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울어 주어야 할 사람들

31명의 탈북자들이 북한을 넘어 중국으로 왔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뉴스를 통해서 접했다. 그들은 현재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강제 송환될 위기에 서 있다 한다. 다행히 뜻있는 자들이 함께 모여 이들의 최저 인권과 강제 북송을 막기 위해 나서기 시작했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 한 방울이 모여 그들을 죽음에서 삶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고 외치는 아름다운 이웃들이 있다. 이들 단체는 탈북자들을 살리기 위해 함께 울고 있는 선한 이웃들이다. '크라이위드어스(Cry with us)' 북한 인권 단체가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며 콘서트를 열었다. 차인표 씨를 대표로 수많은 연예인, 작가, 정치인, 청소년 단체가 이에 앞장섰다.

미국과 서방 세계도 이에 동참하며 인간의 최저 인권을 보장해야 함에 뜻을 모았다. 미 의회에서는 '탈북자 강제 북송' 청문회를 개최하며 강력하게 탈북자들의 북송을 막고 있다. 또한, 북한 인권 문제 청년 모임인 '세이브 마이 프렌드(Save My Friend)'는 먼저 '탈북자 북송 반대' 인터넷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현재 100여 개국 15만 명의 서명을 받았다. 온라인의 위력이 오대양 육대주를 넘나들고 있다.

▲ '크라이 위드 어스' 콘서트. (사진 제공 국인남)
이렇게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위해서 지구촌 선한 이웃들은 뜻을 모으고 있다. 지금 우리는 정당이나 이념, 종파를 떠나 한마음으로 '탈북자 강제 북송' 중단을 촉구해야 할 때이다. 특히 개신교는 한 걸음 앞장서서 형제의 고통을 분담하며 뜻을 함께하는 것이 바로 행함일 것이다.

안식일의 주인도 사람이다

매 주일이면 수많은 강대상에서 감동적인 설교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섬겨라, 네 형제와 먼저 화목하고 예물을 드려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참 좋은 말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서 전달되고 있다. 또한 국내외 최고급 호텔에서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자, 한국교회를 갱신하자, 고통을 분담하자"고 속삭인다. 이렇듯 큰 자들의 기름진 입술은 여전히 달변을 토하며 조직을 키워 나가고 있을 뿐이다. 온 세계 사람들은 '탈북자 강제 송환' 문제를 놓고 뜻을 모아 생명을 살리려 하고 있는데.

종교가 제아무리 조직이 크고 웅장한들, 이 모든 것들은 '헛되고 헛되다'는 말씀이 화려한 액자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보아야 할 시간이다.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는 애통한 자들이 뜻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내 형제의 아픔에 동참하며 탈북자들의 북송 문제를 애타게 호소하고 있다. 만약 지금 탈북자들이 강제 송환된다면 현재 김정일 애도 기간인지라 3족을 멸한다 한다. 21C에 이념의 총부리에 3족이 사라져야 하는 저 북녘의 동포는 과연 누구인가. 피부색이 같고 언어가 통하는 바로 내 형제와 이웃이 아닌가. 어찌 그들의 생사를 모른 체할 수 있겠는가.

안식일도 사람을 위해서 있다. 그래서 인권과 이념, 종교도 사람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 지금 내 형제가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살려 달라 외치고 있는데 생명줄을 누가 던져야 할 것인가. 강대상은 참과 정의를 외치고 생명을 살리는 곳이다. 복에 복만 빌어 주는 곳이 아니다. 안일과 부와 평안만을 빌어 주는 곳은 풍요의 신을 믿는 것과 같다. 분단의 아픔과 고통을 세상에 알리고 교인들을 깨워야 한다. 민족의 아픔을 모른 체하고 우리만 잘 먹고 잘 살자는 복음은 소망이 없다.

예수님도 생전에 열두 제자와 함께 예루살렘에 성전 하나 웅장하게 지어서 그곳에서 복을 빌면서 풍요롭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안일과 평안보다 생명 살리기에 앞장섰기에 복음은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다. 그 시대 핍박 받은 곳, 생명이 죽어 가는 곳으로 모두가 흩어져 외쳤기에 복음이 우리 안에 살아 있지 않은가. 그 복음은 억압받은 곳, 이방인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품어야 한다.

저 북녘의 동포를 중국의 품에 안기게 할 것인가, 미국의 품에 안기게 할 것인가. 먼 훗날 결국 강대국들은 우리에게 다가와 '너희도 이 품에 안겨야 산다. 순순히 안겨라' 명하며 상냥하게 다가와 삼키기 전에 깨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것은 먼 훗날도 아니다. 지금 우리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함께 살고, 함께 죽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보수의 끝자락에 있는 사람들은 당장 좌파라 할 것이다.

