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곳 강원도. 하지만 엄청난 수해를 당해 위안이 필요한
곳이 되었다. 강릉시 내곡동 수해 현장은 난장판이 따로 없을 정도로 피해가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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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찌든 한국인에게 강원도는 그 이름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절망을 느낄 때 누구나 한번쯤은 강원도로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힘을 얻었던 적 없는가? 바다를 싫어하는 사람도 강원도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곳에 아름다운 산들과 깊은 계곡, 그림 같은 강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원도의 힘 때문일까? 최근 수도권의 한 시에서 수해로 인해 강원도가 온통 비상이 걸렸는데도 강원도 지역, 그것도 상수도 보호구역에서 연찬회를 고집하다 시민들에게 호된 눈총을 사고 있다.

우리는 저마다 위안을 얻고 싶어 강원도를 찾는다. 그리고 강원도는 항상 우리를 감싸주고 새 힘을 주어 돌려보냈다. 그러나 최근 강원도로 달려가는 사람들은 뭔가 얻으려고 떠나지 않는다. 태풍 '루사'로 인해 신음하고 있는 강원도를 되살리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본지 기자도 그 동안 강원도에게 받았던 빚을 갚아 보고 싶은 마음에, 오프라인 작업을 마감하자마자(9월 5일) 강릉행 버스에 올랐다.

운전사까지 포함해 모두 열 명이 탄 한산한 버스에는 라디오 소리만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간간이 나오는 뉴스는 강원도의 태풍 피해액이 1조 원이 넘었다는 것, 아직도 고립된 지역이 있다는 소식들이 연이어 알렸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격양돼 있기는 하지만, 도대체 1조 원이 어느 정도 큰 액수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그러나 차창 밖으로 군데군데가 찢겨나간 산과 끊어진 다리가 보이고, 유실된 차로와 느리게 달리는 굴삭기 탑승 차량 때문에 간간이 길이 막힐 때 조금씩이나마 그 정도를 가늠할 수 있었다.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이 굴삭기를 이용해 쏟아져 나온 쓰레기를 트럭에 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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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는 뻘로 뒤범벅된 회색 도시로 변해 있었다. 버스라도 지나가면 마치 후폭풍처럼 밀려드는 썩은 흙바람에 곤혹을 치르는 것은 흔한 일이다. 기자가 찾은 곳은 강릉시 내곡동. 8월 30일(금) 밤부터 내린 비로 마을의 대부분이 물에 잠긴 곳이다. 하천이 범람하면서 밀려온 물은 웬만한 집 1층은 쉬 휩쓸고 지나갔고, 어떤 집은 2층까지도 물에 잠긴 흔적이 남아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썩은 흙내에 소독약 냄새가 범벅이 돼 코를 찔렀다.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단장 조현삼 목사)은 마을 공터에 센터를 마련하고 구호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인지 컵라면을 타려는 사람들도 줄이 한참 늘어져 있다. 또 한쪽에서는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떡을 해와 봉사단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자, 단장인 조 목사가 한사코 이를 사양하는 광경이다. "마음은 알았으니, 함께 고생한 병사들에게 주세요."

봉사단원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곧장 현장으로 달려갔다. 할머니 한 분과 세 들어 사는 청년이 함께 살고 있는 집. 옛날 식으로 지어진 집에 남은 것은 고작 밥그릇, 국그릇에 반찬 통 몇 개가 전부다. 웬만한 가구들은 이미 다 버렸고, 가전제품들도 할머니를 겨우 설득해 쓰레기장이 된 길바닥에 내버렸다. 할머니를 대신해 집안 살림살이들을 내버리는 기분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가끔씩 한숨을 내쉬는 변종호 할머니(74)를 위로하려고 말을 걸었더니, 물이 쳐들어오던 그때 일을 쏟아 놓는다. "물이 거의 벽까지 찼어. 난 장롱 위로 올라가 살았지 뭐. 물이 조금만 더 들었어도... 아침에 마을 사람들이 나 죽었다고 집에 들렀더라고." 변 할머니 말에 의하면 옆집에서는 자식들이 늙은 노모를 두고 자기들만 피신했다고 한다.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절박했는지 할머니의 얼굴은 금새 상기돼 있다.

