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안도현의 <연어>를 꽤 재미있게 읽었다. 여기서 '재미'는 그 만큼 곱씹을 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곱씹을 것이 많은 책, 그래서 필자는 주저 없이 주변에 이 책을 소개하곤 했다.
글 보다 그림이 더 많은 소설, 거기다 두께도 얇아 책 읽기의 즐거움을 더해 주는 가벼운 책. 그렇다고 가벼운 소설은 아니다. 쉽게 말해 어른동화, 그러니까 우리식(?) <어린왕자>라고 할까?

줄거리는 이렇다. 은빛연어 한 마리가 연어 떼와 함께 모천으로 회귀하는 긴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가족사와 사랑, 그리고 정체성을 배워나간다는 내용이다.

안도현은 이 단순하고 동화적인 평범한 연어들의 모천회귀를 통해 우리의 삶을 진지하게 읽게 한다. 연어는 모천회귀성 물고기이다. 자신이 태어났던 모천을 떠나 바다로 갔다가 산란기가 되면 다시 모천으로 거슬러 올라가 알을 산란하고 죽는다.

이 긴 여행 중에 은빛연어는 누나연어를 잃기도 하고, 또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눈 맑은 연어, 그녀는 불곰에게서 은빛연어를 구하다 상처를 입게되고 이로 인해 둘은 사랑을 하게된다. 상처 입은 눈 맑은 연어가 고통스러움을 참으며 은빛연어에게 속삭인다.

"네가 아프지 않으면 나도 아프지 않는 거야"

물고기들의 사랑(?)이..그럼, 우리네들의 사랑은?, 안도현은 은근히 우리의 삶을 비튼다. 그러면서 어느 광고문구처럼 묻는다.

'너희가 사랑을 알어?'

<연어>는 불쑥 불쑥 우릴 당혹스럽게 한다. 이 당혹스러움은 우릴 몇 번이나 <연어>를 다시 곱씹게 한다. 천신만고 끝에 모천인 초록 강에 이른 연어 떼. 여기서 은빛연어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연어의 정체성!', 모천으로 향한 출발에서부터 끝임 없이 따라다녔던 의문이었다. 은빛연어의 얘기를 들어보자.

"우리가 강을 거슬러 오르는 이유가 오직 알을 낳기 위해서 일까? 알을 낳기 위해 사랑을 하는 것,그게 우리 삶의 전부라고 너는 생각하니, 아닐 거야 연어에게는 연어만의 독특한 삶이 있을 거야, 우리가 아직 그것을 찾지 못했을..."

'연어만의 독특한 삶!', 그런데 은빛연어는 여행의 출발에서는 전혀 다른 '연어의 정체성'을 말했었다

"은빛연어는 과식을 하지 않는다...자기 욕망의 크기만큼 먹을 줄 아는 물고기가 현명한 물고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어는 연어의 욕망의 크기가 있고...고래가 연어의 욕망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이미 고래가 아닌...연어는 연어로 살아야 연어인 것이다."

연어의 연어다움을 자랑스러워했던 은빛연어가 갑자기 연어만의 독특한 삶을, 희망을 꿈꾼다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안도현은 은빛연어의 연어다움을 넘어서려는 '자기부정'을 통해 인간의 '자기부정'의 욕망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꼬집는다. 결국 우린 안도현에 의해 어류보다 못한(?) 존재로 하락된다.

이때 초록 강이 등장한다. 초록 강은 흐르는 강물을 통해 다시 연어다움이 무엇인지를 잔잔하게 일깨워준다. 초록 강이 말했다.

"거슬러 오른다는 것은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간다는 뜻이지 꿈이랄까?, 희망같은거 말야. 힘겹지만 아름다운 일이란다."

은빛연어는 초록 강과의 대화를 통해 하나하나 존재의 괴로움을 풀어나간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알을 산란하기에 가장 적합한 상류로 가는 길목에 폭포가 버티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 연어의 조사에 따르면 이 폭포는 폭이 10미터 높이는 3미터이다. 이 폭포를 뛰어 오르기 위해서는 폭포 아래로 떨어지는 물의 속력보다 빠른 속력을 낼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폭포 아래로 떨어지는 물의 속력을 과학자 연어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연어 떼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지만 묘안이 없다. 이때 과학자 연어가 나타나 인간들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 놓은 쉬운 길을 찾았다며 그 길로 가기를 제안한다. 연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때 은빛연어가 말문을 열었다.

"나는 쉬운 길로 가서는 않된다고 생각해.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쉬운 길은 연어들의 길이 아니야. 알을 낳는 일은 매우 중요해.하지만 알을 낳고 못 낳고가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고 좋은 알을 낳는가 하는 것도 중요해. 우리가 폭포를 뛰어 넘는다면 그 순간의 고통과 환희를 훗날 알을 깨고 나올 우리 새끼들에게 고스란이 넘겨주지 않을까? 우리가 폭포라는 어려운 길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 뿐이야"

은빛연어는 누나를 잃고, 눈 맑은 연어를 만나고, 초록강을 만나고, 폭포를 만나면서 서서히 연어에게 알을 낳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귀한 일인가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알을 낳는다는 것이 보잘것 없는 일이 아니라 연어다운 가장 가치 있는 삶임을 모천회귀라는 긴 여행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웠던 것이다.

"맞아, 쉬운 길은 길이 아니야!!!" 연어들이 외쳤다.

오늘처럼 삭막하고 무미건조한 시대에,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의 삶을 촉촉이 적시는 안도현의<연어>는 어쩌면 세속의 거대함과 맞서고 있는, 그래서 그 물결을 거슬러 올라 가야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한 지혜가 아닐까. 폭 10미터 높이 3미터를 훌쩍 뛰어넘기 위해서는 때로는 세속의 지혜도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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