상에서의 꿈이 이루어진다 한들 결코 자랑이 아니요, 은혜가 될 수 없음을 이해하여야 한다.

꿈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욕심의 부산물일 뿐이다. 주님에게 이끌려 사는 자라면 꿈이 필요치 않다. 주님의 은혜면 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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