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사회에서 자유와 평등을 위해 일으킨 근대 시민혁명의 결과 초기 자본주의 국가들이 탄생하였다. 하지만 그 '자유와 평등'은 시민들의 보편적인 것이 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새로운 귀족층을 형성하게 되는, '재산과 교양이 있는 일부 시민'들의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런 모습을 본 시민들은 보편적 자유와 평등을 이루기 위한 시스템을 모색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 사회주의 이념이다. 이렇게 탄생한 좌파 이념의 기본은 바로 '보편적 자유와 평등'이며, 특징은 '공동체성과 연대'다.

반면 16세기 무렵부터 점차 싹트기 시작하다가 산업혁명을 통해서 확립되고 급속히 파급된 자본주의는,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체제를 지향한다. 이런 우파 이념의 기본은 '개인의 자유'이다.

유럽에서는 극우에서 극좌까지 이념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그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 속에서 좌파와 우파가 서로를 또 다른 한 축으로 인정해주면서 대화와 토론을 한다. 동의는 하지 않지만 인정은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예외는 있다. 모든 정파와 서로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극우와 극좌는 대화의 상대로 끼워주지 않는다. 프랑스에서는 국민전선당을 비롯한 극우세력들이 선거에서 약 15%의 지지를 받지만, 보수와 중도우파들(공화국연합당, 프랑스민주연합, 자유민주당)은 극우세력들과는 만나주지조차 않는다.

프랑스 보수파들은 공산당과는 만나서 대화와 토론을 벌이지만 극우파들과는 상종조차 하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극우와 보수우파와의 거리보다는 보수우파와 좌파간의 거리가 훨씬 가깝다는 것이다.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극우세력들이 이 나라를 지키는 건전 보수세력인 체하고 있고, 국민들은 좌파는 무조건 빨갱이로 보고 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 보수우익을 자처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청산의 대상이 되어야 할 극우세력들이 많이 있다.

상대적으로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이 극우세력들이 좌파를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부치며, 정보가 부족한 국민들은 그렇게 또 믿고 따라가고 있다.

얼마 전 밝혀진 70년대에 일어난 '인혁당' 사건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사형 8명, 무기징역 9명, 징역 20년 이상 20명을 선고하고, 사형 선고 후 불과 몇 시간만에 집행해버린 그 인혁당 사건이 중앙정보부에 의해서 조작된 사건이라는 것이라고 얼마 전 드러났지 않은가.

좌파라고 해서 무조건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그런 빨갱이가 아니다. 좌파정권이 지금 집권하고 있는 프랑스, 독일, 영국이 빨갱이나라가 아니듯이 말이다. 건전한 보수우익에서는 하루 빨리 극우세력과의 선을 분명히 그어서 일반 대중들이 보수우익과 극우세력간의 차이를 명확히 분별할 수가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일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으로 강준만을 꼽아주고 싶다. 강준만은 우파이면서도 극우세력의 대표적 존재인 <조선일보>에 대해서 안티조선운동을 펼치고 있는 사람이다. 또한 좌파인 진중권이나 김규항 서준식 같은 사람을 인정하고 대화의 상대자로 존중해주고 있지 않은가.

이제 이 이야기를 기독교 쪽으로 끌고 가보자. 필자가 볼 때에 성서에서 말하는 형태는 미국식 자본주의보다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이하 사민주의)에 더 가깝다고 본다. 사민주의는 자유와 평등을 폭력이나 혁명이 아닌 민주적인 방법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이념이다. 끝까지 민주적인 방법으로 사회개혁을 이룩하자는 것이다.

사민주의와 자본주의를 쉽게 구별하는 방법은 시장과 국가간의 관계이다. 자본주의는 시장이 국가보다 위에 있고, 사민주의는 국가가 시장보다 위에 있다. 자본주의는 무한경쟁을 추구하지만, 사민주의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강한 자와 약한 자가 같은 룰 안에서 경쟁을 하면, 필연적으로 약자가 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개인의 무한자유를 제한하는 방식이다.

성서에서는 안식년과 희년제도를 채택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백성들이 가난해서 종으로 팔렸으면, 6년은 주인을 섬기다가 7년째에는 값없이 자유하게 했으며, 토지도 가난해서 팔았을지라도 희년이 되면, 원래 주인에게로 돌려주게 했다. 그리고 추수를 할 때에도 가난한 자를 위해서 밭의 모퉁이 일정 부분은 거두지 말고 남겨 두라고 했으며, 신약에 와서는 유무상통했던 일들이 성서에 나와 있다.

이런 것들을 봤을 때, 기독교 이념은 자본주의 쪽보다는 사민주의 쪽과 거리가 더 가까운 것 같다. 이런 기독교의 정체성을 간과한 채 지금까지 기독교는 좌파이념은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부치며 전형적인 우익단체의 한 구성원으로 활동해왔다.

맑스레닌주의가 '종교는 아편이다'라는 말을 하면서 사회주의가 종교를 부정했다고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종교는 아편이다'라는 말은 레닌이나 마르크스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노발리스에게서 먼저 나왔다. “당신들이 말하는 종교는 아편으로 만든 마취약과 같은 작용만 할 뿐이다. 매혹시키고 달래주고, 허약함에서 오는 고통을 잠재워줄 뿐이다”라고 1798년에 노발리스가 기록했다.

더군다나 사민주의는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하지 않은 사회주의를 의미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즉 공산주의와는 다른 사회주의를 말하는 것이 사민주의이다.

사람들의 지적 능력이 진보된 이제는 기독교도 이 사회에 존재하는 극우, 보수우파, 중도우파, 중도좌파, 진보좌파, 극좌, 이러한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 속에서 기독교적 사상을 실현해나갈 수 있는 올바른 방향성을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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