▲수재민들이 줄을 서서 구호품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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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가 난지 5일째인 오늘, 내곡동은 전국에서 달려온 자원봉사자들로 넘쳤다. 오늘 이 지역에는 총신대학교 대학원생 1·2학년 1천여 명이 참여해 바쁜 일손을 거들었다. 이들은 2천만원 상당의 쌀과 라면을 사 오는 등 총 3천4백여만원 상당의 구호품도 가져왔다. 이들 외에도 관동대 대학교회와 IVF 등에서 나온 학생들, 교회 자원봉사자들, 근처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군인들로 북적거렸다.

사뭇 혼란스러울 수 있는 수해 복구 현장이었지만,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은 능숙하게 조율해 나갔다. 인원 배치와 구호품 분배, 응급 처치 등 어느 하나 만만한 일이 아니지만 봉사단 센터를 거치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해결이 된다. 또 봉사단은 아직 긴급 구호센터가 설치되지 않은 경북 김천으로도 구호팀을 파견했다. 주왕교회 한근수 목사를 팀장으로 안양 석수교회 등 40여 명이 김천으로 향했다. 1톤 트럭 두 대 분량의 구호품과 후원금 4백만원도 지원했다.

봉사단은 수해가 알려진 토요일부터 활동했다. 우선 2백만원을 현지로 보내 식수와 컵라면 등 긴급 식량을 조달했다. 그리고 선발대가 주일 예배를 드린 직후 이곳에 와 구호센터를 만들었다. 이들은 인터넷 홈페이지(www.foodshare.or.kr)를 통해 전국 교회에 수해 지역의 피해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개설된 계좌에는 단시일내에 2천여만 원이 입금될 만큼 교회들의 참여도 뜨거웠다. 이 돈은 전액 구호에만 사용하고, 지출 내역은 인터넷을 통해 상세히 보고할 예정이다. 단, 행정비로 사용하는 2백여만원은 서울광염교회에서 부담한다.

"처음엔 컵라면과 식수가 최우선으로 필요합니다. 이틀이 지나면 의약품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제와 고무장갑 등 복구에 필요한 물품과 옷 등을 조달하면 긴급 구호는 기본적으로 마무리 됩니다." 봉사단에서 긴급 재난 현장에 참여해 온 박현덕 전도사(서울광염교회)의 말이다.

센터 주변은 날이 어두워지면서 식사를 하러 오는 주역 주민들로 더욱 복잡해졌다. 자영업을 하고 있다는 권영돈(40) 씨도 가족과 함께 식사하러 이곳을 찾았다. 밥이 쉽게 넘어가지 않지만 억지로라도 떠넘기라는 아내의 권유에 못이겨 겨우 몇 술을 뜨고 있었다. 권 씨는 "평생 남을 도우며 살아왔는데…. 남의 도움을 받고 사는 날도 있구나"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권 씨처럼 수해 지역 주민들은 도움을 받는 처지라는 것을 인정하기가 내키지 않아 보였다. 센터에서 구호 물품을 분배했던 김성심(관동대 음악학부 99학번) 씨는 "주민들은 부끄러워하면서도 또 도움을 청하러 올 수밖에 없다"며 "가끔 무리한 부탁을 하거나 화풀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해할 수 있다. 오죽 속상하면 그러겠는가"라고 말했다.

간혼 센터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나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까지 구호 물자를 받아가는통에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게 구호 물자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 아주머니는 면도기와 칫솔이 필요하다며 있느냐고 물었고, 그것들은 긴급 구호 물품이 아니라고 말해도 연신 불평을 하다 돌아갔다. 성백철 전도사(서울광염교회)는 "마음까지도 수해를 입었기 때문에 이해해야 한다"며 주위를 다독거렸다. 그런데 한 수박 장수 아저씨의 훈훈한 인정으로 분위기는 다시 활기를 띠었다. 수재민들 나눠주라며 수박 200여 통을 센터에 내려놓고 간 것이다.

▲사뭇 혼란스러울 수 있는 수해 복구 현장이었지만,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은 능숙하
게 조율했다. 인원 배치와 구호품 분배, 응급 처치 등 어느 하나 만만한 일이 아니지만
봉사단 센터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됐다.ⓒ뉴스앤조이 주재일

저녁 10시가 넘어서도 센터는 이후 일정에 관한 논의로 분주했다. 우선 철수 시기에 관한 것. 모두들 긴급한 상황은 넘겼다고 판단해 다음 날(6일) 철수하기로 하고, 이후 구호 작업은 강릉성결교회를 중심으로 일주일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또 피해가 심한 삼척에 구호 물품을 전달하기로 하고 트럭을 구하기 시작했다.