▲ 중국대사관 앞 유리창에 반사되어 자랑스럽게 한 교회가 눈에 띄었다. 바로 '옥인교회'다.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강제 북송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교회는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사진 제공 국인남)
좌와 우를 따지기 전에 민족의 미래와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에 눈을 떠야 한다. 미국이라면 치를 떨고 도끼로 덤벼들었던 북조선 정권이 미국을 향해 핵을 빌미로 손을 벌렸다. 배고픈 곳이 바로 지옥이며 허기진 곳에서 혁명이 일어나기에 적과 동침도 서슴지 않고 넘었다. 형제에게 얻어먹느니 차라리 과거 원수에게 얻어먹는 것이 더 편한 것 같이 보여 섬뜩하기까지 하다. 드디어 통미봉남(通美封南)정책을 쓰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북조선이 남한에 품고 있는 미움과 원망이 얼마나 극에 달했는가를 보여 주는 현실이기도 하다. 앞으로 책략과 음모는 더욱더 치밀해질 것이며, 자칫 젊은 자의 결단은 우매자로 미친 듯이 달려들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비군 훈련장과 군에서 김일성 3대 사진을 사격 표적지로 삼아서야 되겠는가. 금세 저들도 보복 차원에서 장로 대통령 이름을 붙여 놓고 조준 사격 훈련을 하지 않은가. 신세대 장병들에게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방법이 마치 무당이 살을 내리는 짓을 하는 것 같아 민망하다. 어찌 대한민국 정부가 무당의 신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대통령이 장로 아닌가.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

몇 년 전, 탈북 여성들과 하룻밤을 집에서 함께 보낸 적이 있다. 그들은 먼저 북한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그곳에서도 죽음을 각오하며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억눌려 살았다. 중국에서의 삶도 국적 없는 무국적자인지라 최악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했다. 결국 생사를 걸고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 남쪽으로 넘어온 것이다.

한 사람은 두 살배기 아들을 두고 왔고, 또 한 사람은 수 년 전에 어머니와 함께 중국으로 왔다가 어머니가 북으로 다시 잡혀간 것이다. 긴 세월 모진 옥살이로 거의 죽어 가는 상태에서 감옥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했다. 이들의 소원은 가족을 이 땅에 데려와 함께 사는 것이 소망이다. 2011년 10월에 한 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드디어 엄마를 중국 어디에선가 만났다는 것이다. 다 죽게 되어 감옥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다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연락이 왔다. 드디어 엄마를 모셔 왔다 했다. 그토록 그리던 그녀의 어머니가 이 땅에 왔다는 것이다. 놀랍고도 반가웠다. 다행히 공안 당국의 눈을 피해서 비밀리에 접선이 이루어졌나 보다.

이렇게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이때에 우리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가 무엇이겠는가. 옛말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밉다"는 말이 있다. 4자 회담, 6자 회담, 남북 긴장 완화 회담을 내세우며 남과 북을 협상의 자리에 앉게 하지만, 강대국의 속내는 결국 싸움을 말리는 척하는 시누이와 같다. 차라리 억지소리를 하는 시어머니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고통을 분담할 때 가정에는 평화가 온다. 시누이는 이편저편에서 반드시 자신의 실속을 차리는 염탐꾼과 같다. 양쪽이 서로 아옹다옹해야 시누이는 얻을 것이 훨씬 많기에 말이다.

'북송은 죽음'이라고 조명숙 교감(탈북 청소년 대안학교 일명 여명학교)은 말했다. 주일마다 강대상에서 외쳐 주어야 한다. 진정한 생명 사랑이 무엇인지를 예수님의 마음으로 외쳐야 한다. '건축을 하자, 전도를 하자, 책임 있는 삶을 살자', 이 모든 것들보다 먼저 생명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다. 다행히 몇몇 교회가 중심이 되어 탈북자 강제 북송에 대해 기도하고 있다.

우연히 중국대사관 앞 유리창에 반사되어 자랑스럽게 한 교회가 눈에 띄었다. 바로 '옥인교회'다.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강제 북송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교회는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그날따라 날씨는 몹시 추웠다. 수많은 사람들은 화장실 문제와 목마름을 교회를 통해서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종교의 참모습이 이방인들에게 섬김으로 다가서는 아름다운 모습 아닌가. 이들을 향해 좌파 교회라 칭하지 말라.

종교의 이기에서 떠나 옥인교회는 사람을 섬겨 주었다.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작은 노둣돌(말을 타고 내릴 때에 발돋움으로 쓰는 돌)이 되어 주었다. 지금은 '탈북자 강제 북송'이라는 절박한 문제를 놓고 간절히 호소하고 기도해야 할 때이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소중한 이웃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행할 때, 여우 같은 시누이 손에서 속히 벗어날 수 있다.

다 함께 그들을 위해서 울어 보자. 이제 그만 복에 복을 위해서, 부에 부를 위한 기도를 거두고 내 형제의 고통에 함께 울어 주자. 그 눈물이 모여 이념의 높은 담벼락이 무너지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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