12시가 돼서야 도착한 트럭에 라면과 쌀, 왁스 등을 실고 삼척으로 달렸다. 평소 같으면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지만, 갑자기 비가 내리고 곳곳에 도로가 파손돼 시간은 배나 걸렸다. 돌아왔을 때는 오느새 새벽 4시가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6일 아침, 철수를 위해 센터가 분주하다. 철수한다는 것을 알고 찾아온 주민들에게 남아 있는 물품들을 나눠주고, 이후 구호 계획을 안내했다.

봉사단이 6일간 활동하며 지출한 돈은 대략 1억 원이 넘는다. 피해액 1조에는 비교도 안 되지만, 전국의 교회에서 보내 준 사랑 가득한 구호품은 생명을 살리고 수재민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데 크게 기여했다. 긴급히 보낸 350원 짜리 컵라면 하나 물 한 잔의 값은 수치로는 계산할 수 없는 온정이 담겨져 있다. 봉사단은 누구보다도 이런 절박함을 알기에 그 어느 단체보다도 먼저 현장에 달려가고 있다.

〈현장 인터뷰〉 서울광염교회 조현삼 목사(43)

구호 현장에서는 한가하게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을 만큼 손 하나가 아쉽고 일이 급하게 돌아갔다.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단장 조현삼 목사(서울광염교회)와의 인터뷰는 구호품을 전달하기 위해 삼척으로 가는 차에서야 겨우 할 수 있었다.

수락산 끝자락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한 광염교회는 '감자탕'교회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상가 건물에 위치한 광염교회 간판이 감자탕집 간판보다도 훨씬 작기 때문이다. 그래도 800명의 성도가 찾아오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고 한다. 아직은 교회 건축을 위해 헌금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목회자나 성도들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조 목사가 먼저 "가슴이 따뜻하냐?"고 물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목회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며 따뜻한 가슴을 가져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조현삼 목사 ⓒ뉴스앤조이 주재일
왜 재난 현장으로 가장 먼저 달려가는가?

재난 현장에서는 작은 도움 하나도 절실하다. 교회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면, 사람들을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옥토로 만들 수 있다. 교회를 늘리는데 당장 효과가 나타나진 않겠지만 한국교회의 선교를 위해서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과 광염교회의 관계는?

봉사단의 단장은 내가, 기획실장은 대학청년부 이석진 전도사가 맡고 있다. 광염교회가 실질적인 운영을 맡고 있다고 보면 된다. 행정에 소요되는 돈도 모두 광염교회에서 부담하고 있다. 후원금은 순수하게 구제에만 쓰고 있다. 굳이 광염교회 대신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이란 이름을 쓰는 것은 개별 교회가 나서면 다른 교회들이 외면하기 때문이다. 재난 구호는 시간을 다투는 일이면서도 많은 이들의 손길이 필요하다. 한 교회가 자기의 이름을 버리고 봉사단으로 구호센터를 세우면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고 싶은 교회가 부담 없이 모여든다.

전국에 광염교회 50개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는데...

광염교회는 어려움이 처한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교회가 되길 희망한다. 이번에도 강동광염교회, 영동광염교회, 원자력교회, 평택제일교회 등 서울광염교회 출신들이 제일 먼저 달려왔다. 전국에 뜻을 같이하는 50개 교회만 있어도 웬만한 재난은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50개의 광염교회를 개척하려는 것이다.

많은 시간 교회를 비우는데 목회에 지장은 없는가?

우리 교회가 긴급 구호에 앞장설 수 있는 것은 성도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참여 때문이다. 이번에도 가게문을 닫고 직장에 휴가를 제출하고 이곳에 온 성도들이 있다. 또 자신이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인터넷을 통해 교회의 봉사 소식을 보며 기도하는 성도들이 많다. 헌금을 사용할 때도 이 헌금을 낸 성도에게 보람이 되는지를 묻는다. 교회 예산은 매주 1백만 원 이상 잔고를 남기지 않고 지출하며 그 중 60%가 구제를 포함한 선교비로 쓰인다. 그래도 넉넉하게 꾸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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